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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19 조회수79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5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제1독서 마카베오 상권 6,1-13

 

그 무렵 1 안티오쿠스는 내륙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페르샤의 엘리마이스라

 

는 도시가 금과 은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2 그 도시의 신전에는 재

 

물이 무척 많았고, 특히 마케도니아 왕 필립보의 아들로서 그리스의 첫째 왕이 되었

 

던 알렉산더가 이 도시에 남겨 놓은 금 투구와 갑옷과 무기들이 그 성전 안에 있었

 

다.

 

3 안티오쿠스는 그 도시로 가서 그곳을 점령하고 재물을 약탈하려 했지만 목적을 달

 

성하지 못했다. 그 도시 사람들이 그의 계획을 미리 알고 4 그와 맞서 싸워 왕을 쫓

 

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왕은 비통에 잠겨 그곳을 떠나 바빌론으로 도망쳐 갔다.

 

5 안티오쿠스가 페르샤에 있는 동안, 전령이 와서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즉, 유다 나라에 진격했던 군대가 패배하였다는 것, 6 대군을 이끌고 먼저 진격했던

 

리시아가 유다인들에게 참패를 당했다는 것, 유다인들은 아군을 무찌르고 빼앗은

 

무기와 포로와 많은 전리품으로 강력하게 되어 있다는 것과 7 유다인들은 안티오쿠

 

스가 예루살렘 제단 위에 세웠던 가증스런 우상을 부수어 버리고 그 대신 그 성전 주

 

위에 전과 같이 높은 성벽을 둘러쌓았으며 왕이 세웠던 도시 벳술에도 높은 성곽을

 

쌓았다는 것이었다.

 

8 안티오쿠스 왕은 이 보고를 듣자 매우 놀라 큰 충격을 받고 속이 상한 끝에 병상에

 

눕게 되었다.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9 그는 겹치고 겹친 슬픔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느꼈다. 10 그래서 그는 모든 친구들을 곁에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 눈에서는 잠이 사라져 갔으며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아프다. 11 처음에 나는 이

 

렇게 생각했었다. ‘권좌에 있을 때에 나는 좋은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

 

했다.

 

나에게 이렇게 큰 고통과 슬픔이 닥치다니 어찌 된 일이냐?’ 12 지금 생각해 보니 내

 

가 예루살렘에서 몹쓸 짓을 했구나. 거기에 있는 금은 기물을 모두 빼앗았고 까닭도

 

없이 유다의 주민들을 몰살하려고 군대를 보냈었다.

 

13 바로 이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재난을 당하는구나. 아! 나는 큰 슬픔을 안고 이국

 

땅에서 죽어 간다.”

 

복음 루가 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 몇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28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정해 준 법에는 형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어 살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30 둘째가 형수와 살고 31 다음에 셋째가 또 형수와 살고 이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형수를 데리고 살았는데 모두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2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33 이렇게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었

 

으니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34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가지만 35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저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

 

집가는 일도 없다. 36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일도 없다. 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37 모세도 가시덤불 이야기에서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

 

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이것으로 모세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

 

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38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

 

다.”39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 학자 몇 사람은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였고

 

40 감히 그 이상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야근을 싫어하는 한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

 

던 이승복처럼 처절하게 야근을 싫어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바로 “나는 야근

 

이 싫어요!”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구의 총탄을 맞자 자신을 방패로 가리게 한 후 “나의 죽음을 적

 

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던 이순신 장군처럼 “나의 퇴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며 야근을 회피하는 사람.

 

태양이 아닌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이야기한 후 종교재판에서 다시는 지구

 

가 돈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하고 풀려난 갈릴레이가 법원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것처럼 “그래도 야근은 싫다!”며 야근을 기피하는 사람.

안데스 산맥을 넘으며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말한 나폴레옹처럼 “내

 

사전에 야근은 없다!”며 야근을 거부하는 사람.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했던 맥아더처럼 “나는 퇴근

 

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며 야근을 회피하는 사람.

“나의 첫 번째 소원은 해방이요, 나의 두 번째 소원도 해방이요, 나의 세 번째

 

소원 역시 해방이다!”라고 했던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처럼 “나의 첫 번째

 

소원은 퇴근이요, 나의 두 번째 소원도 퇴근이요, 나의 세 번째 소원 역시 퇴

 

근이다!”라며 야근을 혐오하는 사람…….

 

이 글을 보면서 얼마나 일하는 것이 지겨우면 이런 말을 다 썼을까 라는 생각

 

이 나더군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과연 이런 사람이 퇴근을 하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까요? 퇴근하고 나면 직장 생활의 모든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새로운 일이 있어서 그럴까요? 아니지요. 아마 단지 자기 마음대로 퇴

 

근할 수 없는 안타까운 직장인들의 외침이 아닐까 싶은데요.


 

하지만 이렇게 일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분은 이렇게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취업이

 

되지 않아서 고민하시는 분, 은퇴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걱정하시

 

는 분들에게 있어 직장이 괴롭다는 말은 하나의 사치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

 

니다. 결국 내가 괴로워하는 부분이 바로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받기에 충분하

 

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내 모습은 얼마나 이기적

 

인가요?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은 모세

 

의 율법을 이야기하면서, 부활에 관한 문제와 연관을 짓습니다. 신명기 25,5-6

 

에는 이렇게 나와 있지요.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 죽은 그 사

 

람의 아내는 다른 집안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없다. 남편의 형제가 가서 그 여

 

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시숙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낳은

 

첫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지워지지 않

 

게 해야 한다.”

이 율법에 따라 칠 형제와 살았던 그 여인은 부활 후에 누구의 아내냐는 질문

 

이었지요. 즉, 그들은 부활 자체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

 

실 자식 없이 과부가 된 여인이 그 집안 형제에게서 자손을 얻게 해야 한다는

 

이유는 힘없는 여인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코 부활 신앙과

 

관계된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을 내세우려는 이기적인 생각에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수밖에 없

 

었던 것이지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살아가는지요? 나만을 바

 

라보고 또한 나만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

 

닐까요? 그래서 사두가이파 사람처럼, 앞의 직장 싫다고 외치는 직장인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요?

 

정작 중요한 것을 행하게 하지 못하는 나의 그 커다란 이기심들을 조금씩 없애

 

야 합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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