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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4 조회수79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 12월 4일 대림 제2주일 나해

 


 


 

제1독서 이사야 40,1-5.9-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2 예

 

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

 

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

 

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9 기쁜 소식

 

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

 

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

 

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제2독서 베드로 2서 3,8-14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

 

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

 

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올 것입니다. 그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

 

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스러지며, 땅과 그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

 

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스러질 터인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거

 

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면서, 12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

 

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

 

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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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마르코 1,1-8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2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

 

아 놓으리라.”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

 

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

 

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5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

 

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

 

다. 7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저는 오늘 일어나자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착잡해졌습니다. 왜냐

 

하면 하얀 눈으로 창밖의 풍경을 채우고 있었거든요. 사실 어제 저녁부터 저는

 

자주 창밖만을 바라보았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요? 하늘에서

 

는 내리는 눈을 보고 있었을까요? 아니지요. 성지 마당에 쌓여지는 눈을 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얼마나 쌓이느냐에 따라서 눈을 쓸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두어도 되는지가 결정되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장난 아니게 눈이 오더군요. 그

 

래서 저는 곧바로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눈을 쓸어야 하니까요.

한때 저도 눈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적이 있었지요. 마치 눈을 좋아하는 강아지

 

마냥 눈만 왔다하면 밖으로 나가 눈을 맞으면서, 한껏 낭만을 외쳤던 적도 있

 

었습니다. 하지만 눈이 오면 불편한 점들이 많이 생기는 요즘에는 그렇게 눈

 

온다는 것이 즐겁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왜 쓸지?’

눈을 쓸지 않는다면 굳이 눈 오는 것을 싫어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곳 성지에서는 눈을 반드시 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경사면이 있어서 눈을

 

쓸지 않으면 오신 순례객들이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또한 흙바닥의 눈 역시

 

쓸지 않으면 너무나 질퍽해져서 순례객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게 되니까요. 그

 

렇다면 이렇게 눈을 쓰는 근본적인 이유는 오시는 순례객들 때문입니다. 만약

 

저 혼자만 산다면, 그리고 이곳을 찾는 분도 없다면, 제가 굳이 성지에 내린

 

눈을 치울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제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해서 하는 행동인데, 그 마음

 

이 좋지 않다면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눈 오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

 

지요. 만약 순례객들이 오시는 것을 너무나도 기뻐하고 그 사랑하는 마음을 간

 

직한다면, 지금 이렇게 눈을 쓰는 것을 보다 더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눈 오는 것 자체도 ‘순례객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구나.’라는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대림초에 두 개의 촛불을 밝혔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이 대림

 

은 영광의 주님을 잘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준비와 기다림

 

을 마지못해 한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주님이 오더라도 기쁘지 못할 것입니

 

다. 즉, 주님과의 만남에서 더 큰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그 준비에서부터 기쁨

 

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결과만을 생각했을 때가 얼마

 

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서 힘들다고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내

 

었던 적은 얼마나 많았는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가서 단식과 기도로써 살 수 있

 

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을 준비하는 과정 안에서도 커다란 기쁨을

 

간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토록 힘차게 주님의 오심을 선포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과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순례객들의 잘 맞이하기 위해서 기쁘게 눈

 

을 치워야 하는 것처럼, 성탄이라는 커다란 기쁨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대림이

 

라는 잘 준비된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쁘게 눈을 치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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