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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중성을 버리는 것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2 조회수1,111 추천수11 반대(0) 신고

 

                             이중성을 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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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성당 안에서의 모습과 집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의 모습이 일치하지 못하고 다른 모습을 지닐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아마도 ‘나를 모를 것이다’는 생각에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를 고치려하기 보다는.. 일치된 모습을 유지하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합리화한다는 점입니다.

‘나도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다.’ ‘나만 이런가? 저 사람들도 저렇게 살아가지 않는가?’라는 생각으로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생활하다가 어떠한 특별한 경험이나 시기에, 곧 요즘처럼 대림 시기나,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에 자신의 부족하고 이중적인 모습을 개선하려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번번이 부족함과 이중적인 모습을 경험합니다.

그만큼 의지와 다짐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무엇보다도, 생각 따로 말 따로의 모습에 너무 친숙해 있고,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이 분리된 채 살아가는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회개가 오래가지 못하고, 다짐이 매번 무너지는 것 역시,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 만큼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이중적인 모습을 합리화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회개 했다는 근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듯이,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의 잘못은 말과 행동의 분리된 것입니다.

이중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가르친 것이 그들의 잘못이요, 죄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이중적인 모습을 버려 일치된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하느님께로 마음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하나의 마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중적인 모습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하느님께.. 사람들에게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한번에 안 된다면, 두 번 세 번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교회의 삶과 사회의 삶의 간격을.. 거리감을 좁혀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엘 예언자가 말하는 참된 회개요, 마음을 찢는 내적인 회개입니다.


모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반에서 장기자랑이 있었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노래실력, 끼를 선보였습니다.

평소에 조용하지만, 종종 엉뚱한 행동을 하는 한 어린이가 “선생님 저요!” 하며 손을 들어 앞에 나가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노래를 부른 것 같습니까?

바로 어린이 미사 때, 부르는 “신앙의 신비여!” 라는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웃는 기색 없이 미사 때 부르는 그런 마음으로 불렀습니다.

황당함과 어이없는 시선으로 “뭐 여기에서 저런 노래를 부르는가?”는 불평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노래는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성당에 다니고 있었기에,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알아서 더 놀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후에 또 다시 장기자랑에 앞에 나가 노래를 부릅니다.

담임선생님은 물론 모든 어린이들이 일제히 그 문제의 어린이를 집중합니다.

자신에게 뭐라 하듯,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당당히 “아멘. 아멘. 아아아아 멘”을 부르고 내려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진짜 특이하고 황당한 어린이다.. 큰 인물 되겠다.’는 식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강론을 준비하며 그 어린이의 행동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남에게 이상한 취급을 받지 않으려는 오늘날 입니다.

이중적인 모습으로 적당히 잘 적응하며 살아가려는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어린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주위의 시선에 신경 쓰며 요즘 인기 있는 동방신기.. 보아.. 장윤정의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성가를 불렀습니다.

성당생활과 학교생활이 분리 된 이중적인 모습으로 생화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마음... 일치된 마음으로 살아갔기에 가능한 행동입니다.

비록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모습이 회개한 자의 모습인지를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회개한 모습을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물론 좀 특이 한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어린이가 장기자랑을 하러 나갔을 때, 성당 다니는 것을 자랑했다면.. 장난으로 노래를 불렀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 어린이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평소에 자주 부르던 노래를... 아무렇지도 않고 솔직하게 불렀던 것입니다.

 

                                    


회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중적인 모습을 하나의 모습으로 고쳐나가려는 의지적인 노력입니다.

물론 이런 회개의 모습을 행동으로.. 삶으로 드러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남들도 그저 그렇게 적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중적인 모습을.. 두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슬기롭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여기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만이라도 이런 모습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비판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우리가 비난하는 바리사이파를 닮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먼 훗날 하느님 앞에 갔을 때, 하느님께 “이 독사의 족속들아!”라는 비난이 아니라, “너는 참 나를 많이 닮았구나.”는 말씀을 들어야할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를 닮았구나..”는 말을 듣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중적인 모습을 하나의 모습으로 일치하는 것이요, 이러한 것을 우리는 몸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내적이고 참다운 회개라 합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 당신을 향한 노래(바이올린&피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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