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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빠다킹 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김윤홍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29 조회수1,24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5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복음 루가 10,21-24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어제 낮에는 인천 신학교에서 한 달 피정 지도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임을 하고 있는데 날씨가 심상치가 않은 것이었어요. 낮 2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밤처럼 어두워지고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바람과 함께 비도 내리더군요. 비록 좋은 날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비가 오는 것이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더군다나 며칠 전, 성지에 나무를 많이 심었거든요. 따라서 ‘비가 온다면 이 나무들에게 상당히 좋겠다.’ 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비가 오니 특별히 할 것이 없더군요. 원래 노가다라는 것이 비오면 공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신학교에서의 모임을 끝내고 읍내로 가서 쇼핑을 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저녁 무렵 성지로 들어오는데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글쎄 그 거센 비바람에 며칠 전 심었던 나무들이 다 뽑힌 것입니다. 5미터가 넘는 나무라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다시 세울 수도 없더군요. 더군다나 시간도 늦었기 때문에 사람을 부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포기를 하고서 내일 아침 사람을 부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거센 비바람이 얼마나 밉던 지요?

사실 처음에는 비가 온다고 좋아했지요. 나무 심고 나면 물을 흠뻑 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비가 와서 흠뻑 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처참하게 뽑힌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바람을 동반했던 그 비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마음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꼭 ‘이런 상황에서만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동시에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이라면, 우리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서 늘 좋은 생각을 간직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감사의 기도를 하십니다. 이 감사의 기도는 세상에 파견한 제자들이 돌아온 뒤에 바치셨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는 잘난 사람,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주 훌륭하게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시지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직원을 채용할 때, 우리들은 기왕이면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을 뽑으려 할 것입니다. 또 제자를 선택할 때에도 마찬가지지요. 그래도 자기 말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을 뽑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제자들을 뽑았고, 이 사실을 오히려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해 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어떠한 순간에서도 감사할 이유를 찾으시기 때문에, 가장 부족한 제자들의 모습 안에서도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똑같은 상황에서도 긍정과 부정은 함께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주님처럼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처럼 우리도 성령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루가 10,21 참조).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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