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이 주간의 사색 : 평신자의 본분, 그리고 그 신원에 대한 고찰 / 하 미카엘 神父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20 조회수866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 주간의 사색 : 평신자의 본분, 그리고 그 신원에 대한 고찰 / 하 미카엘 神父

 

교회는 신비로운 몸과 같다.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구성돼 있듯 교회도 영적인 요소와

육적인 요소로 구성돼 있다.

교회의 영적인 요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령이 그 혼 즉 영이 된다

하겠으며 교회의 몸은 뇌, 심장, 오감, 지체 같은 기관과 기능, 신경망 같은 것으로

교황, 주교, 사제, 부제, 그리고 평신자로 이루어져 있다 하겠다.

이 몸의 기능과 정신의 기능이 합쳐 교회의 영성을 형성하며 그것이 교회의 인격이 된다.

 

현 교회의 모습은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신 후 약 2천년 동안 만들어져 온 결과이다.

현 교회의 성격과 정신, 추구 가치관을 이해하려면 교회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왔으며 무엇을 중요시 하고, 어떻게 기능하느냐를 보면 될 것이다.

 

그것이 교회의 인격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과거사가 현재를 만들었으며 그리고 현재가

미래 교회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 교회는 뜻 상으로 볼 때는 세상에 세워진 하느님 나라

라고 하겠으며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실현해 가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고 하느님의 뜻

은 인간 구원에 초점이 주어져 있다.

이 하느님 나라는 예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자들의 병을 고쳐

주시며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점점 자라나 완성돼가는 것으로

표현된다.

 

제2 바티칸 공의회 이전만 하더라도 교회의 기능은 성직자 위주로 기능해 왔다.

특히 주교는 지역 교회(교구)에서 절대권자였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법 제정권,

사목권, 임명권 모두를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 사제는 단지 그의 보조자이다.

주교로 부터 파견돼 주교가 부여한 권한을 본당에서 주교를 대신해 주교 사목을 하는

주교의 기능이요 지체 역할을 한다.

사제들은 본당에 있어서는 주교의 대리자로 주교의 독점적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니

평신자들은 수동적이고 순응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2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몸의 세포가 그 하나하나

가 살아있는 생명체요 그 자체로 인간 생명의 모습 전체를 형성하고 전체와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듯이 평신자도 이제 교회라는 생명체의 살아 있는 한 실체로써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의 기능에 있어서도 전에는 성직자가 기능하고 평신자는 그 기능의 대상에 불과하다

싶었지만 이제는 평신도도 교회 조직과 기능의 핵심적인 부분에 다가가고 있다.

아직도 평신도에게는 법적인 권한이 주어지지 않고 있지만 점차 교회의 핵심적인

기능과 역할에 다가가게 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이제 20세기에 와서 세상과 사람이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관도 내세적인데서 현세적 가치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교회도 변화하고

성장하지 않고서는 퇴보하거나 침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현대 교회는 침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신앙적 요소인 성령과 교회 조직

체계만으로는 살아있는 교회로써 최대로 기능할 수 없고 성장해 갈 수 없다.

 

몸과 마음이 하나여야 하듯이 성령의 이끄심과 조직체계, 그리고 그 구성원인 평신자가

일체가 되지 않으면 몸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이제 침체 현상을

통해 그런 문제점을 조금씩 터득해 가고 있다. 단지 오랫동안 만들어진 인격 형태가

쉽게 변화할 수 없다는 것 뿐이지 변화해야 할 필요성은 절대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성직자들도 이제는 교회가 신자들을 위한 신자들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기

시작하였고 평신자들도 자신의 위상을 조금씩 알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는 평신자들도

교회의 실체로써 교회 문제에 적극 다가가야 한다.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가 각기 자기 맡은 역할을 통해 함께 하는 교회로 바뀌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공동체라는 개념이 교회에 적극 되살아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제 더욱 공동체적

사고가 교회에 도입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공동체적 사고가 이루어져야 하고 서로

권한과 책임을 나누어쥐어야 한다.

그래야 활성화 될 수 있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짊어지고는 적극적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도 권한은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구성원은 각기 맡은 역할을 효과적

으로 수행함으로써 다른 회원들과 기능의 조화를이루어 가야 한다.

그래서 성서는 교회를 신비체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며 자기 역할을 다하면서도 다른 이의

역할과 조화를 이루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신비로운 몸은 여러 지체로 구성돼 있지만

자기 역할이 다른 기능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전체가 한 목적을 위해 기능하게 돼 있다.

 

이제는 전체가 하나로 통합돼 기능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이라는 형태

보다 공동체라는 형태가 더욱 효과적인 것이다.

신비로운 몸은 서로 감싸주고 서로 다른 기능과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를

 위해 기능한다. 교회가 하나의 신비로운 몸으로 살아가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를  위한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평신자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자신이 자신의 신원을 알고 찾아갈 때 자신의 권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권리를 찾으려 할 때 비로소 권리를 되돌려 주는 것이다.

 

현대 교회는 이제야 공동체 운동 특히 소공체 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지만 아직은 유아

상태이다. 왜 유아상태라 볼 수 있느냐? 소공동체가 바로 하나의 교회여야 하는데 아직은

상급 교회의 필요를 위해서만 긴요하기 때문이다.

반이나 구역은 소공동체라 일컬어지면서도 본당이나 교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신원이

정립되지 않은 사람은 인격인 이라 할 수 없고 인격체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회적 기능

을 할 수 없듯이 소공동체든 대공동체든 전인적 인격체가 되지 않고서는 통합적으로 기능

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 구성의 두 중요 실체 즉 성직자와 평신자는 다 같이 각기 자신의 신원과 위상, 역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만 할 때가 왔다.  성직자(주교,사제)는 자신의 신원을 평신자

의 입장을 나와 동등한, 나와 진정으로 함께 해야 할, 나는 그들의 영적 이익을 위해 존재

하는 봉사자의 신원 의식을 가져야 하며 평신도는 자신들의 삶과 삶의 기능이 성직자들과

조화를 이루며 어떻게 개인적 삶의 가치를 교회의 정신과 가치관에 부합시켜가고 공동체

의 공동 목표 달성에 이바지 하느냐를 적극 추구해야 한다.

평신자도 이제는 어떻게 기능함으로써 공동체 안에서의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달성하고

실현해 갈 수 잇느냐? 하는 관점으로 바꿔가야 한다.

 

평신도는 이제 두 가지 중요 관점에서 자신의 신원을 파악하고 공동체 일원으로써의 존재

의미를 살려가며 자아 가치를 살려가야 한다. 몸의 모든 지체는 다 고유한 역할을 함으로

써 존재한다. 모든 평신자는 자신의 관심과 달란트에 따라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다른 이와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에 속해 공동적 역할을 수행해 가야 한다.

공동체의 조직적 기능 속에서 기능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미사성제라든지 고백성사나 혼인성사등 고유한 성사적 임무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평신자는 자신의 전문성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교회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일까지도 담당하여야 한다. 

 

성직자는 순수한 성사 집행과 복음전파, 신자 교육, 신자 보살핌에 몰 두 할 수 있어야

하고 공동체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데 그 원동력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교회를 운영하고 관리하며 서로 힘을 모아 공동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서로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체가 개인을 보살피도록 할 수 있느냐를 실천

해 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서로 사랑으로 함께 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초세기 교회도 교회의 관리 운영은 신자들 중에서 덕망 있는 사람을 뽑아 기 역할을

맡겼다. 오늘날 교회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야 평신자들도 자신의 신원을 이해

하고 자신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자기 역할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자율성과 창조성, 책임성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야만 공동체는 활성화 될 수

 있다. 자신이속한 공동체의 일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평신자는 사회의 일원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는 바로 하느님 나라

이다. 공동체 내 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 전체가 하느님 뜻 안에서 기능할 수 있어야 우리

삶의 환경이 좋아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속한 사회는 복음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소금이다". "등불과 같다"고도 하셨다.

 

복음 정신과 가치관으로 변화된 사람으로서 사회 속에 살라는 말이다. 평신자들이 복음적

정신과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 사랑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삶을 구원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평신자의 또 다른 신원이

발견된다. 음식의 맛은 삶의 맛을 말한다.

진정한 삶의 복음적 가치관에서 오는 것이다.

 

세상의 오류와 불행은 모두 왜곡된 진실과 잘못된 삶의 형태에서 비롯된다. 이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진리에 따라 삶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데서 오류에서 벗어나 참된 삶이 만들어지게 된다. 세상은 오류도 가득하고

부패되어 있다. 이를 자신들의 참다운 삶을 통해 세상을 밝게 비추어 가야 한다.

어둠은 빛을 통해 분별된다.

신자들의 참다운 삶의 형태를 통해 세상의 오류가 바로잡힐 때 세상을 밝아지는 것이며

이를 어둠에 대비해 빛이라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밝히고 오류를 바로잡아가는 것이

평신도의 역할이다. 평신자의 삶의 태도가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면 자신들의 삶 자체뿐

아니라 자신들의 주변 세계가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들의 주변 세계를

참답게 밝혀가야 한다. 그게 신앙인이고 신앙인의 모습인 것이다.

 

세상을 밝혀라!

그리고 교회 공동체 일에 적극 참여해 자기 역할을 해 가라!

 

교회 공동체는 오로지 평신도들을 위해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를 위해 세상에 당신 교회를 세우셨다. 성직자들은 단지 그리스도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신자들울 위해 봉사하도록 뽑힌 이들이다. 공동체의 주인은 공동체의 회원

이지 공동체 임원들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의 주인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세상의 주인

이듯이 공동체의 주인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공동체를 비추는 빛이요 공동체의 맛을 내는

양념인 것이다.

 

예수님은 그래서 여러분이 공동체와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의 공동체를 성직자들에게만 맡겨두지 말아라! 여러분이 적극 주도해 가라!


2005. 11. 13일 평신도 주일에

인의 하재별 미카엘 신부   e-mail : shhdc@hanmail.net
성심인간계발원 http://cafe.daum.net/nbnsm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