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심판대에서 떨지 않으려면
작성자김선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19 조회수660 추천수2 반대(0) 신고

찬미 예수!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

루가복음 20 38

 

죽음을 마주해 본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죽음앞에는 왠지 보내기 싫은 안타까움과 함께 이 세상을 더가지 못한 후회스러움, 어떤 세계로 들어 설지 모르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접하면 코 끝이 찡하고 마음이 애절하게 저려옴을 피할 수가 없고, 비록 험악한 세상살이라도 더 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린다.

 

가톨릭에서는 죽음후의 세계를 심판을 거친 뒤, 세 단계로 구분지어 천국, 연옥, 지옥으로 나눠 놓았다.

 

심판이란 하느님의 현존을 마주 대하는 것으로 그 분의 현존 앞에 내 안의 현세적 삶의 총체적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이라 했다. 고린도 2 5 10절에 보면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에는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이라 했다.

 

심판의 이미지를 개인적인 측면으로만 이해하지 말라고 교리에서는 가르친다. 어차피 인간의 삶의 구조가 더불어 사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이 자신만으로 국한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행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을 처리할 때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것일 때는 극도의 긴장감을 갖거나 자포자기의 될대로 되라 식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결과가 훤히 보일때는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대비할 수 있는 계획이 선다.

 

자식을 키울때, 내가 성장해서 얻은 경험덕으로 자식을 잘 코치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물론 이상적으로 다 처리되는 것만은 아니더라도 자식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줄 수가 있다. 그 과정이란 반복과 훈련의 연속이라해도 과언이 아닐게다.

 

아기가 말을 배울때 같은 단어를 얼마나 많이 반복해 보았는지는 기억을 더듬지 않더라도 금새 떠올릴 수가 있다. 그 뿐이랴 걷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등등  수없이 같은 동작을 했을 때 어느 순간에 혼자 걷고 서고 먹고 말하지 않던가.

 

학창 시절로 들어 서면 매일의 받아 쓰기, 셈 하기, 읽기등, 또 소질 계발을 위해 끊임 없는 훈련을 하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를 알기 위해 우리는 얼마만큼 시간과 돈을 투자했는지 생각해 보면 반성이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결과를 잘 알고 있는 부분인데도 신앙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가는데 필요한 훈련은 등한시했음을 깊이 반성한다.

 

더 늦지 않게 살아계신 하느님으로 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조금 알 것 같아서 행복하다. 또 나 자신의 힘으로는 미약하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늘 내 안에서 도와 주심을 알고 있기에 행복하다.

 

어느 작가가 인생은 수도원에서 수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는데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를 자꾸 자꾸 버리는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