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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당에 다니지 않았으면...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23 조회수1,111 추천수13 반대(0) 신고

 

 

                               성당에 다니지 않았으면...

 

 

복음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야 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과연 ‘나는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모욕을 당해본 적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 언제 제가 주님을 위해 비난과 수모와 모욕을 당했습니까?” 라는 지난주일 복음 말씀만 떠오를 뿐입니다.

대신에, ‘아이고, 성당 다닌다고 하면서... 명색이 신부라는 자가 이런 행동, 이런 말을 해도 되는가?’ 라는 부끄러운 일은 많이 생각나지만,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손해 본 것은 수모와 모욕을 당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떻습니까?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수모나, 박해, 비난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 쉽게 체험되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 말씀은 박해 상황에 대해.. 실제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당할 박해를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과 미움, 박해를 당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박해 시대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비난하거나, 박해하지 않습니다.

서두에서 간략하게 말씀드렸듯이, 여러 잘못과 실수에 의해 스스로 ‘신앙인이 이래도 되는가?’ ‘이런 행동, 잘못을 하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자괴심에 부끄러워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비난받지는 않습니다.


그럼, 오늘 복음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지금은 박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중국이나, 북한처럼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곳을 위한 말씀일까요?


이 말씀을 현실에 맞게 이렇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형제는 10년 전 군대를 제대 한 후, 성당 사무장으로 근무하였습니다.

당시 그 본당은 사무장이 유치원 차량 운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슬포에서 화순으로 가던 중, 그 중간지점에서 커브를 돌다가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사무장은 ‘버스가 차선을 넘어와서 접촉사고가 났으니, 별 탈 없을 것이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애들이 아직 타기 전이어서 감사합니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담당 경찰서에 가 보니, 상황은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버스는 옳게 운전을 했고, 사무장이 운전한 성당 봉고차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내가 아니라, 버스가 중앙선을 침범했습니다.’며 항변해 보았자, 경찰은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건을 담당하던 경찰로부터, ‘성당 다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되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입술을 깨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나마 성당을 다니기 때문에 이렇게 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경찰서를 다 때려 부셨을 것입니다.’는 말로 울분을 참았지만, 억울함은... 힘없는 자의 부당함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사고로 고심하던 신부님께 한 중년의 남자분이 찾아왔습니다.

‘신부님, 전에 성당 봉고차와 버스가 사고 날 때, 저의 집 앞이라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어디에 주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성당”이라는 문구를 보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는 말씀을 하며 사진을 건넸습니다.


그 사진 속에는 사무장의 말처럼 버스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사고가 난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당시 똑 부러지게 일을 처리하셨던 수녀님께 사진을 보여 드리자, 경찰의 일방적인 수사에 화가나 있던 수녀님께서는 바로 서귀포 경찰서에 가서 책임자를 만나고 사진을 건네며, 일련이 사건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해결 안 되면, 제주도 경찰청에 갈 겁니다.’는 협박(?)과 함께.... 말이지요.


그 후, 사건을 잘 처리되었습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버스기사와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와 친분이 있던 사이었습니다.

그래서 둘이서 짜고 사무장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다행이 사무장이 그 경찰의 처벌을 원치 않자 징계 정도로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좀더 잘해야 하는데...’ ‘이런 잘못을, 실수를 더 이상하면 안 되는데...’라는 반성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참고 넘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그 사무장처럼 자신의 성질대로, 분한 마음을 다 표현하고 싶지만, 성당에 다닌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한 번 더 참으려 노력하고, 실제 참을 수 있다면, 그 모습이 바로 현재 삶에서 주어지는 박해를 잘 참아내며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한 번 더 용서하고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예수님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게 된다면, 그 모습 그 삶이 바로 오늘날 우리를 유혹하는 많은 것들을 잘 참고 이겨내는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 박해 상황 때만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며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들을 순간순간 적절한 것을 미리 내려 주십니다.

바로, “어떠한 일에도, 어떤 처지에서도 미리 걱정하지 마라.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겠다.” 라는 말씀으로 함께 해 주십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근심 걱정을 없애 주십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심에도 우리는 늘 많은 근심과 걱정을 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진정 두려워할 것이,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요즘 들어 저는 제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지 묵상해 보게 됩니다.

제가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저의 건강을 잃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맺었던 많은 인간관계의 상실이 아니라, 저를 여유 있게 하고 도움을 주는 많은 재물의 상실이 아니라, 늘 나와 함께 살아가시는 하느님과의 관계의 단절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어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고 찾지 않게 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을...박해를 이겨내는 방법과 유혹에 대처하는 여러 방법을 내려주셔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엇을 참고 견디어야 하는지, 진정 무엇을 걱정해야하고,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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