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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19) 영심씨 고마워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24 조회수857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 11월24일 목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ㅡ다니엘6,12-28; 루가21,20-28ㅡ

 

      영심씨 고마워요.

                        이순의

 

 

<늦었으니까 들어오면 안되요.>

<아니예요. 늦지 않았어요. 저를 들여보내주세요.>

기어이 못 들어오게 해서 주저 앉았는데 누런 갈색빛 짙은 현미쌀이 커다란 머그잔 가득히 담겨져 있고 나는 그 쌀 위에다 턱을 고이고 앉아서 나를 못 들어오게 하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가.......

<엄마 일어나서 도시락 싸야지이...>

 

<엄마야! 오늘이 우리 아들 수능 시험날인데.....>

벌떡 일어나서 금방 꾸고 있었던 꿈을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이 안난다. 이런 날은 꿈이 대박이 나야하는데 생각이 나지를 않고 늦잠이라니? 어쩌나? 보온병과 보온 도시락 통을 뜨거운 물에 행구고, 어제 오후에 소고기 살을 서너 시간동안 푹 고아서 쭉쭉 찢어서 끓여 놓은 무국에 가스 불을 켜고 분주했지만 금방 꾼 꿈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리고 밥을 푸려고 밥솥의 뚜껑을 여는 순간에 금방 꾼 꿈이 현실로 나타나며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야? 주님께서 빨리 일어나서 밥하라는 꿈이었는데.....>

간밤에 밤 까고, 은행 까고, 팥 삶고, 콩 삶고, 대추 저며서, 찹쌀을 어제 낮 부터 담가 행구고 행구어 함께 전기 밥 솥에 앉혀 놓고 예약까지 누르고 잠을 잤다. 그런데 생쌀이 그대로다. 취사를 눌러야 하는데 아마도 당황하여 보온을 눌러 놓고, 잠을 자려다가 자려다가 못 자고 새벽녁에야 깜박 잠이 들었는데 자명종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는 엄마를 아들녀석이 깨운 것이다. 꿈이 현실이라서 누런 현미쌀처럼 다섯 가지 재료에 누렇게 갈색 빛 나는 찹쌀 때문에 시험장에도 못 들어가고 발버둥을 칠 것 같았다.

 

쌀을 반으로 나누어 전기 솥에는 취사를 누르고, 압력 솥은 가스렌지에 올려 놓고 센 불에 익히고 있었다. 급한김에 어제 밤에 남은 흰밥을 국물과 먹으라고 아들에게 일렀다. 다행히 큰 반응없이 밥을 잘 먹어준다. 그리고 위로까지 해 준다.

<엄마, 침착하세요. 원래가 옛날 부터 큰 일이 있으면 그 기에 눌려서 주변에서 접시가 깨지거나 밥이 설익거나 하였는데요.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요. 그 기를 희석시켜 주는 액땜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시간은 충분하니까 침착하세요.>

참! 그런 상황에 그냥 가겠다고 하지 않고 밥도 먹어주고 위로까지 해 주다니......

 

압력솥의 밥이 먼저 되었으나 압력솥은 뚜껑을 바로 열 수가 없다. 기다려서 밥이 어느정도 뜸이 들어야 열 수 있다. 육사때도 그러했지만 찰밥은 오곡과 함께 속을 든든하게 해 주고 긴장감을 풀어주며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꼭꼭 챙겨주는 편이다. 다른 반찬없이 국물과 함께 싸 주면 수험생에게는 부담이 없는 식사가 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시험 날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 것인가? 아들녀석은 더욱 침착했다. 간밤에 아빠는 시장으로 출근 하시면서 시험장에 갈 때는 엄마 차를 타지 말고 택시를 타라고 권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 차의 시동을 걸어 놓고 예열을 할테니 밥이 다 되면 나오라는 것이다.

 

자식이 시험 날에 그렇게도 엄마에게 침착하게 해 줄지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밥이 안익을 줄도 몰랐으니 아들이 엄마를 배려하리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뜨겁지 않고 따끈한 국을 보온병에 담고, 귤도 다섯 개, 초코렛도 다섯 개, 물 따로, 숟가락 젖가락도 챙기고 그리고 찰밥을 퍼서 보온 밥통에 담고 경황도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반찬은 저녁에 준비완료 상태였는데 아들녀석이 반찬은 넣지 말라는 것이었다. 육사시험을 본 경험이 있어서 반찬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반찬은 제외시켰다.

 

아들이 시험을 보는 학교는 교통도 좋고 가깝고 편리한 곳이다. 엄마들이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학교였다. 그런데 내 아이는 제2 외국어를 선택하여 그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교육제도의 개편으로 국사가 의무에서 선택으로 바뀌었고 많은 학생들이 국사를 기피하는 현상이 없지 않아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 나라 최고 국립명문대의 선택 의무 조항에 국사와 제2외국어가 들어있다. 그러므로 야망이 큰 성적우수 학생들은 망설이지 않고 국사와 제2외국어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성적 우수자도 아닐 뿐만 아니라 원대한 야망의 소유자도 아닌 내 아들이 그들 틈에 끼어서 그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다.

 

그랬다. 고교2학년에 선택과목을 결정할 때도 아들녀석은 거리낌 없이 국사를 선택했다. 요즈음 또는 앞으로의 세계는 외국과의 교류가 쉽고 빈번할텐데 국사가 선택사항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가치관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들녀석은 국사를 선택했고, 학교에서 난다 뜬다하는 친구들 틈에 섞여서 그 학교에서 시험을 보게 된 것이다. 오로지 내 아들은 최고의 명문 국립대에 대한 도전이라기 보다는 애국심에 의해서 국사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밥이 익지 않은 탓에 너무 급하게 서둘렀는지 오히려 늦기보다는 이른 시간에 무사히 시험장에 들여 보내고 서행운전을 하며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영심씨 고마워요. 내 아들 태워다 주셔서 고마워요.> 그 소리를 내내 반복하며 돌아왔다. 영심씨란 내 차의 이름이다. 성은 나를 따라서 이영심씨다. 새언니 차일 때는 새언니의 성을 따랐것지만 이제 나와 살고 있으니 이영심씨다. 내내 가난했으니 내 아들의 시험날에 내 차에 태워서 내 손으로 교문 앞까지 바래다 준다는 상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손으로 운전을 하고 내 자식을 태워서 시험장에 갈 수 있었다는 그 작은 사실이 그렇게도 감사한 은총으로 다가 온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영심씨를 쓰다듬으며 찬찬히 돌아왔다.

 

그리고 다급한 도시락 준비로 널부러진 풍경의 주방에 앉아 또 얼마나 얼마나 울어야했다. 내 아들이 태어나던 날에 난산의 고통을 보며 덩달아서 고통스러워했던 큰언니 생각에도 눈물이 나고, 산후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벌벌벌 떠는 모습을 친정어머니는 빠르게 발견하시고 서둘러 침을 맞혀 주셨고, 그 출산의 비용을 감당해 주신 큰오빠도 그렇고, 밖으로만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아빠도 없이 사춘기 고비를 맞으면서는 너무나 놀라웠던적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엄마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었던.... 오히려 아빠가 옆에 있었다면 따숩게 보둠기 보다는 몽둥이 찜질이라도 한 번 쯤 했으련만 어미 혼자서 다 감당하고 삭히며 키워 온 자식이라니!

 

아들이 서험장에 들어 간 날 아침에 내 자식을 키우느라고 도움을 주시고 힘이 되어주신 큰언니와 새언니께 손전화기의 문자를 보내드렸다. <벌써 키워서 무사히 시험장까지 들여 보내주고 왔습니다.>라는! 그리고 <이 만큼 키울 수 있었던 은혜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라는! 이 삶이 포기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쏟으며 거두며 살았고, 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수 많은 엄마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던 어려운 순간들의 반복이었는가?! 그런데도 나는 내 아들의 시험장에 영심씨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다녀올 수 있었으니 그 세월을 살아온 환희가 있었다.

 

 

 

 

진심으로 영심씨께 감사와 사랑을 드렸다. 비록 강철로 만들어진 차가운 기계이지만 가난한 나에게  오셔서 이렇게 큰 만족을 주시니 그 따수운 온기에 만저 드리고, 쓰다듬어 드리고, 비벼 드리고.......

<영심씨 고마워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사람의 마음이란 내가 아무리 덕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덕을 구하려고 노력하지도 사정하지도 않았는데 덕을 받고 살아왔다. 그 덕의 결과로 그분들의 가슴에 상처를 드리고 싶지 않아서라도 참고 살아야만 했었던!

 

저만큼 침착하고 건강하게 자식을 키울 수 있었으니 감사할 수 밖에!

모든 수험생들께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벗님들께도 감사합니다.

꿈에라도 나타나 아들의 시험에 늦지 않게 도와주신 성령께 찬미를 드립니다.

 

ㅡ그러나 그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너희가 구원을 받을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 루가21,27-2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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