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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3일 야곱의 우물-선교의 시작/선교는 자신을 나누는 것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3 조회수1,257 추천수6 반대(0) 신고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선교의 시작  

[마르 16,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그 여자들은 자기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베드로와 그 동료들에게 간추 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뒤에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통하여 동쪽에서 서쪽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말씀이 두루 퍼져 나가게 하셨다. 아멘.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하유설 신부(메리놀외방전교회) - 
 
선교에 대한 오늘의 복음 구절에서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은 복음선포에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며 함께하시는 강력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마르코복음은 우리 모두를 선교로 초대하는 아름다운 끝장면을 
보여주는데 흥미롭게도 두 군데 나온다. 

첫번째는 16,1-­8로서, 여인들이 무덤이 빈 것을 보았고 흰옷을 입은 젊은이 에게서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이를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나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고 끝을 맺는다. 이는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는 두번째 끝맺음과 매우 다르다. 용기있고 성공적인 선포가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을 보여주는데, 사실 우리의 삶에는 이 두 가지 면이 다 있다.
선교는 우리 안에서 전율이 확신으로, 두려움이 용기로 바뀔 때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선교는 우리 자신과의 투쟁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려서 신부가 되려고 생각은 했지만 신학교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스물 다섯 살 되던 1969년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와서 5년 정도 영어를 가르치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전부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두려웠고 당황하게 되었다. 어떤 분과 함께 성령쇄신기도회에 가게 되었 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의 기쁜 소식, 성경에 대한 관심, 공동체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신부가 되고 싶어 메리놀회에 들어갔다.
나에게 선교는 두려움과 당황과 대면하며 극복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선교사이다. 어떤 이는 국경을 넘어서 선교사로 가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다른 사람과 우리 사이에 있는 장벽 을 넘어서 가족 안에,공동체 안에,직장·사회 안의 장벽을 넘으려는 선교사이다.
이제 대림절에 더 깊이 들어가면서 내 인생에서 먼저 넘어야 할 장벽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자. 무엇이 두렵고 걱정스러운지?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듣고도 기쁨으로 응답하지 못하고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여인들처럼 나에게도 기쁨으로 응답하지 못하는 장벽·집착·고정관념이 있는가?
다른 이의 아픔에 응답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은 무엇일까? 때로 이러한 집착· 고정관념·두려움을 의식하기만 하면 우리를 지배하는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것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마르코복음의 두번째 끝맺음에 들어갈 수 있다.

※ 2004년 12월 같은 복음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김 양요 님(수원교구 성남동 천주교회) - 

▒ 선교는 자신을 나누는 것 ▒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스페인 나바라 지방 하비에르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야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냐시오 
로욜라와 동료들을 만난 후 깊은 영향을 받아 이냐시오의 첫 제자단이 되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는 1537년 로마를 순례한 후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첫번째 예수회원 으로 포르투칼로 파견되었다가 1541년에는 인도로 파견되었고 고아에 도착하여 생애 대부분을 인도에서 복음을 전했다 한다.
1549년 일본에 신앙의 빛을 전파하여 그곳에서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일본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다. 2년 4개월 동안 선교활동을 하고 다시 인도로 돌아온 후 중국으로 되돌아갔으나 열병에 걸려 쓸쓸히 세상을 하직하였다고 한다. 그때 그의 나이 46세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초라한 음식과 잠자리를 함께 나누었고 병든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특히 나병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으며 심지어는 성무일도를 바칠 시간 조차 없을 정도였지만 그는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 다는 것을 그의 편지는 전해준다.
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로 보여주는 것임을 오늘 성인의 축일을 맞아 마음에 담는다.
  
    【 안나의 묵상나누기 】
    
    † 선교 †
    
    
    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로 보여주는 것임을... 
    
    
    10월 22일 우리 부부는 아주 어렵게(?) 빌립보 신부님 주례로 
    바오로 특전 관면혼을 했다.다음날인 23일에 조카 도미니코가 
    혼배성사를 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그 주간 신부님께서 연수중
    이시라 성당에 계시지도 않았고 미사가 없었다.  많은 분들과 
    함께 혼배를 위해서 기도했던 보람이있었다.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10월 24일 오후에 명동성당에서 야곱의 우물 벗들과 5시 미사 를 드리기로 했지만 주례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싶어서 오전에 미사를 드리러 갔다. 전교 주일이라서 선교에 대한 강론을... 하시는데 어찌나 감동스러웠는지 또 울보가 되었다. ㅠ.ㅠ
    강론중에... 빌립보 신부님께서 중국선교를 다녀오신 말씀을 하신다. 어느날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까 중국 형제와 자매가 신부님을 찾아와서 신부님이 가시는 다음 장소로 함께 따라가겠다는 것 이다. 신부님께서 너무나 멀고 또 비용도 많이드니 안된다고 거절하셨더니 가족들과 상의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중국돈 얼마를 가지고 와서 이 돈이면 갈 수 있느냐 고 하면서/자기 가족들은 미사 한 대를 더 드리고 한 달 동안 점심 한끼를 굶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좋으니 제발 따라 만 가게 해달라고 청해서 신부님과 동행하여 미사를 드린 후. 그분들이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부님께서 차비와 함께 식대를 넣어서 보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수녀님들이 제복을 입지않은체 복음을 전한다는 것 이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빌립보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제의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서슴
    없이 나서겠노라'고/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복음을 전하겠다!'
    
    시며 힘차게 말씀하시는 강론을 들으면서 선교란 무엇인가?!.
    선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전교 주일이었다.
    밥 한 끼를 굶으면서까지 미사 한 대를 더 드리고 싶어하는 
    선교 현장을 들으며, 과연 나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미사
    를 드리고 있는가, 또 정말 그러한 곳으로 갈 수 있겠는가...
    
    
    내 생의 나눔은 잃은 양 찾기요, 내 생의 기쁨은 선교!
    
    
    라는 구호가 제대 앞에서 외치고 있다. 신부님께서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으셨다. 성당가족들과 우선은
    잃은 양을 찾아나서자고 간절히 외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앗! 내
    가 얼마나 훌륭하신 신부님께 혼배성사를 받았는가 자랑스럽다.
    
    나의 생의 최고의 기쁨은 무엇일까. 무엇을 해야만이 기쁨과 감 동이 내 삶에 넘칠 것인가. 선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후후/ 앗!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전교하기가 얼 마나 어려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친정어머님의 장례미사를 통 해서 친정 가족들은 신앙의 일치를 이루었다.
    엘리사벳 언니는 전교를 하러 나갈 때마다 동생 '안나가 이렇게 힘든 전교를 했었구나'라고 늘 생각하신단다. 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한다는 것이 사실 내 힘은 아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 이라 믿는다. 또 성령께서 힘을 주셔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은 시모님과 남편이 신앙의 일치를 이루었으니 안나 아짐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 다시 때를 기다린다.
    가족을 전하지 못하고 어찌 복음을 전한단 말입니까! 라는 안나 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신 하느님이시다. 이제 나는 어느 것에도 매인것 없이 나를 부르실 그 날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지금은 남편과 함께 봉헌을 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다시 또 청한다.
    김포공항을 떠나오면서 '남편보다 앞장서지 말자!'를 외치고 뉴욕 케네디 공항을 밟았다. 요아킴 형제의 신앙이 무르익기를 늘 기도한다. 요즘들어 『야곱의 우물』과 신앙 도서들을 들고 출근하는 것이다. 내가 그러하였듯이 누구에게나 "때" 라는 것 이 있다. " 때 "를 기다린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서로가 달궈지는 모습을 바라보야했기 때문에 힘든 시간이었다.
    그도 육십 평생 다니던 신교를 떠나 구교로 들어오는데 상당한 갈등을 겪었으리라...헤아려진다.다행히도 하느님께서 앗!내가 친구들과 E-mail 주고 받는 내용을 보면서, 가능하면 나누면서 살아가려는 모습 보면서, 그의 어머님께 대하는 모습 보면서.. 가톨릭으로 성큼 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은...
    
    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로 보여주는 것임을...
    
    
    뜨거운 불도가니에서 제련되는 댓가를 지불하고 이렇게 섰다.
    그리고 언젠가 더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서...
    우리의 남은 삶은 우리의 핏줄이 섞인 혈육은 없다하드라도
    하느님의 자녀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우리의 남은 生에 최고의 기쁨은 선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안나가요*^^*



    앗!...나의 생활나눔 *^^*

찬미 예수님~! 

지난 해, 생활나눔을 한 내용입니다... 한 해가 지난 뒤, 오늘에서야...몇 번을 읽어보았습니다.
지난 해보다, 제 남편 요아킴은 1년만큼 자랐답니다. 10월. 고국방문 길에...'기도의 동지' 몇 분 덕분에 절두산 성지를 다녀온 것이 그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성지이야기를 시작하더군요.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라는 冊을... 회사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정도로, 이제는 성모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아주 가끔씩.../우리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도 합니다. 지금은 선명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 무슨 일을 위하여 준비되어 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어서어서 남편의 신앙이 자라나주기를 오늘도 바래봅니다. 그 보다 앞장서지 않으려고, 공항수하물 쎈타에 맡겨놓고 온 꼬랑쥐를 찾지않고 있습니다.^ ^

저는 중학교 때에 선교사가 되는 꿈을 품었었기에...'선교사'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쿵쿵거립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기에 이젠 아쉽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 신부님의 묵상글에서 삶의 한 켠을 읽으며, 다음 글을 새겨보니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선교사이다. 
어떤 이는 국경을 넘어서 선교사로 가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다른 사람과 우리 사이에 있는 장벽을 넘어서 
가족 안에, 공동체 안에, 직장·사회 안의 장벽을 넘으려는 선교사이다.

앗!, 그렇군요... 우리는 모두가 선교사였던 것입니다. *^^*
중국 땅에서 제의를 입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하시는 수녀님들처럼..
우리도 각자가 선 자리에서 선교사인 것을 깨닫습니다. 

안나 아지매는 지난 1년동안 성큼 자라서,103위 한국순교성인을 전하는 몫으로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서, 야곱이 물동이와 함께 순교성인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물동이가 길어진다고해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에 관한 글을 옮겨봅니다. 그리고 남양성모성지에 계신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을 생각합니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남양성모성지에서...뜨겁게 은혜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한 평의 땅을 넓히는데 삼십만원이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왜그렇게 삼십만원이 커보였는지요.../'그래도! 뚝떼어서 한 평을 넓혀드리고 왔더라면...!'하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깨닫습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 Xavier) / 12월03일 

교회의 사명이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인 만큼, 성령께서는 항상 이러한 사명을 뛰어나게 수행할 사람을 각 시대마다 끊임없이 보내신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이러한 위대한 선교사들 중의 한분이다.
스페인의 팜블로나에 있는 하비엘 성(城)에서 태어난 그는(1506-1552년) 파리 대학 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거기서 예수회의 창립자인 이냐시오 로욜라를 만남으로써 예수회의 창설 회원 7명 가운데 들게 되었다.
그들 일행은 1534년에 첫서원을 발하는데, 그 후 1541년에 예수회의 첫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인도에 도착하여 위대한 동방의 선교사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후 그는 말라카, 뉴기니아에 인접한 몰루카스와 모로타이 및 일본까지 왕래하며 놀라운 활동을 펼쳤지만, 중국 선교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흔히 그는 사도 바오로에 버금가는 선교사로 불린다. 그가 직접 개종시킨 신자들만 계산하더라도 10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는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로 선언되어 1622년에 시성되었으며, 비오 10세에 의하여 '외국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어 오늘에 이른다. - 바오로딸 홈피에서 [옮김] -



남양 성모 성지
(링크 되어있습니다 눌러보셔요~!)



“남양성모성지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성모 마리아께 기도 드리는 곳입니다. 또한 어느 식물원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우거져 저절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 돌아가게 됩니다. 그 아름다움과 평화를 널리 전하고 싶어 부족한 실력이지만 전시까지 열게 됐습니다.”
남양성모성지는 병인(1866년)박해 때 순교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성지로 전체 8만여평의 열린 공간에 갖가지 야생화와 나무가 우거지고 그 사이로 각각 1㎞에 이르는 ‘묵주기도 길’ ‘십자가의 길’이 펼쳐지는 곳으로 지난 91년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다.
이 신부가 카메라를 잡은 것은 지난 95년 남양성모성지로 부임하면서부터. 정식으로 사진수업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이른 새벽 꽃망울을 터뜨린 성지를 거닐면서, 기도하는 신자들을 보면서 저절로 카메라로 손이 갔다는 것.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은 테크닉보다는 사랑이 강하게 느껴진다. 사진으로 전하는 복음인 셈이다.
“똑같은 대상도 조금만 각도를 달리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이고,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늘 하느님의 시선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들은 서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싸우고 있지만 하느님은 저마다 가진 아름다움을 보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이죠.”
이 신부는 또 “고해성사 때도 신자들은 욕한 것, 거짓말한 것 등을 고백 하고 반성한다”면서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남을 칭찬하고 좋은 말을 해주지 않은 것, 즉 ‘놓쳐버린 선(善)’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를 직접 심고 가꾸고 있는 이 신부는 “식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어떤 훌륭한 조각이나 건축물도 나무나 꽃보다는 못하다”고 했다.
식물은 조건이 맞아야 자라고, 가꾸는 사람이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정성을 기울이는 만큼 아름답게 자란다는 것. 이 신부는 “특히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분들이 꽃과 나무 사이 길을 걸으면서 여유를 얻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 이라며 “앞으로는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

http://blog.daum.net/amormusicyjh - 윤 베드로 님의 블로그에서 [펌]했습니다.
들어가보시면, 남양성지를 얼마나 이쁘게 찍어놓으셨는지요...
순교성인댁 [성지순례 안내도]방에 스크랩해놨습니다. 

황무지 같은 남양성지에 들어가셔서...
지금의 남양성모성지를 만드셨다는거...벗 님들도 아시지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일본 선교를 하고 계시는... 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소나무)신부님을 위해서 빌어주소서... 모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님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나즈막히 고합니다.
이제 묵상글의 한 줌을 가슴판에 새겨봅니다...

때로는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으며 심지어는 성무일도를 바칠 시간
조차 없을 정도였지만 그는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
다는 것을 그의 편지는 전해준다. 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로 보여주는 것임을 오늘 성인의 축일을 맞아 마음에 담는다.

이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곳이, 지금이...바로 선교의 현장이요, 
선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도...이 말씀이 간절합니다...

내 생의 나눔은 잃은 양 찾기요, 내 생의 기쁨은 선교!

긴긴 글입니다...
몇 날 밤을 함께 나눠야 되는 이야기를 한 페이지의 글로 옮기려니....
앗!나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음이지요...((*^_ _ _^*))

어느 한 구절이라도, 성가의 어느 한 소절이라도... 마음에 남는 분이 있으시다면...! 그래서 선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면~! 저는 오늘의 밥값을 한게지요...


 
 


소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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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3pt"> 
<b>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선교의 시작</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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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마르 16,15­-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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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br>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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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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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들은 자기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베드로와 그 동료들에게 간추
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뒤에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통하여 동쪽에서 
서쪽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말씀이 
두루 퍼져 나가게 하셨다. 아멘. 
<b>※『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 하유설 신부(메리놀외방전교회) -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선교에 대한 오늘의 복음 구절에서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은 복음선포에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며 함께하시는 강력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마르코복음은 우리 모두를 선교로 초대하는 아름다운 끝장면을 
보여주는데 흥미롭게도 두 군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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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16,1-­8로서, 여인들이 무덤이 빈 것을 보았고 흰옷을 입은 젊은이
에게서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이를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나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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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고 끝을 맺는다. 이는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는 두번째 끝맺음과 매우 다르다. 용기있고 성공적인 선포가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을 보여주는데, 사실 우리의 삶에는 이 두 가지 면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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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우리 안에서 전율이 확신으로, 두려움이 용기로 바뀔 때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선교는 우리 자신과의 투쟁에서 시작된다. 
<br>
나는 어려서 신부가 되려고 생각은 했지만 신학교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스물
다섯 살 되던 1969년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와서 5년 정도 영어를 가르치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전부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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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려웠고 당황하게 되었다. 어떤 분과 함께 성령쇄신기도회에 가게 되었
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의 기쁜 소식, 성경에 대한 관심, 공동체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신부가 되고 싶어 메리놀회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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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선교는 두려움과 당황과 대면하며 극복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선교사이다. 어떤 이는 국경을 
넘어서 선교사로 가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다른 사람과 우리 사이에 있는 장벽
을 넘어서 가족 안에,공동체 안에,직장·사회 안의 장벽을 넘으려는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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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림절에 더 깊이 들어가면서 내 인생에서 먼저 넘어야 할 장벽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자. 무엇이 두렵고 걱정스러운지?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듣고도 기쁨으로 
응답하지 못하고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여인들처럼 나에게도 기쁨으로 
응답하지 못하는 장벽·집착·고정관념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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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아픔에 응답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은 무엇일까? 때로 이러한 집착·
고정관념·두려움을 의식하기만 하면 우리를 지배하는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것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마르코복음의 두번째 끝맺음에 들어갈 수 있다.  
<br>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2004년 12월 같은 복음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 김 양요 님(수원교구 성남동 천주교회) -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선교는 자신을 나누는 것 ▒</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스페인 나바라 지방 하비에르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야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냐시오 
로욜라와 동료들을 만난 후 깊은 영향을 받아 이냐시오의 첫 제자단이 되었다고 
한다.
<br>
프란치스코는 1537년 로마를 순례한 후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첫번째 예수회원
으로 포르투칼로 파견되었다가 1541년에는 인도로 파견되었고 고아에 도착하여 
생애 대부분을 인도에서 복음을 전했다 한다.
<br>
1549년 일본에 신앙의 빛을 전파하여 그곳에서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일본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다. 2년 4개월 동안 선교활동을 
하고 다시 인도로 돌아온 후 중국으로 되돌아갔으나 열병에 걸려 쓸쓸히 
세상을 하직하였다고 한다. 그때 그의 나이 46세였다.
<br>
그는 가는 곳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초라한 음식과 
잠자리를 함께 나누었고 병든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특히 나병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br>
때로는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으며 심지어는 성무일도를 바칠 시간
조차 없을 정도였지만 그는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
다는 것을 그의 편지는 전해준다.
<br>
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로 보여주는 것임을 
오늘 성인의 축일을 맞아 마음에 담는다.
<pre> <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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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5e77 style="FONT-SIZE: 10pt">
<b>【 안나의 묵상나누기 】</b>
<pre><FONT color=#005e77 style="FONT-SIZE: 11pt">
† 선교 †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로 보여주는 것임을...</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10월 22일 우리 부부는 아주 어렵게(?) 빌립보 신부님 주례로 
바오로 특전 관면혼을 했다.다음날인 23일에 조카 도미니코가 
혼배성사를 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그 주간 신부님께서 연수중
이시라 성당에 계시지도 않았고 미사가 없었다.  많은 분들과 
함께 혼배를 위해서 기도했던 보람이있었다.이 자리를 빌어서
<b>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b>
<br>
10월 24일 오후에 명동성당에서 야곱의 우물 벗들과 5시 미사
를 드리기로 했지만 주례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싶어서 오전에
미사를 드리러 갔다. 전교 주일이라서 선교에 대한 강론을...
하시는데 어찌나 감동스러웠는지 또 울보가 되었다. ㅠ.ㅠ
<br>
강론중에...
빌립보 신부님께서 중국선교를 다녀오신 말씀을 하신다.
어느날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까 중국 형제와 자매가 신부님을
찾아와서 신부님이 가시는 다음 장소로 함께 따라가겠다는 것
이다. 신부님께서 너무나 멀고 또 비용도 많이드니  안된다고
거절하셨더니 가족들과 상의를 하더라는 것이다.
<br>
그리고는 중국돈 얼마를 가지고 와서 이 돈이면 갈 수 있느냐
고 하면서/자기 가족들은 미사 한 대를 더 드리고 한 달 동안
점심 한끼를 굶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좋으니 제발 따라
만 가게 해달라고 청해서 신부님과 동행하여 미사를 드린 후.
그분들이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부님께서 
차비와 함께 식대를 넣어서 보냈다고 한다.
<br>
중국에서는 수녀님들이 제복을 입지않은체 복음을 전한다는 것
이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빌립보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pre><FONT color=#0000c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그렇다. 제의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서슴
없이 나서겠노라'고/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복음을 전하겠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시며 힘차게 말씀하시는 강론을 들으면서 선교란 무엇인가?!.
선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전교 주일이었다.
밥 한 끼를 굶으면서까지 미사 한 대를 더 드리고 싶어하는 
선교 현장을 들으며, 과연 나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미사
를 드리고 있는가, 또 정말 그러한 곳으로 갈 수 있겠는가...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내 생의 나눔은 잃은 양 찾기요, 내 생의 기쁨은 선교!</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라는 구호가 제대 앞에서 외치고 있다. 신부님께서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으셨다. 성당가족들과 우선은
잃은 양을 찾아나서자고 간절히 외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앗! 내
가 얼마나 훌륭하신 신부님께 혼배성사를 받았는가 자랑스럽다.
<br>
나의 생의 최고의 기쁨은 무엇일까. 무엇을 해야만이 기쁨과 감
동이 내 삶에 넘칠 것인가. 선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후후/
앗!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전교하기가 얼
마나 어려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친정어머님의 장례미사를 통
해서 친정 가족들은 신앙의 일치를 이루었다. 
<br>
엘리사벳 언니는 전교를 하러 나갈 때마다 동생 '안나가 이렇게
힘든 전교를 했었구나'라고 늘 생각하신단다. 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한다는 것이 사실 내 힘은 아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
이라 믿는다. 또 성령께서 힘을 주셔야 할 수 있는 일이다.
<br>
지금은 시모님과 남편이 신앙의 일치를 이루었으니 안나 아짐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 다시 때를 기다린다.
<br>
가족을 전하지 못하고 어찌 복음을 전한단 말입니까! 라는 안나
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신 하느님이시다. 이제 나는 어느 것에도
매인것 없이 나를 부르실 그 날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지금은
<b>남편과 함께 봉헌을 하게 해주십시오!</b> 라고 다시 또 청한다.
<br>
김포공항을 떠나오면서 <b>'남편보다 앞장서지 말자!'</b>를 외치고
뉴욕 케네디 공항을 밟았다. 요아킴 형제의 신앙이 무르익기를
늘 기도한다. 요즘들어 『야곱의 우물』과 신앙 도서들을 들고 
출근하는 것이다. 내가 그러하였듯이 누구에게나 "때" 라는 것
이 있다. <b>" 때 "</b>를 기다린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서로가 달궈지는 모습을 바라보야했기 때문에 힘든 시간이었다.
<br>
그도 육십 평생 다니던 신교를 떠나 구교로 들어오는데 상당한
갈등을 겪었으리라...헤아려진다.다행히도 하느님께서 앗!내가
친구들과 E-mail 주고 받는 내용을 보면서, 가능하면 나누면서
살아가려는 모습 보면서, 그의 어머님께 대하는 모습 보면서..
가톨릭으로 성큼 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은...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로 보여주는 것임을...</b>
<pre><FONT color=#0052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뜨거운 불도가니에서 제련되는 댓가를 지불하고 이렇게 섰다.
그리고 언젠가 더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서...
우리의 남은 삶은 우리의 핏줄이 섞인 혈육은 없다하드라도
하느님의 자녀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pre><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우리의 남은 生에 최고의 기쁨은 선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b>
<IMG 
src="http://www.imagestation.com/picture/sraid53/
p1267c37ffdbfe50aca62ebc9cb2ddfb0/fc8b9715.gif" >
<b>안나가요*^^*</b></ul>
<br>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299.GIF>
<ul><b>앗!...나의 생활나눔 *^^* </b>  </ul>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찬미 예수님~!<IMG src="http://www.catholicpusan.or.kr/home_cgi/print.cgi/
대림촛불1.jpg?board=khboard02&img=대림촛불1.jpg&xfile=1" border=0> 
<br>
지난 해, 생활나눔을 한 내용입니다...
한 해가 지난 뒤, 오늘에서야...몇 번을 읽어보았습니다.
<br>
지난 해보다, 제 남편 요아킴은 1년만큼 자랐답니다.
10월. 고국방문 길에...'기도의 동지' 몇 분 덕분에 절두산 성지를 다녀온 것이
그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성지이야기를 시작하더군요.
<br>
<b></big>『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b></big>라는 冊을...
회사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정도로, 이제는 성모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br>
아주 가끔씩.../우리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도 합니다.
지금은 선명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 무슨 일을 위하여 준비되어 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어서어서 남편의 신앙이 자라나주기를 오늘도 바래봅니다. 그 보다 
앞장서지 않으려고, 공항수하물 쎈타에 맡겨놓고 온 꼬랑쥐를 찾지않고 있습니다.^ ^
<br>
<br>
저는 중학교 때에 선교사가 되는 꿈을 품었었기에...<b>'선교사'</b>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쿵쿵거립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기에 이젠 아쉽기도했습니다.
<br>
그러나, 오늘 하 신부님의 묵상글에서 삶의 한 켠을 읽으며, 다음 글을 새겨보니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선교사이다. 
어떤 이는 국경을 넘어서 선교사로 가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다른 사람과 우리 사이에 있는 장벽을 넘어서 
가족 안에, 공동체 안에, 직장·사회 안의 장벽을 넘으려는 선교사이다.</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앗!, 그렇군요... 우리는 모두가 선교사였던 것입니다. *^^*
중국 땅에서 제의를 입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하시는 수녀님들처럼..
우리도 각자가 선 자리에서 선교사인 것을 깨닫습니다. 
<br>
안나 아지매는 지난 1년동안 성큼 자라서,103위 한국순교성인을 전하는 몫으로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서, 야곱이 물동이와 함께 순교성인을 전하고 있습니다.
<br>
오늘 물동이가 길어진다고해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에 관한 글을 옮겨봅니다.
그리고 남양성모성지에 계신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을 생각합니다.
<br>
미국으로 오기 전에, 남양성모성지에서...뜨겁게 은혜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한 평의 땅을 넓히는데 삼십만원이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왜그렇게 삼십만원이 
커보였는지요.../'그래도! 뚝떼어서 한 평을 넓혀드리고 왔더라면...!'하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깨닫습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IMG hspace=20 
src="http://www.pauline.or.kr/data/catholic/image/saint/sfjavier.jpg" vspace=10>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 Xavier) / 12월03일 
<br>
교회의 사명이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인 만큼, 성령께서는 
항상 이러한 사명을 뛰어나게 수행할 사람을 각 시대마다 끊임없이 보내신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이러한 위대한 선교사들 중의 한분이다. 
<br>
스페인의 팜블로나에 있는 하비엘 성(城)에서 태어난 그는(1506-1552년) 파리 대학
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거기서 예수회의 창립자인 이냐시오 
로욜라를 만남으로써 예수회의 창설 회원 7명 가운데 들게 되었다. 
<br>
그들 일행은 1534년에 첫서원을 발하는데, 그 후 1541년에 예수회의 첫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인도에 도착하여 위대한 동방의 선교사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후 그는 
말라카, 뉴기니아에 인접한 몰루카스와 모로타이 및 일본까지 왕래하며 놀라운 활동을 
펼쳤지만, 중국 선교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br>
흔히 그는 사도 바오로에 버금가는 선교사로 불린다. 그가 직접 개종시킨 신자들만 
계산하더라도 10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는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로 선언되어 1622년에 시성되었으며, 비오 10세에 의하여 '외국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어 오늘에 이른다.     - 바오로딸 홈피에서 [옮김] -
<BR>
<IMG hspace=0 
src="http://cfs1.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
fhandle=MDJHTkRAZnMx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cvNzE3LmpwZy50aHVtYg==&filename=717.jpg" 
border=0>
<BR><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A class=con_link href="http://fr.catholic.or.kr/jhs/holyplace/namyang.htm" target=_blank>
남양 성모 성지</A><pre><FONT style="FONT-SIZE: 10pt"><b>(링크 되어있습니다 눌러보셔요~!)
<pre><FONT color=#32449c style="FONT-SIZE: 12pt"></b>
<BR>
<IMG class=img hspace=0 src="http://photo-media.hanmail.net/cpif/
www.chosun.com/media/photo/news/200407/200407090249_01.jpg" 
width=240 border=1 no="1">
<BR>
“남양성모성지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성모 마리아께 기도 드리는 곳입니다. 
또한 어느 식물원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우거져 저절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 돌아가게 됩니다. 그 아름다움과 평화를 널리 전하고 싶어 
부족한 실력이지만 전시까지 열게 됐습니다.”
<br>
남양성모성지는 병인(1866년)박해 때 순교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성지로 전체 8만여평의 열린 공간에 갖가지 야생화와 나무가 우거지고 
그 사이로 각각 1㎞에 이르는 ‘묵주기도 길’ ‘십자가의 길’이 펼쳐지는 
곳으로 지난 91년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다. 
<br>
이 신부가 카메라를 잡은 것은 지난 95년 남양성모성지로 부임하면서부터. 
정식으로 사진수업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이른 새벽 꽃망울을 터뜨린 성지를 
거닐면서, 기도하는 신자들을 보면서 저절로 카메라로 손이 갔다는 것.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은 테크닉보다는 사랑이 강하게 느껴진다. 사진으로 
전하는 복음인 셈이다.
<br>
“똑같은 대상도 조금만 각도를 달리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이고,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늘 하느님의 시선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들은 서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싸우고 있지만 하느님은 
저마다 가진 아름다움을 보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이죠.”
<br>
이 신부는 또 “고해성사 때도 신자들은 욕한 것, 거짓말한 것 등을 고백
하고 반성한다”면서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남을 칭찬하고 
좋은 말을 해주지 않은 것, 즉 ‘놓쳐버린 선(善)’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br>
사진 속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를 직접 심고 가꾸고 있는 이 신부는 “식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어떤 훌륭한 조각이나 건축물도 나무나 꽃보다는 
못하다”고 했다. 
<br>
식물은 조건이 맞아야 자라고, 가꾸는 사람이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정성을 
기울이는 만큼 아름답게 자란다는 것. 이 신부는 “특히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분들이 꽃과 나무 사이 길을 걸으면서 여유를 얻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
이라며 “앞으로는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br>
(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
<b><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http://blog.daum.net/amormusicyjh - 윤 베드로 님의 블로그에서 [펌]했습니다.
들어가보시면, 남양성지를 얼마나 이쁘게 찍어놓으셨는지요...
순교성인댁 [성지순례 안내도]방에 스크랩해놨습니다.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황무지 같은 남양성지에 들어가셔서...
지금의 남양성모성지를 만드셨다는거...벗 님들도 아시지요...?
<br>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일본 선교를 하고 계시는...
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소나무)신부님을 위해서 빌어주소서...
모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님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나즈막히 고합니다.
<br>
이제 묵상글의 한 줌을 가슴판에 새겨봅니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때로는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으며 심지어는 성무일도를 바칠 시간
조차 없을 정도였지만 그는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
다는 것을 그의 편지는 전해준다. 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로 보여주는 것임을 오늘 성인의 축일을 맞아 마음에 담는다.</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이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곳이, 지금이...바로 선교의 현장이요, 
선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br>
올해도...이 말씀이 간절합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4pt">
<b>내 생의 나눔은 잃은 양 찾기요, 내 생의 기쁨은 선교!</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긴긴 글입니다...
몇 날 밤을 함께 나눠야 되는 이야기를 한 페이지의 글로 옮기려니....
앗!나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음이지요...((*^_ _ _^*))
<br>
어느 한 구절이라도, 성가의 어느 한 소절이라도...
마음에 남는 분이 있으시다면...!
그래서 선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면~!
저는 오늘의 밥값을 한게지요...
<br>
<br>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height=70 src="http://cafe210.daum.net/cafeimg-proxy?
 grpcode=Coreansanctus&imgType=logo&time=1127253570000"
 width=230 align=absMiddle border=0><FONT color=red><FONT size=3> 
<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FONT> 
<IMG src="http://youngminene.com.ne.kr/New_Menu/image/brigid_logo.gif" border=0> </ul>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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