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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옥은 있는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17 조회수760 추천수6 반대(0) 신고

 

성서와 성전 속에서의 지옥


   새로운 신학은 지금까지의 가소롭고 유치하고 조악하게 지옥의 고통을 묘사한 많은 지옥표상들을 거부하는 동시에, 지옥도 철저하게 성서적 주제임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오늘의 역사비판적 주석학의 수준에서도 예수가 친히 지옥에 관하여 언급하였으며, 지옥의 주제는 예수의 복음선포 속에서 의미심장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의 직접적인 복음선포일지 모를 구절을 다 모으면 지옥이 예수의 메시지 속에서 결코 가벼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지옥에 대한 이야기가 어떠한 내용과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옥은 회개를 촉구하는 예수의 소명과 관련되어 거론되고 있다. 예수는 지옥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인간이 스스로 만사를 획득하거나 상실할 수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이 말은 인간은 구원될 수도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곧 청중이 처해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근본적인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가 선포한 복음에 담긴 지옥의 메시지에는 하느님의 주권에 자신을 양도하라고 엄중하게 촉구하는 결단의 성격을 지시하는 기능이 있다.

 

   오늘날 언어철학자들은 소위 정보적인 말(informativer Satz)과 성취적인 말(performativer Satz)을 구별하고 있다. 정보적인 말이란 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제삼자적 실황을 전달하려는 것이다. 즉 언어가 정보를 전달, 제공하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성취적인 말은 실황을 정립시키는 것, 즉 새로운 실재를 성취시킨다는 것이다. 즉 이 말은 두 인간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어준다. 예를 들어 약속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있게 될 새로운 실재를 정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성취적인 개념의 힘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지옥에 관한 말은 성취적인 말이다. 즉 통지하는 말이 아니라 성취하는 말이다. 이 말은 청중이 내리는 결단의 최종적 책임이 지옥의 실재를 정립함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이 말은 최종적으로 철저한 신앙결단을 동원시키려고 한다. 예수가 죄에 관하여 언급할 경우 관건이 되는 것은 미래에의 전망이 아니라 현 시각의 심각성이다. 교회사와 신학사에서 드러나는 지옥교리의 발전은 지옥이라는 말이 성취적인 말에서 점점 멀어져 정보대상으로서 순전히 객관적으로 이를 취급해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지옥의 실재성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지옥같은 것은 실제로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지옥이란 이 세상 삶에 있어서의 결단을 내리도록 경고하고 독려하는 하나의 '언어놀이'에 지나지 않는가? 실제로 이렇게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토마스 살토리와 게르트루데 살토리는 공저(共著), '지옥에는 불이 타지 않는다'에서 전통적 의미에서의 지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대죄인 즉 자신의 삶을 완전히 도착(倒錯)시킨 인간은 죽음을 통하여 무의 세계로 추락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오리게네스, 예로니모(초기의)와 같은 교부들까지도 지옥의 영원성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으로 하여금 사태를 분별케 하고 회개로 이끄는 기능만을 지닐 뿐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지옥이 단지 '언어놀이'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면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경건한 기만적 행위든가 아니면 일체의 신빙성을 상실한 것이다. 지옥의 실재가 사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을 때에만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적으로 올바른 결단을 내리도록 각성시키기 때문이다.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인간으로 하여금 엄중한 자기 책임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인간은 그의 자유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을 잃고 그의 삶을 궁극적으로 파멸케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지옥, 즉 인간 생명의 궁극적 실패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삶이 완전히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이 실제적인 가능성은 지옥에 관한 공식교리의 포기할 수 없는 핵심내용이다.

 

   그렇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궁극적으로 잃을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참된 의미에서 '괴물'로 만들 수 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지옥은 하느님이 인간을 외부로부터 얽어매는 형벌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가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가공할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가능성을 시작의 형태로나마 이미 체험하고 있고 또 체험할 수 있다.

 

   우리가 이기적인 자신에 사로잡혀 결국은 우리의 삶을 공허하게 만들고 인간성을 상실하고 실패하게 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지금 '생지옥이 벌어지고 있다'는 체험은 결정적인 형태의 지옥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게 해준다. 이처럼 지옥은 지금 체험할 수 있는 상황이 극도의 형태로 이어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자유의 가능성을 바라볼 때,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잃어버릴 수 있는 실제적 가능성이 존속한다는 것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G. 그라사케/심상태 역, "종말신앙'에서 발췌하여,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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