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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17) 다시 첫 영성체를 한다면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20 조회수1,19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11월20일 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ㅡ에제키엘34,11-12.15-17;고린토1서15,20-26.28; 마태오25,31-46ㅡ

 

     다시 첫 영성체를 한다면

                                 이순의

 

 

교회의 전례력으로는 2005년을 마감하고 있다. 마지막 카운트 다운의 D-day가 일주일 뿐이며 다음 주면 새로운 한 해를 선포하게 된다. 더구나 이번 주 수요일에는 동장군도 벌벌 떨고, 국가도 어쩌지 못하고, 수험생 조차 수험생을 건들지 못한다는 국가 공인 수학능력 시험일이다. 그다지 투자를 해서 키워보지 못한 아들녀석의 성적이야 빤한데다가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식의 성적을 알면서도 그래도 자식이니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기대감을 동원하여 부모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정성을 다하는 시간만 남아있다.

 

부모의 가슴이 어데 수학능력 시험으로 자식을 향한 정성이 끝이 나겠는가 마는 그래도 품 안의 자식을 세상으로 내 보내는 첫 관문의 시험이라서 초조하고 불안하고, 또한 욕심도 있고 희망도 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은 세상의 어느 구석에 맞게 필요한 곳으로 인도하시리라는 바람을 청원하는 순간들일 것이다. 우리성당에서는 100일 동안의 기도모임이 이어져 왔다. 혼자서 하는 기도였다면 결코 100일이라는 만만치 않은 날들이 채워질 수 없었을 것이나 함께 모여서 하는 기도였으므로 100일이라는 날 수를 무사히 채워지고도 남음이 크다.

 

어찌된 영문인지 수험생 기도를 하면 할 수록 엄마들의 얼굴이 고단해져 가는 것이 아니라 불그레하여서 고운 홍빛이 돌고 있으니 엄마들끼리 농담 삼아서 하는 소리가 수험생 엄마라고 하지 말자고 했었다. 도 닦으러 다니다 보니 예뻐진 것은 얼굴 뿐이요, 편해 진 것은 마음 뿐이며, 아름다워진 것은 공동체의 힘뿐이더라고! 하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100일 치성을 마친 엄마들의 얼굴이 정말로 새색시 마냥 혈기가 돌고 근심이 없어 보이니, 각자 알아서 엄마들의 마음을 먼저 다스린 결과였으리라. 엄마들 인생에 또 언제 이렇게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여 기도를 해 볼 것인가를 생각해 보니 수험생 기도 뿐인 것 같다.

 

100일 치성은 엄마들에 따라서 인생에서 필요로 할 때 드릴 수도 있고 안 드릴 수도 있지만 치성의 지향은 결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식을 낳아서 키우다 보면 신앙의 과정들이 있는 것 같다. 유아세례 시킨다고 강보에 싸진 아기를 안고 마냥 기뻤던 신심에서 부터, 첫 영성체 때가 돌아오면 또 한 번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엄마들의 신심도 한 단계 올려져야 하고, 그러다가 식을 만 하면 아이들 견진교리 한다고 또 분주하다. 그리고 또 식을 만 하면 자녀로 인해서 최고조의 신심을 발휘해야 하는 때를 맞는다. 바로 수험생을 위한 기도의 시기에서 그동안 마련해 온 모든 신앙의 정성을 총동원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사회의 질서를 따라서 부모의 품을 벗어난 자식들은 신앙도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삶의 과정에 따라서 자녀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냉담의 길을 가기도 하고, 개종의 길을 가기도 한다. 아무리 부모님이 물려 준 신앙이라도 어림잡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본인의 진로와 함께 종교의 진로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험생 기도가 갖는 의미는 부모에게도 중요하지만 자녀에게도 상당한 본보기의 뿌리다짐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미를 부여해 본다. 우리 엄마들은 100일 동안의 기도를 본당에서 해왔다.

 

그러나 본당에서 허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100일 동안이나 성지를 찾으며 정말로 치성다운 치성을 드리는 엄마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심히 나의 어줍잖은 기도법이 새삼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더구나 밤에 퇴근하신 아빠들까지 가세를 하여 성지를 찾거나 십자가의 길 기도를 열심으로 받쳤다는 정성들을 들어보면서 나와 내 짝궁은 자식을 위해서 준 것이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돈마저 부족해서 돈도 주지 못했는데 기도 마저 그런 기도를 드려 본 적이 없었으니.....

 

그리고 맨날맨날 한다는 소리가 <아빠는 복이 그것 뿐이셔서 하는 일마다 안되었지만 너는 네 복이 있을거니까 정히 어려우면 굳이 취직 걱정하지 말고 퇴직도 없는 아빠 뒤를 이어서 시장에서 일을 배우면 된다. 그러니까 시험에 압박 받지 말고 편안히 살으라.>고 위로만 해 주었다. 태몽이 비상하여 신부님이 될 줄 알았는데 본인이 싫다고 하니 그런 꿈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월등히 공부를 잘해서 출세를 할만한 실력도 없고..... 그렇다면 삼팔육이나 사오정, 또는 오륙도라 하여 불안한 인생을 사는 것 보다는 아빠의 상술을 배워서 아빠보다는 더 나은 복만큼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위로를 해 주었다.

 

그런데도 설사를 하고, 코피를 쏟고, 눈 주위에는 다크써클인지 뭔지가 둘러져서 새까맣고, 얼굴은 통통하긴 한데 혈색은 피골이 상접하고, 먹고 의자에만 앉아있으니 체중은 불어나고.... 아 참! 수염도 길러서 꼬질꼬질하고.... 공부 또한 기가 막히게 하지도 않으면서 수험생 티는 오리지날로다가 다 표시를 하고있다. 그래도 자식이 하나 뿐이라서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음에 아깝고 아까운 순간들이다. 그런데 주일미사에 다녀 온 아들녀석이 엉둥한 말을 뱉었다. 다시 첫영성체를 한다면 기도를 다시 정하여 하겠다는 것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에게는 기도를 그렇게 시키겠다는 것이다.

 

내 아들녀석이 첫영성체를 할 적에 기도를 세 가지를 정하라고 했었다. 내가 세례를 준비하고 첫영성체를 하려고 할 때 교리를 해 주신 수녀님께서 기도문을 세 개를 정해서 하라는 것이었다. 그 기도는 성령께서 거의 들어 주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세 가지의 기도를 했었고, 수녀님이 되고싶다는 기도를 제외한 두 개의 기도가 벌써 완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도 내 아들녀석에게 세 가지의 기도문을 정하도록했다. 그래서 아들의 첫영성체 기도는

 

1- 김대건 신부님 같은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2- 김대건 신부님처럼 지구 세상에서 유명해지게 해 주세요.

3- 나쁜 친구들을 착하게 인도하는 친구가 되게 해 주세요.

이런 내용이었다.

 

팔불출인 엄마는 이 기도문을 친구 수녀님이라든지 친한 신부님께 자랑을 하고 다녔었다. 그런데 늘 위의 두 개는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고, 마지막 세 번째의 기도문 때문에 칭찬을 들었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미된 심정은 위에 두 개의 기도문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내심은 섭섭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그러든지 말든지 모든 분들은 세 번째의 기도문만 좋아하셨었다. 그런데 수학능력 시험을 사흘 앞에 둔 아들녀석이 다시 첫영성체를 하거나 자기의 아들녀석에게 압박을 해서라도 꼭 하게 하고 싶은 기도문을 정했다는 것이다.

 

1- 수학능력시험에 만점을 받게 해 주세요.

2- 나중에 UN 사무국총장이 되게 해 주세요.

3- 그걸로 세계를 평화롭게 해 주세요.

 

내가 볼 적에는 지금 정한 기도가 첫영성체 때 한 기도보다 훨씬 이루어지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자기의 아들녀석에게 압박을 강행해서라도 그런 기도를 하게 하고야 말을 것이란다. 두 개의 기도가 공통적인 것도 있다. 지구 세상에서 유명해진다는 면에서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고, 다른점은 하느님적인 기도문이 세속화 되었다는 것이다. 첫영성체 때의 기도문은 이익이 없는 반면에 새로 정한 기도문은 영욕에 가득찬 특권으로 세상을 지키려고 하는....... 순수했던 어린 아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또 대학을 선별해서 점수를 따라서 적성과 관계없이 진학하게 될 것이고, 아들녀석은 그곳에서 또 다른 세계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 또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격어야 할 과정일 것이고 어미된 심정은 치성을 드리며 지켜봐야만 한다.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별다른 사고나 커다란 탈 없이 12년의 정규 교육과정을 마처주는 아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지금도 나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사제의 길을 선택한다해도 세속의 대학을 선택한다해도, 아니면 아빠를 따라서 상업의 길을 간다해도 대환영이다. 

 

그 중에서 사제의 길은 은총의 기쁨이나 가장 두렵고 가슴 아픈 길이요, 대학을 선택하는 길은 희망적이나 걱정과 근심에 쌓일 것이며, 아빠를 따르는 길은 조금은 섭섭하겠지만 아빠가 걸어 본 길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안심이 되는 길이다. 나는 100일 동안의 기도에서 내가 가지는 욕심을 청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식에 대한 욕심조차 없었다면 어미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올 한 해의 삶의 전개 과정이 나에게 욕심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우고 이런 세 가지의 구체적인 대안을 생각하고 아들의 진로를 청원드린 것이다.

 

이번 주에는 아들의 고등학교 3학년의 전례를 마감 짓게 되고, 다음 주에는 어느 정도의 자기 점수 안에서 새로운 계획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신부님은 말씀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볼 때 예수님은 메시아가 틀립없었습니다. 틀림없는 메시아가 하시는 일이 기껏 병자들이나 치유 하시고 설교나 하며 군중들이나 모아서 가르치시는 소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을 수 있었고, 유대군중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습니다.-중략- 권력과 제물의 왕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복음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참 왕이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아들이 첫영성체 기도문을 바꾸고 싶을 만큼 현실에 직면해 있을 때, 우리들의 주님께서는 결코 특권을 위해서 왕으로 오시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주님께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으시느라고 이스라엘의 세속적인 소망을 세속적으로 이루려하지 않으시고 영적으로 완성해 가셨다. 사람이 가는 모든 길이 세속의 길이기는 하나 그 맺은 결실은 영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길을 가든지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이끄시는 온전한 은총에 순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세속의 세상에서 좀 못산다는 사람도, 좀 거칠다는 사람도, 좀 천하다는 사람도, 좀 아픈 사람도, 좀 슬픈 사람도, 모두모두 희망이 있고 사랑이 있지 않겠는가?!

 

주님을 믿기 때문에 그 길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라 해도, 이스라엘 군중들처럼 능멸하고, 침을 뱉고, 돌을 던진다 해도, 기꺼이 가 볼만한 길이라고 믿으며! 

 

ㅡ"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 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 잡게 할 것이다. 마태오25,31-33ㅡ    

 

 

 

약현성당 내의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에서

성인들의 유해를 모시고 성인 호칭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엄마들 숫자가 더 많은데 사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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