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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2주일 강론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3 조회수931 추천수2 반대(0) 신고
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의 기도와 선행도 한 대의 미사와 비교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저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저의 전부가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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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 2주일 강론]


찬미 예수님!

“다모”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잘 아시는 분들도 계실테고, 그냥
그런 드라마가 있었다고 기억
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과 그를 막으려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저도 몇 번 봤는데, 전체 내용보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들 가운데
명대사가 많아서 나름의 묵상거리가 되기도 했습
니다.

그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상을 바꿔보려 했던 주인공이 남긴 말
이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 문득 떠올랐습니다.

“길이 아닌 길이라...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에 나 또한 새로운 세상을 내고자 달려왔을 뿐이요
내 오늘 이곳에 뼈를 묻겠지만 내가 죽은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내 길
을 걸을 것이오. 언젠가는 그들의 피와 혼이 계곡을 메우고 강을 메우고
반드시 새 세상을 열 것이요. 나는 지금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요”

드라마의 대사는 듣기에 따라 예언자적인 소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순교자들, 그리고 온갖
박해와 몰이해 속에서도 자신의 소명을 다했던 예언자들의 독백처럼
들립니다.

대림 시기에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인물.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러 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처음은 아닙니다. 인간의 범죄로 하느님과 멀어진 후에
많은 예언자들이 그 길을 준비하기 위한 부르심에 응답했고, 마지막
시기에 와서 세례자 요한이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주님의 길을 준비
합니다. 그 길은 어쩌면 자신을 위한 길은 아닐지 모릅니다.
오히려 자신이 골짜기와 구덩이를 메우는 존재로 사라져야 할지 모를 일
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많은 예언자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조
들은 기꺼이 그 소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분을 맞이하기에 합당한 자세를 갖추도
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은 그 자세로 회개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유효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그리고 2000년 전처럼 인간으로 다시
강생하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 각자의 준비와, 세상의 준비
가 필요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구약시대부터 그리스도의 길을 닦았던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였다면, 예언직의 소명에 초대된 오늘의 신앙인들은 또 다른 의미의
예언자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소리를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외치고
있습니까? 혹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신앙인 모두는 세례
를 통해서 하느님 자녀로 태어났지만, 세례는 회개의 표지입니다.
그 자체로 회개를 보증해주는 장치가 아닙니다. 결국, 회개란 끊임없이
반복되고 새롭게 이루어지는 자기 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쇄신은 개인의 회개인 동시에, 신앙 공동체의 회개이고, 아울러 우리
모두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의 회개입니다. 신앙인은 자기 회개를 통해,
그리고 신앙 공동체의 회개를 통해 세상을 회개시키는 소명을 받은
예언자들인 셈입니다.

오늘은 인권주일입니다. 인권주일이 처음 제정되었던 시기에도 우리
사회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는 심하게 훼손되고 있었습니다.
독재 아래에서 많은 국민들이 신음했고, 하느님 모상인 인간은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인간의 권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짓밟히고 무시당하고 있습
니다. 인간의 생명이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우상화된 자본주의는
사람들 사이의 기본적인 가치마저 파괴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외쳐야 할 소리는 “하느님 모상인
인간의 존엄성”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조차 “인간의 수단화”라는 반복음적인 세상 흐름에
휩쓸려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다른 어떤
가치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우선하도록 세상 안에
서 외쳐야합니다.

줄기세포를 둘러싼 논쟁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 저변에 깔려있는 황금만능의 풍조, 그리고 겉으로는 생명 연장이나
질병 치료를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또 다른 인간을 수단화하는 역설을
봅니다. 이런 죽음의 문화 안에서 익명의 예언자인 신앙인들은 복음이라
는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안으로 복음
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들 자신의 삶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구세주의 강생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에 우리는 어떤 길을, 어떻게 닦아서
그분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고민과 실천 안에서 그분의 길이 준비되고, 우리 각자가 그 길을 걸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 http://예수.kr  ,  http://www.catholic.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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