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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1 조회수95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 12월 1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이사야 26,1-6

 

1 그날 유다 땅에서는 이러한 노래가 불리리라.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

 

우셨네. 2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3 한결

 

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

 

하기 때문입니다.

 

4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5 그분께서

 

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6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복음 마태오 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

 

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

 

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

 

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

 

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여러분, 이런 상상을 한 번 해 보세요.

어떤 할아버지께서 여러분 앞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세

 

요.

“쯧쯧, 이걸 어떻게 해. 자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앞으로 3주 후면 살 맞아

 

서 죽을 팔자야.”

그리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직 희망은 있구먼, 자네 오늘 집에 가자마자 공책에다가 ‘죽을 사

 

(死)’를 삼만 번을 적도록 하게. 그러면 살 맞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자, 여러분이 길거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무런

 

물질적인 것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상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겠지요. 또한 할아버지의 노망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말씀

 

이기에 무시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랍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젊은 검사였다고

 

해요. 사실 이 사람처럼 많이 배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태어나

 

면서 지금까지 똑똑하다는 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

 

신이 3주 후에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복채를

 

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힘으로도 할 수 있는 ‘죽을 사(死)’자만을 열심히 적

 

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과연 이 사람의 선택은 어떠했을까요?

이 젊은 검사는 집에 가자마자 공책에다가 ‘죽을 사(死)’자를 적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틀 밤을 꼬박 새워서 ‘죽을 사(死)’자 삼만 번을 다 적었다고

 

해요. 말이 삼만 번이지, 똑같은 글자를 삼만 번 쓴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얼

 

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그 지겨운 작업을 모

 

두 이겨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쓰지 않으면 3주 밖에 살 수 없다고 하니까

 

요.

 

3주가 가까워졌습니다. 이 젊은 검사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내가

 

3만 번을 잘못 세어서 조금 부족하게 쓴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그 삼만 개

 

의 ‘죽을 사(死)’를 몇 번이나 다시 세어보았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할아버지

 

가 말씀하셨던 3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죽을 사(死)’를 열심히 적어서 그런

 

지 그 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젊은 검사에게 그 할아버지가 복채를 내라고 했었다면 분명히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지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최선을 다

 

해서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했었던 것이지요.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살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선 할아버지의 말처럼 그렇게 고생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행하면 행할수록 이 세상 안에서 커다란 기쁨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것이 너무나 흔한 것이라 그럴까요? 또 이 안에 물질적인 것

 

이 들어있지 않아서 그럴까요? 우리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계속해서 무시하면

 

서, 내 뜻만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선 그 젊은 검사는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들은 최선의 행동을 했습니다. 우

 

리 역시 살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는 길밖에 없

 

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미신을 쫓지 맙시다. 어리석어 보이지 않습니까?


                       

  

                                                                                                                              rbk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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