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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나은 삶을 살아왔는가?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4 조회수741 추천수1 반대(0) 신고
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의 기도와 선행도 한 대의 미사와 비교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저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저희의 전부가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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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살아왔는가?]


올해도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작년보다는 올해에 더 나은 삶을 살았습니까?
전도서(새로 바뀐 성경에는 "코헬렛"으로 표기함)를 보면서 더 나은 삶을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1. 명성이 값진 향유보다 낫습니다.

"명성이 값진 향유보다 낫고..."(코헬렛7,1)

명성은 아름다운 이름을 말합니다. 곧 사람의 명예와 명성이 재물보다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잠언에서도 "이름은 큰 재산보다 값지고 명성은
은보다 금보다 낫다." (22,1) 라고 하였습니다.
황금만능주의가 제일인 세상이 되어서 돈이라면 안면도 몰수하는 일들
이 비일비재 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그 사람에 대한 훌륭한 "명성"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책에 주님에게 기억되는 이름이 가장 아름답고
명예로운 이름인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낫습니다.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낫다."(코헬렛7,1)

출생하는 날 곧 생일은 인생의 허무한 삶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죽는 날은 그 허무한 삶이 끝나는 날입니다. 그래서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더 낫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헛되고 헛되다」는 인생의 허무한 삶에 나름대로의 의미
를 심어 "의미 있는 삶"으로 생을 마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의미 없는 삶"도 하루라도 일찍 마치니 더 낫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고생과 수고뿐인 이 세상을 시작하는 날보다 마치는 날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는 그 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고생과 수고 뿐인 괴로운 인생길 가는 동안 우리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주님을 뵙기 전에 주님께서 맡긴 달란트를 힘을 다해 사용했는지
지나온 해를 돌아보며 생각해 봅시다.


3.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코헬렛7,2)
"지혜로운 이들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잔칫집
에 있다."(코헬렛7,4)

초상집은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곳이고, 잔칫집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곳
입니다. 초상집을 찾아 슬픔을 나누고 위로하며 자신도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세상입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잔칫집보다는 초상집에 가서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유념하는 것이 잔칫집에서 먹고 마시며 헛되고 허무하게 쾌락
을 즐기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서 인생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숙연하게
생각함으로 좀더 보람된 삶을 다짐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4. 슬픔이 웃음보다 낫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코헬렛7,3)

여기의 "슬픔"은 단순한 고난이나 피해 등의 슬픔이 아니라 죽음을 바라
보는 깊은 고뇌의 "슬픔"입니다. 이런 숙연한 "슬픔"이 삶의 의미를 깊히
생각하게 합니다. 잔칫집에서 얻는 일시적인 쾌락과는 달리 인생의 참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웃음"은 기쁨의 표현입니다.
하느님께로 말미암은 "웃음"이 참된 "웃음"입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은
"웃음"은 잠시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 웃음과 희락을 위하여 잔치를 베풉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이런 잔칫집에서 사람으로 말미암은 "웃음"을 찾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의 "웃음"은 헛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하느님을
경외하며, 주님께로 말미암는 "웃음"을 찾습니다.


5. 지혜로운 이의 꾸지람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칭송을 듣는 것
보다 낫습니다.


"지혜로운 이의 꾸지람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칭송을 듣는 것
보다 낫다."(코헬렛7,5)

"꾸지람"은 과오(過誤)나 죄로 인하여 듣습니다.
지혜자의 "꾸지람"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지혜자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꾸지람"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꾸지람"을 싫어합니다.
"자녀는 누구나 다 아버지의 견책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이런 견책을 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서자이지 참 아들이 아닙니다."
(히브리12,8)   우리 신자들은 이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 일의 끝이 그 시작보다 낫습니다.

"일의 끝이 그 시작보다 낫고..."(코헬렛7,8)

"일의 끝"은 결과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작한 것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의 끝"이 시작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본전을 까먹는 밑지는
일도 있습니다. 최소한 남는 장사라야 "일의 끝이 시작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밑지고 손해보는 일들도 허다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코 밑지는 법이 없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기 때문입니다(마태오 4,8).
그러니 일의 끝이 시작보다 더 낫습니다.


7. 인내가 자만보다 낫습니다.

"....인내가 자만보다 낫다."(코헬렛7,8)

"인내" 곧 참는 마음입니다. 일을 시작하고 어려움을 참지 못하기에 중도
에 그만두게 됩니다. "자만"은 어리석은 자와 교만한 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마음"을 죄라고 했습니다(잠언21,4).
또한 "파멸에 앞서 교만이 있고 멸망에 앞서 오만한 정신이 있다."고
했습니다(잠언16,18).
다시 말해서 교만은 패망을 불러오고, 인내는 열매를 가져옵니다.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이 곧잘 화를 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감싸주
지 못하고 오히려 화내어 책망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인내하는 사람은 자신의 책임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연약한 자의 몫도 담당합니다.


8. '어째서 옛날이 지금보다 좋았는가?' 묻지 마라.

" '어째서 옛날이 지금보다 좋았는가?' 묻지 마라.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은 지혜롭지 못하다."(코헬렛7,10)

옛날이 오늘보다 더 나은 것은 물론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연환경입니다.
그러나 옛날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뒤로
물러가지도, 주저앉지도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 약속의 땅, 저 천국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더 나은 삶입니다.
더 나은 삶을 살아 우리 신자들 모두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께 칭찬 듣는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성권님 참고)


( http://예수.kr  ,  http://www.catholic.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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