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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22) 109일 동안의 기도를 마치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2 조회수1,037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12월2일 대림 제1주간 금요일 ㅡ이사야29,17-24; 마태오9,27-31ㅡ

 

              109일 동안의 기도를 마치며

                                                  이순의

 

 

아침이 바빴습니다.

오늘은 좀 일찍 성당에 가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에 서둘렀습니다. 아들녀석에게는 버스를 타고 등교하라고 일렀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는 이른등교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교통체증이 심한 시간이라서 거의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지만 그래도 필히 오늘은 버스를 타라고 단단히 일렀습니다. 109일동안의 수험생 기도동안에 저는 늘 지각생이었습니다. 아침시간에 뭐가 그렇게도 할 일이 많은지 저는 맨날맨날 지각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만큼은 첫째로 가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작업장비가 들어있는 서랍에서 연장(?)들을 꺼냈습니다. 오리고 그리고 자르고 붙이고..... 재활용으로 만드는 장식이지만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요. 꼭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였잖아요?! 짝궁이 갑자기 지방을 간다고.... 짝궁이 나가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수험생 기도가 시작이 될 시간입니다. <아이고 하느님! 아이고 성모님! 마지막 날꺼정 지각생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용서해 주십시오. 다 좋자고 하는 일입니다. 전부다 아버지의 일입니다. 쪼매 봐 주십시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주섬주섬 챙겨서 들고 성당으로 갔습니다.

 

저희 성당에서는 올해 100일동안의 수험생기도를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며 성지순례를 겸한 뜻 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능시험 당일 날의 대피정은 보좌신부님과 중고등부 담당 수녀님의 세심한 준비로 커다란 은총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100일동안의 기도에 참석하지는 못 했지만 수능시험 날의 피정에 임하시는 엄마들이 많았고, 더구나 청일 점으로 아빠 한 분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해 주시는 모습에 엄마들끼리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랑 가득하신 아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100일간의 기도는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9일간의 감사의 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 부터 시작된 기도는 9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막을 내렸습니다.물론 100일 동안의 모습들처럼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향을 두고 9일동안의 감사기도를 드리기로 했으므로 그 계획은 약소하더라도 끝까지 이루어 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109일 동안의 대장정의 막을 내린 것입니다.

 

그동안 직장생활 중에도 꼭꼭 들려주시는 분도 계셨고, 손주들의 대성을 바라는 할머니들의 기도 소리는 젊은 엄마들의 소리를 뛰어넘어 구성진 가락으로 리더를 하셨고, 간혹은 그 음률이 불편하기도 했었던...... 때로는 행복한 웃음으로, 때로는 떨리는 가슴으로, 때로는 불안한 눈물 지으며....... 109일동안의 기도는 쉬지 않았습니다. 보람 있었고, 뜻 깊었고, 알뜰 했으며, 따뜻했습니다. 또한 값있는 이야기들을 마련해 오셔서 매일의 기도가 끝날 때마다 낭독해 주신 루시아자매님은 오늘도 시 한 편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정성을 다정하게 다정하게 읽어주셨습니다.

 

☆만남의 길 위에서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제가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아름다운 축복이며 의미있는 선물로 이어지지 못 했을 것입니다. -중략- 저는 비록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좋은 사람으로 좋은 만남을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많이 사랑할 수록 더 맑게 흐르는 주님의 바다를 향해 저도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며 쉼없이 흘러가는 작지만 아름다운 시냇물이 되고 싶습니다.

-이해인수녀님께서 쓰셨습니다.-☆

 

109일동안의 만남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마지막을 장식해 주신 시도, 자매님의 목소리도, 그 시를 들을 줄 아는 엄마들의 얼굴도, 모두모두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지각을 하며 만들어간 싸구려 제 선물도 전달했습니다. 109일동안 기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끌어주신 그 엄마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9일동안의 감사기도는, 시험이 끝난 아이들이 늦은 등교를 하기 때문에 늘 부산한 저만 지각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엄마들이 지각을 하든 안하든 언제나 제 시간에 나오셔서 혼자서라도 기도를 시작해 주신 자매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솔직히 마지막 감사의 9일기도에서는 쪼꼼도 기다려 주시지 않고 철저하게 제 시간을 지켜 혼자서 기도를 시작하시는 모습은 처연한 안스러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2006학년도 수학능력 시험 대비 2005학년도 석촌동 성당 중 고등부 주일학교 자모회 고3 수험생을 위한 기도모임이, 열심히 열심히 지극정성으로 함께 해주신 엄마들의 덕성스러운 마음의 공로와 빅토리아 자매님의 열정이 모아 모아서, 109일동안 대장정의 막을 무사히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엄마들께도 찬사를 보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자식이 하나뿐인 경험이라서 더욱 은총이 충만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뭘 하는지 맨날 바쁜 덜렁이인 제게도 그런 은총의 시간들이 허락되었다는 사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도 자식을 주셔서 그런 복된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끝으로 수능시험이 끝난 후에 신문을 오려서 가져다가 읽어주신 내용을 옮겨봅니다. 109일간의 기도를 마친 엄마들과 수험생을 두신 모든 어머니들께 이 글을 드립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세상에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보다는 성적이 부족한 학생이 훨씬 많습니다. 성적에 만족하지 못하시는 어머니들께 109일동안의 기도는 좌절이 아니었다라고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어쩌면 이 글을 쓴 한비아님도 중년의 나이인 지금의 모습은 인생을 성공한 본보기일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제가 의도하고 싶은 본질과는 어긋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분도 우리의 아이들만한 시절에는 탁월한 성적은 아니었다고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엄마들의 기도는 결코 좌절이 아니었습니다. 희망이었습니다. 새로운 만남을 일구는 정성이었습니다.

 

  

수능보다 중요한 것

              -한 비야-

 

<아무래도 시험 망친 것 같아.

올해도 대학 못보내면 어쩌니?

작년에 그냥 아무데나 보낼 걸 그랬어.>

재수생 딸을 둔 친구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듣고 있는 내 가슴도 몹시 떨렸다.

아이의 좌절을 또 봐야 할 지도 모르는 

친구의 괴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 친구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험 끝나니까 속 시원하지?>

<그럴 줄 알았는데 허무해요.

겨우 이것 때문에 하고 싶은 것

하나도 못했다고 생각 하니

너무 억울 하고요.>

<지금부터라도 하면 되겠네.>

<전 뭐가 하고 싶은지도 몰라요. 안다 해도 어른들이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잖아요.>

아이가 울먹이며 대들 듯 말했다.

수능 후 엄마고 아이고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갑자기 내 고3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내 인생 설계는 전적으로 담임 선생님이 하셨다.

언론인이나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지만

신문 방송학과나 영어교육과에 지원하라셨다.

UN등 국제기구에 관심이 많다는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개인의 자질이나 희망과 상관 없이 점수만 되면

소위 일류대학의 아무학과라도 가야 하는 분위기였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전, 후기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다.

회복 불가능한 인생의 낙오자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막막해하며

몇 달 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 대학에 떨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거운 일을 만나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나는 세계 재난의 현장에 48시간 내에 달려가 

긴급구호를 하는 사람이다.

물론 보람이 크지만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돈, 명예, 사회적 지위는 커녕

만날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설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이 좋다.

내 가슴을 뛰게하고 내 피를 끓게 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면  내 능력의 최대치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나도 '예쁜 얼굴'이 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일 거다.

 

얼굴이 다 다르듯이

사람은 제각기 독특한 기질과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에게 맞는 환경과

일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낙타는 사막에서, 악어는 늪에서, 호랑이는 산에서

자기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니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어른들은

항상 점검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내 아이를 <'바로 그 자리'>가 아니라

<'아무 데나'> 둔 건 아닌지.

낙타의 기질을 가진 아이를

산 속에 데려다 놓고는

왜 빨리 걷지 못하나, 

왜 나무는 타지 못하나

안쓰러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 못 따라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즐겁게 하는 사람 못 따라가 간다는 말,

백번 맞는 말이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의 얼굴은 빛이 난다.

하는 일이 좋아서, 당당 해서, 최선을 다해서

빛나는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도

평생 이런 얼굴로 살 수 있도록

가족과 학교, 사회에서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수험생들도 할 일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낙타인지 호랑이인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무엇을 했을 때 내 능력의 최대치가 나오는지,

소진했을 때라도 생각만 해도 새 힘이 솟는

그 일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학 원서 쓰기 직전인 지금이

평생 <'바로 그 자리'>에서 즐겁게 살 것인가,

<'아무데서나'> 마지못해 살 것인가의 갈림 길이다.

 

그리고 전국의 수험생, 학부모, 선생님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조선 일보 아침논단에서-

 

 

 

 

ㅡ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마태오9,29ㅡ  

 

         

 

†주님께서는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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