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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1월19일 야곱의우물-살아 신 주님/한수산 성지순례기♣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19 조회수1,132 추천수7 반대(0) 신고

      한국 성인 103위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이 치명한 곳에 세워진 순교 기념탐


《"한국 성인 103위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이 치명한 곳에 세워진 순교 기념탐"》
 
♣ 연중 제33주간 토요일-살아계신 주님 ♣  

[루가 20,27-­40]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 몇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선생님,모세가 우리에게 정해준 법에는 형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칠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어 살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둘째가 형수와 살고 다음에 셋째가 또 형수와 살고 이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형수를 데리고 살았는데 모두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이렇게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가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저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일도 없다.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모세도 가시덤불 이야기에서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이것으로 모세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이시라는 뜻이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학자 몇 사람은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였고 감히 그 이상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최금자(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는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하느님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 곧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은 영원히 살아 있으며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구원 계획이 무엇인지를 매순간 성찰하면서 살아갈 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신 분이시며 인간의 역사를 주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 에게 올바른 삶, 참된 삶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지침이 됩니다.
그리하여 구약의 예언자들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님의 사도들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며 그분의 길로 나아갈 것을 끊임없이 외쳤던 것입니다.
나도 하느님을‘ 우리 조상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하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나침반으로 삼아 올바른 삶, 참된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가르침이 삶의 지침이 될 때 내 신앙고백은 혀끝으로 만이 아니라 내 삶의 모범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웃들은 이런 내 삶의 모범을 볼 때 하느님을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2001년 11월 같은 복음의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김찬진 신부님(원주교구 백운 천주교회) - 

[중략]

마르틴 부버의 『하시딤의 가르침에 따른 인간의 길』에 나오는 대화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아담에게 '너 어디 있느냐'고 하셨는데, 이 말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느님은 사람 하나하나에게,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네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까지 와 있느냐?'
결국 하느님은 '너는 이제 마흔여섯 살을 알았는데, 그래 어디쯤 와 있느냐?' 하시는 겁니다." 하시딤의 가르침은 이어집니다.
"사람은 하나하나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이고, 세상에서 자기의 특성을 실현 하도록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같이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메시아 의 재림이 늦어지고 있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됩니다. 세상을 좀더 아름답고 밝게 만들어야 하고, 스승인 예수가 했던 일을 해야 합니다. 내세는 하느님께 맡기고 염려 하지 마십시오.
영생이란 바로 지금입니다. 오늘입니다. 오늘 영생을 살지 못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삶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기 때문 입니다.

======================= 앗!...나의 생활나눔 ====================

† 103위 한국순교성인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

찬미 예수님~! 벗 님들~!!

오늘 묵상글의 우리신학연구소 최금자 위원께서는... '우리 조상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앗! 저는... '103위 한국순교성인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오래전, 제가 영세를 받은 98년에. 주보를 찬찬히 읽는 '아기신자'였을 때... 명동성당에서 개최하는 [성지순례 가이드]라는 교육이 있었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8주간의 교육이었는데, 저는 3기생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바쁜 버스회사였지만, 월요일은 제 휴무날이기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서 8주를 빠지지 않고 출석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절두산 성지에서 공부를 하며 평화방송에서 방영되었던 '한국순교자전'의 동영상 강의를 보신 분들은 들으셨겠지만, 김길수 사도요한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8주간 동안, 서울대교구 안에 있는 다섯 군데 성지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성지순례 가이드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명동성당, 약현성당, 새남터성지, 당고개성지, 그리고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입니다.
벗 님들도 아시다싶이,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한국 최대의 순교지입니다. 한수산 성지 순례기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곳이지요.

서소문. 44명의 순교 성인 성녀가 죽음으로 하느님을 증거하고 영광의 꽃으로 
피어난 곳이다. 어찌 그뿐이랴.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뿌리며 스러져 간 한국 최대의 순교지이다.

그러나, 그러나 오늘 서소문 순교지는 적막하다. 소음에 둘러싸여 차라리 너무나 적막하다.
1801년 신유박해에서부터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의 여진이 끝나는 1871년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꽃처럼 떨어져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 순교자 현양탑이 돌기둥 세 개로 솟아올라 있다.그러나 다른 사적지와는 달리 순례자의 발길을 보기가 힘들다. 장소부터가 고요함과는 거리가 먼 도심 한복판이어설까.
광화문 근처에 나왔다가 이곳에 들를 때마다 만난 공원의 순교자 현양탑 앞 표 정은 서글펐다.노숙자가 서성거리고,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소리 를 질러 대고, 지치고 술 취한 남자가 현양탑 앞 벤치에 누워 잠을 자고, 젊은 남녀는 현양탑 계단에 퍼질러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기가 일쑤였다.
현양탑 앞 안내문 이렇게 되어 있다. "서소문 즉 소의문(昭義門)은 아현과 남대문 밖의 칠패시장으로 통하던 문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붐비던 곳이었다.조선 시대의 사형 집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ㅇ르 주어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행해 졌으며 서소문 밖도 이러한 이유에서 1416년(태종 16년)에 서울의 주요한 형장 으로 지정되었다.
이곳 형장의 위치는 서소문 밖의 비탈진 언덕길 아래, 즉 현재의 서소문 공원 옆에 있던 이교(泥橋,흙다리)의 남쪽 백사장이엇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84년 겨울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100여 년 동안 박해가 계속되면서 천주교회는 전국적으로 1만 명 내외의 순교자를 탄생시켜야만 했다. 특히 이곳 서소문 밖 형장에서는 1801년의 신유박해 이래 1871년 무렵까지 수많은 신자들 이 처형되었으며, 그 중에서 44명의 순교자는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이하여 선포된 103위 성인 가운데포함되었다.
이로써 서소문 밖은 성인 44명의 순교의 영광을 얻은 거룩한 믿음의 터전이요 또 다른 성인을 낳게 될 약속의 터전이 되었다.…"
공원을 새로 단장하면서 현양탑 앞에는 둥근 모양으로 된 다목적 광장과 휴게 광장이라는 이름의 쉼터가 들어섰다. 그리고 잔디가 깔린 공원 안에는 여기 저기에 조각 작품을 놓았다.
공원의 맨 안쪽에 돌과 나무를 섞어 만든 벤치들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순교자 현양탑을 만난다. 둥글게 돌아간 세 개의 계단을 오르면, 나무를 모자이크하듯 박아 깔면서 드문드문 화강석을 섞어 놓은 아름다운 바닥이 현양탑을 받치고 있다.
현양탑은 1센티미터 정도의 유리를 켜를 이루며 층층이 쌓아 올린 기단이 있고, 그 안에 잔 자갈을 깔면서 새 개의 커다란 돌기둥을 세웠다. 죄수들의 목에 씌 웠던 형틀을 형상하한 것임을 한눈에 알 수가 있는 조형물이다.
제일 높은 가운데 돌기둥에는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마태5,6)

이라는 말씀이 둥근 판 안에 금빛으로 음각되어 있다. 이 말씀 위로, 십자가에
몸이 매달린 수난상을 중심으로 수많은 순교자들의 고난에 찬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여기에서 7개의 홈이 패어 올라가면서 목을 옥죄었던 형틀의 구멍에 이어지고, 여기서 다시 하나의 홈이 패어 올라가 돌기둥의 끝에 닿는다.
그 옆으로 똑같은 형태이면서 크기가 조금 작은 돌기둥이 좌우에 서서 대칭을 이룬다. 왼쪽 돌기둥에는 순교 성인의 이름이, 오른쪽에는 순교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스러져 간 꽃다운 이름들이다.
왼쪽 석주에는 '순교성인. 기해박해(1839) 41위. 병인박해(1866-1871) 3위' 라는 글과 함께 김업이 막달레나(1773-1839)로 부터 이곳에서 숨져 간 44위 성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업이. 남편과 함께 미신을 믿으며 살았으나 후에 언니의 가르침을 받아, 믿음과 덕망 의 한평생을 살었던 여인이다.그러나 워낙 기억력이 안좋아서 아침 저녁 기도문 을 끝내 배우지못했다고 전해지는 성인이다.
남명혁 다미아노. 38세로 치명했다. 그는 사형이 확정된 후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이 세상은 주막집에 지나지 않고 천국이 우리의 참된 고향이니, 주를 위하여 죽어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히 당신을 만나기를 바라오."라는 애절한 마음을 남기고 떠난 아름다운 영혼이었다.
정하상 바오로(1784-1839)가 9월 22일 순교한 이곳 서소문 밖에서는 몇달 뒤 겨울, 누이동생 동정녀 정정혜 엘리사벳이 순교한다. 그녀와 함께 순교하는 고순이 바르바라와 남편인 박종원 아우구스티노의 이름이 새겨진 드높은 현양탑을 쳐다본다. 찬란하여라, 그 이름. 부부 성인이시여!
고순이는 1801년 순교한 고광성의 딸로, 남편 박종원과 결혼하여 안팍으로 본보기가 되는 가정을 이루었다. 함께 잡혀 들어간 후에도 부부는 옥중에서 만나 천주께 감사하며 이 고통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 나가자고 서로 격려하 였고, 두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자 형리는 부부를 함께 고문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고순이는 "전에는 순교 이야기만 들어도 떨렸는데, 성신께서 은총으로 감싸 주시어 지금은 기쁘기만 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남종삼 요한은 1866년 3월 7일 이곳에서 순교했다. 이틀 뒤에는 전장운 요한과 최 형 베드로의 죽음이 이어졌다.
이소사 아가다가 치명했을 때는 56세였다. 당시에는 과부를 소사(召史)라고 불렀기 때문에 '소사'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도 없이 '이 과부'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화평한 기색과 기쁜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아름다운 언행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기해일기)는 이 성인의 행적을 적고 있다.
현양탑에 이름이 새겨진 이들을 생각하는 내내 주변에는 자동차의 소음이 마치 자갈을 쏟아 붓듯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이름들을 읽어 내려가는 가슴 이 저려 오는 것은, 조그많고 아주 조그맣게 이 잡답(雜沓)속에 새져져 있는 이름들의 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른쪽 돌기둥에는 '순교자. 신유박해(1801) 외 44위, 병인박해(1866-1871) 10위'라고 새긴 밑으로 순교자들의 이름이 이어진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1760-1801년), 최필공 토마스(1745-1801년), 최창현 요한(1754-1801년) … 4월 8일 같은 날 희광이의 칼날에 목이 꺾이며, 하느님의 빛나는 얼굴을 보기 위해 함께 떠났다.
교회사를 읽으며 어느새 낯익어진 이름들이 보인다. 차마 그 이름을 읽어내려 가기가 힘들어, 눈시울이 흐려진다. 어느 그리운 사람을 만나듯, 여기 와서 그들의 소식들 듣듯이 그렇게 흐린 눈길로 그 이름들을 더듬는다.
황 신 토마스도 있고, 최인철 이냐시오의 이름도 보인다. 1801년 11월 18일 그들이 순교한 후 황사영도 12월 10일 이곳에서 숨이 끊긴다.
아,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의 이름도 보인다. 강경복 수산나에 이어 초기 교회에서 여성으로 그 뛰어난 발자취를 남긴 강완숙 골룸바의 이름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녀도 같은 해 8월 2일 여기에서 순교했다.
맨 위로 정약종에서 시작된 이름이 예비신자 이돈호 ( ~1871년 5월 27일)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이들 가운데는 성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도 있다. 공원 밖으로 기차가 지나가는가. 건널목의 차단기가 내려지는 소리가 땡땡거리며 들려 온다.

현양비 뒤편 중앙 석주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입니다.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요한 복음 11장의 말씀이 둥근 석판에 금빛으로 음각되어 있다.

밤에는 아름답게 불을 밝힐 수도 있게 되어 있는, 가톨릭 조형 미술 연구소 조광호 신부가 만든 아름다운 구조물을 오래오래 바라보며 나는 서 있었다. 길 건너 어디선가 시위대가 불러 대는 '산자여 따르라'는 노래가 바람에 실려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국 천주교회에 있어 '믿음의 터전'이었으며 '약속의 터전'이었던 장엄한 자리, 이곳. 그러나 저 영광의 이름들을 기리고, 피로 물든 땅 이곳의 뜻을 되새기기에 오늘 서소문의 그 자리는 너무 척박했고 또 가난했다.
이만한 '순교자 현양비'라도 들어선 것에 "그래도… 그나마…"하면서 자위해야 하는 것인가.
공원 안에는 고려 왕조 초기에 활약했던 윤 관 장군의 동상이 우람하게 세워져 있었다. 태조 왕건의 건국 이념을 이어받아 고구려 옛 강토인 북녘의 실지를 회복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왜 무슨 연유로 여기에 그의 동상이 서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크고 높은 것만으로 어찌 그 영광을 드러내 보일 수 있으랴. 후대가 세워 놓은 기념물의 크기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던가. 돌아오는 마음속에,현양탑 안내문 에 써 있던 말들이 남앗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성인 탄생을 기리기 위해 1984년 이곳 서소문공원 안에 순교자 현양탑을 건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공원이 새로 단장되면서 기존의 현양탑이 헐리게 되었고 이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는 오늘 이 자리에 새 순교자 현양탑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 현양탑을 세우는 목적은 천주교의 44명의 성인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진리를 증거하다가 희생된 수많은 유명 무명의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하는 데 있다.
아울러 그들의 위대한 정신과 믿음을 후손에 전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이 순교자들을 본받아 하느님의 말씀의 증인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으로 1999년 성령 강림일에 이 탑을 이곳에 세운다."

                   - 생활성서사 발간, 『한수산 성지순례기』에서 옮김 -


8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다시 6개월 연장으로 이어진 것은...
공부를 하고 있던 모든 분들이 공부하면서 뜨거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99년, 성령 강림일...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미사를 드리는 인파에 끼어 귀퉁이에 서서 울고 있던 [조안나] 아지매.
틈날 때마다... 삼성산 성지와, 서소문 밖 성지에 가서... 나의 믿음의 조상들이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나즈막히 고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지금의 신앙주소에는... 그렇게 많은 핏값이 치뤄졌음을 배웠습니다. 그런후, 앗! 나는 2001년 3월 10일에 미국 케네디 공항을 밟았습니다
오년이라는...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나긴 시간동안 불도가니에서 달구어진 후에, 살아 계신 우리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오늘 물동이의 이 말씀을 붙잡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구원 계획이 무엇인지를 매순간 성찰하면서 살아갈 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긴긴 글을 또디닥띠디닥 타자로 쳐서 벗 님들과 함께 나눕니다.

긴긴 글이었습니까!...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치면서 자꾸자꾸 앞이 희미해져 빨리 타자할 수 없어... 더욱 늦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고 믿음의 선조들이 불렀던 그 하느님께.
103위 한국순교성인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앞으로 시복 시성되어져야 할 성인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름조차 알리지 못하고 순교하신 무명순교자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살아온 날들의 아픈 상처들도 이제는 다 놓아버립니다. 그것은 내게 더 이상 중요한 것들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신앙의 주소 안에서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그분들이 내게는 더 소중합니다. 그분들의 삶과 얼을 널리 널리 전하다가 부름을 받고 싶을뿐입니다.
한 말씀 더 새기고 오늘의 야곱이를 마칩니다.

영생이란 바로 지금입니다. 오늘입니다. 
오늘 영생을 살지 못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삶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찬미 예수님~! 벗 님들...!

저는 오늘 이 성가로 매일매일 기도를 합니다. 성가는 곡조있는 기도쟎습니까!. 벗 님들도 외우셔서 기도하고 싶을 때에 한 번 불러보십시오...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하나가득히 고이게 될 것입니다...
지난번 말씀드린... (11월 14일 야곱의 우물에서) http://blog.dreamwiz.com/vlfrn04/4659707 [굿모닝도사의 주간 스케치] 라는 홈피에 계신 이 필구 아우구스띠노 형제님께서 오늘 진천에 있는 베티성지로 순례를 갑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시거나, 또 모르신 분이라면... 아랫 멜 주소로 연락하시어 정보를 교환하실 수 있으십니다. pillku@ hanmail.net
매주 토요일은... 거의 성지순례를 가십니다.*^^*

♬ 주여 어서 오소서 ♬

주여 어서 오소서 내마음에 오소서 애타게도 바라니 어서빨리 오소서 예수 없이 내영혼 어찌능히 살리요 이렇듯이 애원함 굽어들어 주소서 온 세상의 모든복 만족함이 없으리 주의사랑 내맘에 만족하고 남도다 주님 내게 오시기 항상부족 하오나 한말씀만 하소서 깨끗하여 지리다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 소스입니다 》

<ul><ul>
<P><IMG alt="한국 성인 103위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이 치명한 곳에 세워진 순교 기념탐" 
src="http://holyplace.catholic.or.kr/images/서소문헌양탑.jpg"> </P></ul></ul>
<pre><FONT style="FONT-SIZE: 10pt" face=돋움체 color=brown><b>
《"한국 성인 103위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이 치명한 곳에 세워진 순교 기념탐"》</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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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연중 제33주간 토요일-살아계신 주님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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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루가 20,27-­4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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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 몇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선생님,모세가 우리에게 정해준 법에는 형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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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칠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어 살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둘째가 형수와 살고 다음에 셋째가 또 형수와 살고 이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형수를 데리고 살았는데 모두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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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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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가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저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일도 없다.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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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도 가시덤불 이야기에서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이것으로 모세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br>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이시라는 뜻이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학자 몇 사람은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였고 감히 그 이상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최금자(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는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하느님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 곧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은 영원히 살아 있으며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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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구원 계획이 무엇인지를 매순간 성찰하면서 살아갈 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br>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신 분이시며 인간의 역사를 주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br>
하느님께서는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
에게 올바른 삶, 참된 삶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지침이 됩니다. 
<br>
그리하여 구약의 예언자들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님의 사도들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며 그분의 길로 
나아갈 것을 끊임없이 외쳤던 것입니다.
<br>
나도 하느님을‘ 우리 조상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하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나침반으로 삼아 올바른 삶, 참된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br>
하느님과 그분의 가르침이 삶의 지침이 될 때 내 신앙고백은 혀끝으로
만이 아니라 내 삶의 모범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웃들은 이런 
내 삶의 모범을 볼 때 하느님을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br>
<br>
<IMG src="http://youngminene.com.ne.kr/New_Menu/image/brigid_logo.gif" border=0>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2001년 11월 같은 복음의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김찬진 신부님(원주교구 백운 천주교회) -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중략]
<br>
마르틴 부버의 『하시딤의 가르침에 따른 인간의 길』에 나오는 대화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아담에게 '너 어디 있느냐'고 하셨는데, 이 말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br>
"하느님은 사람 하나하나에게,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네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까지 와
있느냐?' 
<br>
결국 하느님은 '너는 이제 마흔여섯 살을 알았는데, 그래 어디쯤 와 있느냐?'
하시는 겁니다." 하시딤의 가르침은 이어집니다.
<br>
"사람은 하나하나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이고, 세상에서 자기의 특성을 실현
하도록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같이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메시아
의 재림이 늦어지고 있는 까닭입니다."
<br>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됩니다. 세상을 좀더 아름답고 밝게 만들어야
하고, 스승인 예수가 했던 일을 해야 합니다. 내세는 하느님께 맡기고 염려
하지 마십시오.
<br>
영생이란 바로 지금입니다. 오늘입니다. 오늘 영생을 살지 못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삶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기 때문
입니다.
<br>
<br>
<IMG src="http://youngminene.com.ne.kr/New_Menu/image/brigid_logo.gif" border=0>
=======================  <b>앗!...나의 생활나눔</b>  ====================
<pre><FONT color=blu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big>† 103위 한국순교성인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b></big>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찬미 예수님~! 벗 님들~!!
<br>
오늘 묵상글의 우리신학연구소 최금자 위원께서는... 
'우리 조상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br>
앗! 저는...
'103위 한국순교성인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br>
오래전, 제가 영세를 받은 98년에. 
주보를 찬찬히 읽는 '아기신자'였을 때...
명동성당에서 개최하는 [성지순례 가이드]라는 교육이 있었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8주간의 교육이었는데, 저는 3기생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br>
바쁜 버스회사였지만, 
월요일은 제 휴무날이기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서 8주를 빠지지 않고
출석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절두산 성지에서 공부를 하며 평화방송에서
방영되었던 '한국순교자전'의 동영상 강의를 보신 분들은 들으셨겠지만,
김길수 사도요한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br>
8주간 동안, 서울대교구 안에 있는 다섯 군데 성지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성지순례 가이드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명동성당, 약현성당, 새남터성지,
당고개성지, 그리고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입니다.
<br>
벗 님들도 아시다싶이,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한국 최대의 순교지입니다.
<b><big>한수산</big>  성지 순례기</b>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곳이지요.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서소문. 44명의 순교 성인 성녀가 죽음으로 하느님을 증거하고 영광의 꽃으로 
피어난 곳이다. 어찌 그뿐이랴.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뿌리며 스러져 간 한국 최대의 순교지이다.
<br>
그러나, 그러나 오늘 서소문 순교지는 적막하다. 소음에 둘러싸여 차라리 
너무나 적막하다.
<br>
1801년 신유박해에서부터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의 여진이 끝나는 
1871년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꽃처럼 떨어져 갔다.
<br>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 순교자 현양탑이 돌기둥 세 개로 솟아올라 있다.그러나
다른 사적지와는 달리 순례자의 발길을 보기가 힘들다. 장소부터가 고요함과는
거리가 먼 도심 한복판이어설까. 
<br>
광화문 근처에 나왔다가 이곳에 들를 때마다 만난 공원의 순교자 현양탑 앞 표
정은 서글펐다.노숙자가 서성거리고,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소리
를 질러 대고, 지치고 술 취한 남자가 현양탑 앞 벤치에 누워 잠을 자고, 젊은
남녀는 현양탑 계단에 퍼질러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기가 일쑤였다.
<br>
현양탑 앞 안내문 이렇게 되어 있다.
"서소문 즉 소의문(昭義門)은 아현과 남대문 밖의 칠패시장으로 통하던 문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붐비던 곳이었다.조선 시대의 사형 집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ㅇ르 주어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행해
졌으며 서소문 밖도 이러한 이유에서 1416년(태종 16년)에 서울의 주요한 형장
으로 지정되었다.
<br>
이곳 형장의 위치는 서소문 밖의 비탈진 언덕길 아래, 즉 현재의 서소문 공원
옆에 있던 이교(泥橋,흙다리)의 남쪽 백사장이엇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br>
1784년 겨울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100여 년 동안 박해가 계속되면서
천주교회는 전국적으로 1만 명 내외의 순교자를 탄생시켜야만 했다. 특히 이곳
서소문 밖 형장에서는 1801년의 신유박해 이래 1871년 무렵까지 수많은 신자들
이 처형되었으며, 그 중에서 44명의 순교자는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이하여 선포된 103위 성인 가운데포함되었다. 
<br>
이로써 서소문 밖은 성인 44명의 순교의 영광을 얻은 거룩한 믿음의 터전이요
또 다른 성인을 낳게 될 약속의 터전이 되었다.…"
<br>
공원을 새로 단장하면서 현양탑 앞에는 둥근 모양으로 된 다목적 광장과 휴게
광장이라는 이름의 쉼터가 들어섰다. 그리고 잔디가 깔린 공원 안에는 여기
저기에 조각 작품을 놓았다.
<br>
공원의 맨 안쪽에 돌과 나무를 섞어 만든 벤치들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순교자 
현양탑을 만난다. 둥글게 돌아간 세 개의 계단을 오르면, 나무를 모자이크하듯
박아 깔면서 드문드문 화강석을 섞어 놓은 아름다운 바닥이 현양탑을 받치고
있다. 
<br>
현양탑은 1센티미터 정도의 유리를 켜를 이루며 층층이 쌓아 올린 기단이 있고,
그 안에 잔 자갈을 깔면서 새 개의 커다란 돌기둥을 세웠다. 죄수들의 목에 씌
웠던 형틀을 형상하한 것임을 한눈에 알 수가 있는 조형물이다.
<br>
제일 높은 가운데 돌기둥에는<pre><FONT color=red style="FONT-SIZE: 12pt">
<b><big>"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마태5,6)</b></big>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이라는 말씀이 둥근 판 안에 금빛으로 음각되어 있다. 이 말씀 위로, 십자가에
몸이 매달린 수난상을 중심으로 수많은 순교자들의 고난에 찬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br>
여기에서 7개의 홈이 패어 올라가면서 목을 옥죄었던 형틀의 구멍에 이어지고,
여기서 다시 하나의 홈이 패어 올라가 돌기둥의 끝에 닿는다.
<br>
그 옆으로 똑같은 형태이면서 크기가 조금 작은 돌기둥이 좌우에 서서 대칭을
이룬다. 왼쪽 돌기둥에는 순교 성인의 이름이, 오른쪽에는 순교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스러져 간 꽃다운 이름들이다.
<br>
왼쪽 석주에는 '순교성인. 기해박해(1839) 41위. 병인박해(1866-1871) 3위'
라는 글과 함께 김업이 막달레나(1773-1839)로 부터 이곳에서 숨져 간 44위
성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br>
김업이.
남편과 함께 미신을 믿으며 살았으나 후에 언니의 가르침을 받아, 믿음과 덕망
의 한평생을 살었던 여인이다.그러나 워낙 기억력이 안좋아서 아침 저녁 기도문
을 끝내 배우지못했다고 전해지는 성인이다.
<br>
남명혁 다미아노. 
38세로 치명했다. 그는 사형이 확정된 후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이 세상은 주막집에 지나지 않고 천국이 우리의 참된 고향이니, 주를 위하여 
죽어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히 당신을 만나기를 바라오."라는 애절한 마음을 
남기고 떠난 아름다운 영혼이었다.
<br>
정하상 바오로(1784-1839)가 9월 22일 순교한 이곳 서소문 밖에서는 몇달 뒤
겨울, 누이동생 동정녀 정정혜 엘리사벳이 순교한다. 그녀와 함께 순교하는 
고순이 바르바라와 남편인 박종원 아우구스티노의 이름이 새겨진 드높은 
현양탑을 쳐다본다. 찬란하여라, 그 이름. 부부 성인이시여!
<br>
고순이는 1801년 순교한 고광성의 딸로, 남편 박종원과 결혼하여 안팍으로 
본보기가 되는 가정을 이루었다. 함께 잡혀 들어간 후에도 부부는 옥중에서 
만나 천주께 감사하며 이 고통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 나가자고 서로 격려하
였고, 두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자 형리는 부부를 함께 고문했다.
<br>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고순이는 "전에는 순교 이야기만 들어도 떨렸는데,
성신께서 은총으로 감싸 주시어 지금은 기쁘기만 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br>
남종삼 요한은 1866년 3월 7일 이곳에서 순교했다. 
이틀 뒤에는 전장운 요한과 최 형 베드로의 죽음이 이어졌다.
<br>
이소사 아가다가 치명했을 때는 56세였다. 당시에는 과부를 소사(召史)라고
불렀기 때문에 '소사'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도 없이 '이 과부'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br>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화평한 기색과 기쁜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아름다운 언행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기해일기)는 이 성인의 행적을 적고
있다.
<br>
현양탑에 이름이 새겨진 이들을 생각하는 내내 주변에는 자동차의 소음이 
마치 자갈을 쏟아 붓듯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이름들을 읽어 내려가는 가슴
이 저려 오는 것은, 조그많고 아주 조그맣게 이 잡답(雜沓)속에 새져져 있는 
이름들의 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br>
오른쪽 돌기둥에는 
'순교자. 신유박해(1801) 외 44위, 병인박해(1866-1871) 10위'라고 새긴 
밑으로 순교자들의 이름이 이어진다. 
<br>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1760-1801년), 
최필공 토마스(1745-1801년), 
최창현 요한(1754-1801년) … 4월 8일 같은 날 희광이의 칼날에 목이 꺾이며,
하느님의 빛나는 얼굴을 보기 위해 함께 떠났다.
<br>
교회사를 읽으며 어느새 낯익어진 이름들이 보인다. 차마 그 이름을 읽어내려
가기가 힘들어, 눈시울이 흐려진다. 어느 그리운 사람을 만나듯, 여기 와서 
그들의 소식들 듣듯이 그렇게 흐린 눈길로 그 이름들을 더듬는다.
<br>
황 신 토마스도 있고, 최인철 이냐시오의 이름도 보인다. 1801년 11월 18일
그들이 순교한 후 황사영도 12월 10일 이곳에서 숨이 끊긴다. 
<br>
아,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의 이름도 보인다. 강경복
수산나에 이어 초기 교회에서 여성으로 그 뛰어난 발자취를 남긴 강완숙 
골룸바의 이름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녀도 같은 해 8월 2일 여기에서 순교했다.
<br>
맨 위로 정약종에서 시작된 이름이 예비신자 이돈호 ( ~1871년 5월 27일)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이들 가운데는 성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도 있다. 공원 밖으로 기차가 지나가는가. 건널목의 차단기가 
내려지는 소리가 땡땡거리며 들려 온다.
<br>
<br>
현양비 뒤편 중앙 석주에는 <pre><FONT color=red style="FONT-SIZE: 12pt">
<b>"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입니다.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라는 요한 복음 11장의 말씀이 둥근 석판에 금빛으로 음각되어 있다.
<br>
밤에는 아름답게 불을 밝힐 수도 있게 되어 있는, 가톨릭 조형 미술 연구소
조광호 신부가 만든 아름다운 구조물을 오래오래 바라보며 나는 서 있었다.
길 건너 어디선가 시위대가 불러 대는 '산자여 따르라'는 노래가 바람에 실려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br>
한국 천주교회에 있어 '믿음의 터전'이었으며 '약속의 터전'이었던 장엄한 자리,
이곳. 그러나 저 영광의 이름들을 기리고, 피로 물든 땅 이곳의 뜻을 되새기기에
오늘 서소문의 그 자리는 너무 척박했고 또 가난했다. 
<br>
이만한 '순교자 현양비'라도 들어선 것에 "그래도… 그나마…"하면서 자위해야
하는 것인가.
<br>
공원 안에는 고려 왕조 초기에 활약했던 윤 관 장군의 동상이 우람하게 세워져
있었다. 태조 왕건의 건국 이념을 이어받아 고구려 옛 강토인 북녘의 실지를
회복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왜 무슨 연유로 여기에 그의
동상이 서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br>
크고 높은 것만으로 어찌 그 영광을 드러내 보일 수 있으랴. 후대가 세워 놓은
기념물의 크기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던가. 돌아오는 마음속에,현양탑 안내문
에 써 있던 말들이 남앗다.
<br>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성인 탄생을 기리기 위해 1984년 이곳 서소문공원 안에
순교자 현양탑을 건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공원이 새로 단장되면서
기존의 현양탑이 헐리게 되었고 이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는 오늘 이 자리에 
새 순교자 현양탑을 세우게 된 것이다. 
<br>
이 현양탑을 세우는 목적은 천주교의 44명의 성인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진리를
증거하다가 희생된 수많은 유명 무명의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하는 데 있다.
<br>
아울러 그들의 위대한 정신과 믿음을 후손에 전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이 순교자들을 본받아 하느님의 말씀의 증인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으로 
1999년 성령 강림일에 이 탑을 이곳에 세운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    - 생활성서사 발간, 『한수산 성지순례기』에서 옮김 -</b>
<br>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8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다시 6개월 연장으로 이어진 것은...
공부를 하고 있던 모든 분들이 공부하면서 뜨거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br>
1999년, 성령 강림일...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미사를 드리는 인파에 끼어 귀퉁이에 서서 울고 있던 [조안나] 아지매.
<br>
틈날 때마다...
삼성산 성지와, 서소문 밖 성지에 가서...
나의 믿음의 조상들이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나즈막히 고했습니다.
<br>
내가 서 있는 지금의 신앙주소에는...
그렇게 많은 핏값이 치뤄졌음을 배웠습니다.
그런후, 앗! 나는 2001년 3월 10일에 미국 케네디 공항을 밟았습니다
<br>
오년이라는...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나긴 시간동안 불도가니에서 
달구어진 후에, 살아 계신 우리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오늘 물동이의 이 말씀을 붙잡습니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br>
내 뜻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구원 계획이 무엇인지를 
매순간 성찰하면서 살아갈 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이제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긴긴 글을 또디닥띠디닥 타자로 쳐서 벗 님들과 함께 나눕니다.
<br>
긴긴 글이었습니까!...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치면서 자꾸자꾸 앞이 희미해져 빨리 타자할 수 
없어... 더욱 늦어졌습니다...
<br>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고 
믿음의 선조들이 불렀던 그 하느님께.
<br>
103위 한국순교성인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br>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앞으로 시복 시성되어져야 할 성인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름조차 알리지 못하고 순교하신 무명순교자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살아온 날들의 아픈 상처들도 이제는 다 놓아버립니다.
그것은 내게 더 이상 중요한 것들이 아닙니다.
<br>
오늘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신앙의 주소 안에서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그분들이 내게는 더 소중합니다. 
그분들의 삶과 얼을 널리 널리 전하다가 부름을 받고 싶을뿐입니다.
<br>
한 말씀 더 새기고 오늘의 야곱이를 마칩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영생이란 바로 지금입니다. 오늘입니다. 
오늘 영생을 살지 못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삶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찬미 예수님~! 벗 님들...!
<br>
저는 오늘 이 성가로 매일매일 기도를 합니다.
성가는 곡조있는 기도쟎습니까!.
벗 님들도 외우셔서 기도하고 싶을 때에 한 번 불러보십시오...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하나가득히 고이게 될 것입니다...
<br>
지난번 말씀드린... (11월 14일 야곱의 우물에서)
<b><big>http://blog.dreamwiz.com/vlfrn04/4659707 </b></big>
[굿모닝도사의 주간 스케치] 라는 홈피에 계신
이 필구 아우구스띠노 형제님께서 오늘 진천에 있는 베티성지로 순례를 갑니다.
<br>
오늘은 시간이 없으시거나, 또 모르신 분이라면...
아랫 멜 주소로 연락하시어 정보를 교환하실 수 있으십니다.
<b><big>pillku@ hanmail.net </b></big>
<br>
매주 토요일은...
거의 성지순례를 가십니다.*^^*
<br>
<pre><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b><big>♬ 주여 어서 오소서 ♬</b></big>
<br>
주여 어서 오소서 내마음에 오소서 애타게도 바라니 어서빨리 오소서
예수 없이 내영혼 어찌능히 살리요 이렇듯이 애원함 굽어들어 주소서
온 세상의 모든복 만족함이 없으리 주의사랑 내맘에 만족하고 남도다
주님 내게 오시기 항상부족 하오나 한말씀만 하소서 깨끗하여 지리다
<br>
<pre><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ig>†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big></b>
<br>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height=70 src="http://cafe210.daum.net/cafeimg-proxy?
 grpcode=Coreansanctus&imgType=logo&time=1127253570000"
 width=230 align=absMiddle border=0><FONT color=red><FONT size=3> 
<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FONT> 
<IMG src="http://youngminene.com.ne.kr/New_Menu/image/brigid_logo.gif" border=0> </ul>
<br>
<EMBED style src=http://sungga.catholic.or.kr/mp3/2004090154.mp3 type=audio/m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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