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남들과 나눌 수 있게 덜어 놓는 내 몫 | |||
---|---|---|---|---|
작성자김선진 | 작성일2005-11-21 | 조회수67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찬미 예수!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루가 복음 21장 4절 성서에서는 과부나 고아들을 불쌍한 사람의 대명사처럼 여러군데서 언급하고 있다. 아파트나 콘도미니엄과 비교해 보면, 독립 가옥을 지니고 살면 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곳 사람들은 정원 가꾸기, 잔디 깍기, 낙엽 긁어 모으기, 눈 치우기, 페인트 칠 하기 등을 어려서 부터 익숙하게 보았을 뿐 아니라 아빠, 엄마를 도와 해 왔던 사람들이라 몸에 배어 토 요일, 일요일이면 늘 밖에서 애나 어른이나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 남자들도 조차도 몸에 익숙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여자 혼자의 몸으로 집 안과 밖의 일을 맡아서 하노라면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된다. 우리 성당 공동체에도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분이 있었다. 혼자서 집안 일을 꾸려 나가느라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주변의 아는 지기들이 많이 도와 주려고 애썼으나 감당하기엔 역 부족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젊고 아리따운 아내를 먼저 하느님 품에 보내신 우리 공동체의 홀아비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면에서 조금 과부보다 낫겠지만 여러면에서 곤란을 겪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분 다 얼마나 주님을 공경하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남들에게 베풀고 사는지 모른다. 공동체에서 회장직을 거쳐 간 두 분은 남다르게 교우들의 어려운 부분을 음으로 양으로 도우면서 하느님을 흠숭하고 이웃을 도우는데 헌신하시면서 살아 가시는데 늘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다행스럽게 과부님은 타 주로 이사하셔서 남은 인생을 너무 외롭지 않게 말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동반자를 만나셨다. 홀아비님께서도 회사에서 돌아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대방을 머지 않은 때에 만나게 되시길 바라고 있다. 어제 모처럼 온 가족을 대동하고 컨설트에 다녀 왔다. 오래 되었지만 주님이 계시는 성전에서 좋은 음악을 듣고 나니 참 행복했다. 남편과 무슨 일을 계획하면 스케쥴을 마추기가 힘들어, 늘 딸 애와 둘이서 음악회니 연극, 전시회등을 다니기가 십상이어서 속엣말로 ‘콜럼부스 과부가 장애자 딸과 못 가는 곳이 없네.’ 하곤 했는데 가족이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니 기쁨이 배가 넘었다. 행복한 마음 한 켠에 과부나 홀아비의 심정을 헤아리게 하는 안타까움이 생겼다. 또한 그들을 포함해서 이 사회에서 혜택을 받지 못 하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했나에 깊은 반성도 되었다. 내가 좋은 것을 보았을 때,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해 십분의 일이라도 그들을 위해 저금했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그들을 위해 내 것을 덜었었나? 근사한 내 옷을 살 때, 그들이 입을 수 있도록 얼마를 떼어 놓았나? 안락한 집에서 따뜻하고 시원함을 맘대로 누릴 때, 바깥에서 추위에 떠는 이, 무더위에 땀을 흘리는 이를 위해 얼마만큼 기부했나? 세세이 따지고 보니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사순절이면 헌미하였던 프로그램이 생각 난다. 식구들 밥을 할 때 한 컵을 모자르게 하고 남은 것은 모아서 내어 놓는 것이었는데 참으로 구체적인 절제와 기부의 형태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앞으론 모든 일에 계획한 것에서 불쌍한 이웃과 나눌 수 있게 조금 모자르게 실행하여 남도 나와 같은 기쁨을 누리게 하면 좋겠다. 주님, 가진 것을 전부 내어 놓는 과부의 헌금을 명심하여 절제하여 얻은 것을 기부하는 습관이 들게 인도해 주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