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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숨어서 오신 이유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20 조회수707 추천수3 반대(0) 신고

                          

                               숨어서 오신 이유

 

 

 

오늘은 가해를 마무리 하는 연중 34주일이자 그리스도와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그리스도의 권능, 다스림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권능과 영광이 온 만물에 가득하고 그리스도 다스림으로 인하여 모든 이 하나가 되는 그날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 곧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오시는 재림입니다.

재림 시에는 그분의 영광과 권능을 숨기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실 것입니다. 당신의 때가, 곧 구원의 때와 심판의 때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리스도의 왕직을 숨기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은 첫 번째 오심과는 다르게, 당당히 자신의 신분, 권능과 다스림을 드러내는 영광의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첫 번째 오실 때에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셨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이 그러합니다. 에집트로 피신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상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다음 때를 기약하며 떠나갔던 마귀의 마지막 유혹이라 할 수 있는 “만약,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거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라는 시련과 유혹 속에서도...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굳굳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셨습니다.


그럼으로써 한님의 구원의지와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요, 자신의 이루어야할 사명이기 때문에 끝내 당신의 왕권을 드러내시지 않고 숨기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권능과 다스림은 남들 위에서서 호령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다스리고 부리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왕직이요, 다스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 생각과는 다른 왕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남보다 위에 서려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낮아지셨습니다.

우리는 힘입고 빽 있는 사람들과 친 하려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요, 벗으로 살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 곧 그 사람의 됨됨이 태도, 인상 말씨를 보고 사람들을 평가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곧 왕직이.. 다스림이 바로 섬기고 봉사하는 직분이기 때문에 숨어서 오신 것입니다.

당신을 따르는 우리에게 왕직이 참된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서, 곧 ‘너희들도 나의 왕직을 받았으니, 나처럼 살아가고, 나처럼 사람들을 대해 주면서 나를 따라오너라.’ 라고 말씀하시기 위해 그리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역시 예수처럼 남에게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섬기고 봉사하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라는 마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실제로 그러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에 더욱더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 곧 당당히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숨어서 오시는 시기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진행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오늘 복음을 통해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너희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며, 해주지 않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라며 당신 친히 알려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 곧 두 번째 오심을 잘 준비하는 것은... 잘 깨어 종말을 기다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첫 번째 오신 주님을 어떻게 맞이하며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첫 번째 오신 예수님을 모시는 그 모습 그대로, 그 방식 그대로 두 번째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경험과 습득한 지식을 통해 한 가지 소중한 진리는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 어제까지 안 해왔던 것이 하루아침에 마음이 확 변하여 단번에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루 이틀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과거의 삶과 정반대의 삶, 모습으로 완벽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그렇게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경험으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루, 한 시간이 모여 일년, 일생이라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금 살아가는 모습.. 행하는 행동, 말, 생각이 습관이 되어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양이 되어야 합니까? 염소가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오른편에 있어야 합니까? 왼편에 있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구원이 되어야 합니까? 심판이 되어야 합니까?


그 결정은 지금 숨어서 오시는 나에게 오시는 그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하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기에 명확하게 ‘이 모습이다.’ 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항상 소외되고 가난한 모습으로만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라, 때로는 부자의 모습으로.. 건강한 모습으로도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음을 통해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은 바로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바로 나의 도움을 나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이.. 숨어서 오시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숨어서 찾아오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맞이하여 꿈에 ‘마르티노야, 이 모습이 바로 나였다.. 그 과부의 모습이.. 추위에 떨고 있던 그 노인의 모습이 바로 나였단다. 나를 잘 맞이하여 주어 고맙구나...’ 라는 칭찬을 들은 마르티노 성인처럼, 우리도 주님의 재림시에 ‘누구야, 이 모습이.. 바로 나였단다.. 숨어서 너를 찾아간 나를 이렇게 잘 맞아주어 고맙다.’ 라는 칭찬을 듣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아니, 욥의 고백처럼 ‘꼭 듣고야 말리라.’ 라고 다짐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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