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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집팡이/ 퍼옴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21 조회수726 추천수1 반대(0) 신고
영성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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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 윤리] 43-하느님의 집팡이/장재봉 신부


장재봉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

 시편 23편은 일생 동안 자신이 체험한 야훼 하느님 축복을 잔잔하게 읊은 다윗의 시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편인 만큼, 저도 쉼을 얻고 싶을 때에 곧잘 묵상하는 행복한 글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윤리신학의 역할과 구실을 설명해 드리려는데 적당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마음에 평화를 얻으려 이 시를 암송했습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굳은 신뢰를 잃지 않고 하느님께 다가간 다윗의 진정이 우러난 만큼 그 푸른 풀밭에서 안온했던 다윗의 기쁨이 내 영혼에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하느님은 승리하십니다. 지친 이 몸이 생기 넘치도록 곧은 지름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죄로 파괴되거나 감소된 하느님과 관계가 원상 복귀되기 위해 정신적으로 진솔한 회개도 있어야 하지만 개인과 사회, 나아가 우주적 차원에서 선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하느님의 올바르고 거룩한 지혜로 설정된 벌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죄란 그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죄의 결과는 선의 무질서를 부르고, 그 피해가 점진적으로 커지게 합니다. 죄의 발생은 우주적 질서 혼란과 공동체 선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결과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 관계를 경멸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무상으로 주어진 하느님 사랑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인간이 하느님 사랑의 초대를 거부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하게 하며, 세상을 향한 문을 닫게 해 마음이 굳어지게 됩니다. 굳은 마음이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인색할 뿐 아니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상태, 사랑에 관한 무능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표현하기 힘든 불행이며 절망적 상태입니다. 세상 삶이 천국을 잃는 것이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까닭입니다.

 최후 심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단죄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 무서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에게는 이 땅에서 고통과 가난, 죽음과 아픔이 허락될 수 있습니다. 물론 더 큰 정화가 연옥의 불과 벌로 주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 논조는 죄에 대한 논의를 싫어하는 오늘날 사회에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벌의 필요성은 성서에도 분명히 언급됩니다(창세 3,16-19; 루가 19,41-44; 1고린 11,30 참조).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님께서 인도하는 푸른 풀밭만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 원의와 다르게 뭣 모르는 인간이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서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 죽음의 자리를 벗어나도록 하느님께서는 손수 막대기를 쥐십니다. '굽은 길을 벗어나도록 톡톡 건드려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윤리신학은 하느님의 손에 쥐어진 막대기라고 말씀드립니다. 우리를 인도하시어 은총과 복에 겨워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하느님의 지팡이가 윤리신학입니다. 그 지팡이가 나를 톡톡 건드리실 때 혹시 벌이라고 생각하시진 않으셨는지요?  "하느님 손길"이라는 격려의 위로마저 '당하는' 입장에서는 입에 발린 말에 불과한 느낌이 들고, 서운한 마음과 억울한 생각을 가질 수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은 좋은 것이며 우리를 위한 선물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하느님 마음과 손길이 우리에게는 썩 내키지 않는 방법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팡이는 우리 영혼의 정화와 윤리적 질서 확립과 하느님 영광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서 오늘도, 지금도 나를 톡톡 건드려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넘치도록 채워 주실 그 날의 기쁨을 우리 모두에게 주고 싶으신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깨닫고, 나를 따르는 고난이 종착점이 아닌 것을 안다면 어떠한 처지에서든 하느님 평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 인도하심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은 인간이 누리는 가장 큰 평화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1디모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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