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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절제
작성자김선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23 조회수826 추천수3 반대(0) 신고

찬미 예수!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루가 복음 21 19

 

지금 이 시대는 예수님때문에 박해를 받거나 끌려가서 감옥에 갇힐 일은 없다.

 

그러나 사도들이나 순교 성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유일한 신앙으로 고통을 견뎌냈듯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반드시 견뎌내야 할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미국 선진 사회의 망가지는 모습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들의 풍족한 물질 문화는 사람들을 절제하는 삶 하고는 멀게 몰아 가고 있다.

 

파티 문화가 발달된 이들은 생일이나 축일, 기념일등엔 어김없이 파티를 한다.

 

파티에선 모든 집기는 일회용이라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즉각 쓰레기로 처리된다. 워낙 발달된 파티 문화라 의례 그 축일에 해당되는 각 종 무늬와 색깔이 디자인되어 있는 집기에 냎킨과 컵까지 세트로 준비하는게 보통인데 질 또한 좋아서 여러번 사용해도, 찢어지거나 깨지지 않으면 마냥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인데도 한 번 사용되어진 것은 쓰레기로 버려진다.

 

음식 또한 남은 것은 버려지기가 일쑤다. 심지어는 손도 안 댄 케익이 그대로 쓰레기 통으로도 간다. 어느 파티에서 난 음식이 남으면 아까워서 내가 다 주워 먹느라 살이 찐다.’ 라고 했더니 나이가 한참된 선생님께서 당신 자신도 달걀을 깨고난 뒤 덩어리진 흰자를 깨끗이 훝어 버리는 습관이 있다면서 못 살던 산업 시대에 엄마들이 늘 그러셨다고 한다.

 

아프리카 난민들, 전쟁중인 중동의 어린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배곯고 있다는데 이 곳은 음식이  남아 돌아, 살 찌는 것을 염려하여 별 신경쓰지 않고 불 필요하면 버리는데 아주 능숙하다.

 

이 곳에서는 거리나 건물에 쓰레기가 뒹구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훈련도 잘 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곳 곳에 쓰레기통이 설치되어 있어서 생기는 쓰레기는 조금만 움직이면 버릴 수 있는 곳이 많다. 쓰레기 통에는 쓰레기 모으는 비닐 백이 들어 있는데  청소요원들은 생각도 없이 쓰레기가 찼건 안 찼건 상관없이 시간에 따라 헐렁한 봉지를 큰 쓰레기 통으로 옮긴다. 마음같아선 내가 달려가 한 봉지에 다 모으고 꽉 채워서 버려 주고 싶다.

 

행주나 수건대신 쓰는 페이퍼 타월역시 공공 장소에서는 주루룩 끌어 당겨서 마구 쓰고 있다.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샤워실에서 자신들의 수건이 있는데도 여기 저기에서 줄줄 나오는 페이퍼 타월로 쓰레기 통은 부풀어 있다.

 

특히 개인 것이 아닌 공공 물건일 때는 아낌없이 퍽퍽 쓰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 같다.

 

누구나 내 것일땐 아끼는 마음이 생겨도 내 것이 아닌 공동 소모품일때는 공짜라고 마구 사용하는게 사람 심리이지만 아껴쓰는 마음이야말로 절제하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다.

 

J. 모러스는 절제에 대하여 여러가지 면에서 말한다.

 

어린 시절 부터 자기 자아를 억제하는 습성을 서서히 길러서 극기를 얻는 덕을 카워야한다고 한다. 인형을 단념하는 것을 배운 소녀는 더 커서는 의복이나 오락을 포기할 수 있으며, 후일 그녀가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을 때는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서 자신을 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녀가 그것을 불평 없이 또 스스럼없이 실행하는 것은 그것이 성실하게 이행되어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다. 극기란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한탄이나 눈물 없이, 슬픔이나 불평 없이, 그리고 저항감 없이 수행되어야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제는 희생을 닮아야 한다고 한다.

 

또한 그는 긍정적인 두가지 가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하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물질적 가난, 검소함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품격을 크게 높여 주는 영적인 가난이라고 한다.

우리의 소비자 중심주의와 낭비의 시대에, 우리 지구가 생태학적 재앙을 넘어서 살아 남으려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검소함 절제라는 미덕과 자유와 사랑의 혼합물이며, 다른 이와 하느님을 향한 완전한 자기 헌신은 우리가 충심으로 찾아야 하는 것들이라고 한다.

 

한 끼에 한 공기만 먹는 사람은 거의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는 스코트 지방의 속담이 있다고 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식욕을 절제하려는 바로 그 노력이 식욕을 절제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는 자신의 윤리학에서 이 점에 대해 시사했다. 우리는 탐닉을 삼감으로써 절제할 수 있으며, 절제한 후에는 더 잘 탐닉을 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습을 하든 안 하든, 자기 조절의 미덕을 동경하며, 수양된 사람은 스스로 즐거울 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그렇다고 하면서 대니엘 웹스터의 말을 빌어 "자유는 건전한 자제에 비례해서 존재한다." 라고 말한다.

   화가 났음을 보이라고 유혹할 때 차분하게 있기.

   뭔가 속이기 쉬울 때 정직하기.

   누군가를 해치기 쉬울 때 친절하기.

등은 우리가 가장 고귀하게 여기는 내적인 통제로부터 나오는 힘을 지니는 특징적인 성격을 나타낸다고 한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고 하시면서 하느님을 믿는 확고한 믿음으로 참고 견뎌 내라고 당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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