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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겉을 보는가? 속을 보는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15 조회수836 추천수8 반대(0) 신고

 

               겉을 보는가? 속을 보는가?

 

              

복음에 예수님과 자캐오라는 세관장의 만남이 소개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캐오를 만나고 그의 집에 가서 머물려고 하자 사람들이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서 묻는구나.” 하며 못마땅해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시각과 사람들의 시각에 대한 묵상을 폭 넓게 해 줄 수 있는 아일랜드의 유명한 일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죄수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갇힌 감옥에는 높은 천장에 작은 창이 겨우 하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밖을 내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년에 단 한번, 여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면 사다리를 빌려 창 너머로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죄수 두 사람은 그날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감옥 속에 사다리가 놓이고, 두 사람은 차례로 사다리에 올라가 바깥세상을 구경했습니다. 저녁 무렵에 교도관이 와서 두 사람에게 “무엇을 보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한 사람은 사다리에서 내려오더니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1년 동안 그토록 기다린 끝에 본 바깥 풍경이 온통 진흙투성이였다고 말했습니다.

그 진흙 바닥을 보며 자신의 인생도 그처럼 진흙투성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보지 말 걸 그랬다며 좌절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또 한사람의 죄수도  똑같이 사다리에 올라가 바깥을 구경했습니다. 그는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신선한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고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새파란 하늘이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고, 나뭇가지들이 산들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죄수가 본 것은 비온 뒤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아래를 보았고, 또 한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어느 쪽으로 눈길이 가느냐에 따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스즈키 히테코, 「용서하는 사랑, 용서받는 사랑」165-166 참조)


그렇습니다.

분명, 자캐오는 당시 사람들에게 죄인이었습니다.

죄인일 뿐만 아니라, 세관장으로서 로마의 앞잡이요, 매국노였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자캐오를 무시하고 못마땅해 하는 것은 옳은 행위요, 지극히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들의 시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정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모습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죄인취급을 받고, 실제 스스로도 죄인이라 여기며 늘 의기소침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예수님을 보기 위해 예수님을 앞질러 달려가 나무위로 올라간 그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자캐오의 겉모습, 드러난 모습을 보신 것이 아니라, 자캐오의 내면을... 마음 깊숙이 담겨있는 진실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 자캐오의 마음을 보셨기에... 이제는 좀더 낳은 모습으로...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기 위해 애쓰는 그 진심을 보셨기에, 자캐오의 집으로 간 것입니다. 자캐오로부터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는 진실된 회개를... 지난 삶의 반성을 이루어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땅을 보며 불평한 사람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캐오의 겉모습만 보며 비난하고 무시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시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본 사람처럼 사람의 어떤 행동, 말, 삶이라 하더라도... 그 보이고 드러나는 것에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을... 그 내면을 보고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시각입니다.


겉을 보느냐? 그 내면을 보느냐? 의 차이가 바로 예수님과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여러 행동, 선행, 활동 등 가면을 쓴 모습을 보느냐? 그 억눌리고 찢어진 마음을 보느냐의 차이가 바로 예수님과 사람들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우리가 선조들에게 받은 소중한 선물 중에 ‘효’라는 예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효의 개념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집과 차를 선물하고, 용돈을 많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웃어른의 마음을 헤아려 그 원하는 바를... 바라는 바를 이루어 드리려는 노력과 자세가 바로 참된 효입니다.

곧, 효의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적인 모습, 의미에 마음을 다해야 참된 효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참된 효의 개념처럼, 또한 복음에서 자캐오의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적인 모습을 보신 예수님처럼, 지금 나에게 미운 사람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보이는 그 모습에... 나에게 잘못한 행동에 머물러 버리지 말고, 그 사람의 진심을... 참된 마음을 보려 노력하면 어떨까 합니다.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주님, 저는 그 사람이 너무 밉습니다. 생각하기도 싫고, 생각만 해도 화가 납니다. 그러나 당신의 가르침과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본받아 그 사람의 진심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렵니다. 제 믿음이 나약하니, 도와주소서.’ 라는 기도를 드리며 도움을 청하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주님의 사랑을 받아 구원된 자의 모습이요, 그 사랑을 드러내고 나눠주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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