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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 선포의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3 조회수776 추천수1 반대(0) 신고

2005.12.3 토요일 선교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축일
                                                                                  
1고린9,16-19. 22-23 마르16,15-20

                                                          

              "복음 선포의 삶"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이면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시편92,2).

하느님 하시는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손수 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
하느님 하신 일들이 얼마나 크옵시며, 

생각하심 그 얼마나 깊으시니이까(시편92,4-5)?”

시편 저자와 같이 그대로 하느님 사랑에 젖어 사는, 

하느님 매력과 하느님 향기를 발산하는 삶이라면 복음 선포는 저절로 될 것입니다.

바로 1독서 바오로의 삶이 그렇습니다.
사도의 고백이 너무나 깊고 아름다워 감동적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1고린2,19)....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해서 이 모든 일을 합니다(1고린2,22ㄴ-23ㄱ).”

‘복음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이게 우리 삶의 궁극 의미이자 목표입니다.

자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종이 되어 복음을 선포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자유인과 종, 참 기막힌 역설의 진리입니다.
복음 선포를 위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종이 될 때

비로소 자유인이라는 것입니다.

미사나 우리 삶의 구조를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메타노니아의 회개,
코이노니아의 친교,
디아코니아의 봉사로 이루어진 미사나 삶의 구조입니다.

봉사라는 서비스(service)라는 말,
종인 써번트(servant)에서 유래함이 의미심장합니다.

참회로서 시작하여
주님 안에서 형제들과 친교를 나누고
각자의 일터로 파견되어
종으로서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선포는
우리 교회나 삶의 존재 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복음 선포가 없는 교회나 삶, 그대로 죽은 교회요 삶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r).”

예수님의 명령에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고,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합니다(마르16,20).

참 아름다운 삶이, 향기로운 삶이 복음 선포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향기를,
하느님의 사랑을,
하느님의 영광을
내 삶의 자리에서 그대로 반사하는 참 매력적인 삶입니다.

말로써만이 아니라

내 삶 전체로서 좋으신 하느님을 반사하는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삶이요,

이게 진정 자유인의 삶입니다.

이 복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를 당신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시어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주님 사랑 우리위에 꾿꾿하셔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셔라. 알렐루야(시편117,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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