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12월 5일 야곱의 우물입니다 -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5 조회수941 추천수8 반대(0) 신고
     
    대림 제2주간 월요일-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루카 5,17­-26]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주기도 하셨다.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하유설 신부(메리놀외방전교회) - 
    
     
    왜 예수님은 치유하실 때 먼저 용서부터 하셨을까? 용서란 그 자체로 기적을 
    이루는 것일까? 사실 용서는 정서적·영적·육체적 기적을 불러일으킨다. 
    
    캐럴린 메이스는 워크샵 중에 일어난 일을 들려준다. 한 참석자가 용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거부반응을 보이며 그 자리를 떠났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내의 반대에도 친척에게 돈을 빌려주고 집을 담보로 보증 까지 서주었는데 그 친척이 도망을 가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었던 분이다. 게다가 건강과 직장까지 잃게 되자 더더욱 그 친척을 용서할 수 없었다.
    용서란 다른 이가 잘했다거나 옳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캐럴린은 용서란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새로운 인식이라고 말한다.
    그 상처가 나를 지배하지 않고 상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상처 안에 숨겨진 선물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큰 상처라 하더라도 그 안에 숨겨진 선물이 있다.
    적어도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지 않은가? 우리가 한 가지라도 숨은 선물을 찾게 된다면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 받은 상처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나 자신이 피해자가 된다.
    그날 그 남자는 강의를 듣고 더이상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석 달 후에 인생이 변하고 그 친척을 완전히 용서했으며 건강도 찾고 일자리도 얻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이번 대림절엔 내가 용서할 이는 누구인지, 혹 나부터 용서해야 하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용서가 힘들다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그 힘을 주실 수 있다 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은총을 하느님께 구하자.
    
    
    앗!...나의 생활나눔 *^^* 
    
    
    † 용서 †
    
    
    오늘 묵상글은 가슴속에서 쏟아지는 글들을 주체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어느 귀절에서도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벗 님들도 그러신가요?@.@
    
    
    용서란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새로운 인식이라고 말한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 사랑의 빚진 자가 되어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럼으로써... 앗! 나는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났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신앙의 눈길로 바라보니 모든 것이 은총일뿐.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그 상처가 나를 지배하지 않고 상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상처 안에 숨겨진 선물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큰 상처라 하더라도 그 안에 숨겨진 선물이 있다. 
    
    적어도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지 않은가? 우리가 한 가지라도 숨은 선물을 찾게 된다면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 받은 상처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나 자신이 피해자가 된다.
    
    참으로 놀라운 묵상 말씀입니다. 
    상처 안에는...아픔과 고통과 분함과 억울함, 그리고도 많은 것들이 그득하건만, 
    우리 주님은 그 끈을 놓게 하십니다. 그리곤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신앙의 신비'이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아니면 내 어떻게 이렇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염없는 감사의 눈물이 흐릅니다.
    울보 아지매라서가 아니라, 이제 그 상처를 디디고 일어서서 다른 이의 상처를 보담아 안아주고 싶어서, 보잘것 없는 삶을 열어서 이렇게 저렇게 조잘거립니다.
    길어지는 이야기들을 줄이고 '용서'라 하면 송봉모 신부님의 저서중에 나오는 조엘 소넨버그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동영상으로 나와 있는 글이 있어서../함께 나눌려니../요즘은 소스를 지웠는지 뜨지를 않아 카페에서만 스크랩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같은 복음의 내용으로, 평신도이신 [김양요] 님이 올리신 글은 '용서'라는 각도가 아니라, 중풍병자라는 '외적 무능'에 대해서 나누신 글 또한 혼자서 읽기엔 아쉬운 글입니다. 안나 아지매의 생활나눔도 벗님들과 다시 나누 고 싶은 마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어느 귀절에서든가...한 줄을 붙드시고... 힘찬 한 주간을 시작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한국도 폭설로 빙판 길이라고 하던데...이 곳도 밤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몇 년동안 이곳에 와서 하얀 눈을 즐겼습니다만, 이제는 출근을 해야되니 반갑지만은 않은 눈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이렇게 간사하군요.*^^* 눈길 조심해서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 송봉모 신부님의 [신앙의 인간 요셉] 중에서 -
    
    요셉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생각나는 젊은이가 있다. 조엘 소넨버그이다 그는 두 살 때 부모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통행료를 내기 위해 매표소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대형 트럭이 들이닥쳐 추돌하면서 생긴 사고였다. 조엘은 뒷자리 유아용 좌석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불에 휩싸이게 되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는 죽었을 것이다.
    조엘의 몸은 5분의 4가 화상을 입었고 한 손은 없어졌다. 그는 긴 세월을 재활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몸의 고통은 물론 마음의 고통도 엄청 겪어야 했다. 온통 일그러진 얼굴은 조롱감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저기 원숭이 좀 보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어떤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그를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축구팀의 주장과 학생회장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과대표를 맡았다.
    조엘 앞에서 우리는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된 젊은이가 어떻게 그 모든 비극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을까?"
    조엘은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면 이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계속되는 모든 재활 작업과 수술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모든 고통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되겠지요."
    '만일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은 성조 요셉의 신앙 태도이다. 요셉이 이해할 수 없는 생의 풍파 앞에서 하느님을 신뢰하였듯이 조엘도 고통스런 자신의 처지 안에서 하느님을 신뢰하였다.
    조엘도 성조 요셉처럼 자신에게 비극적 고통을 입힌 사람들에 대한 악감정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 가 사고 처리 중에 외국으로 도망가서 19년 동안 잠적해 버린 것이다.
    조엘의 입장에서 그 운전사를 증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복수와 보복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엘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 문제를 하느님께 넘깁니다. 저는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몽땅 다 하느님에게 맡긴 것이다.
    마치 요셉이 형들에게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을 대신하리이까?" [창세기 50,19]하고 말한 것처럼.
    트럭 운전사가 19년 만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성조 요셉의 형들이 20년이 조금 넘어서 요셉을 만난 기간과 유사하다. 조엘은 법정에서 자기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이 운전사와 대면하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 생애에서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은 병원에서 치료받던 것입니다. 거기서 저는 무력감을 느끼면서 보통 사람이 평생 겪어야 할 고통을 겪었고 겪어오고 있습니다. ...
    레지날드 도트 씨, (트럭 운전사의 이름) 당신이 은혜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증오는 불행만 초래할 뿐이므로 우리의 인생을 증오로 얼룩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 인생을 사랑, 곧 하느님의 은혜 안에 있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감싸야 할 것입니다."
    지금 조엘 소넨버그는 스물세 살이다. 나이로 치면 아직 젊지만 영적 차원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길고 깊은 인생을 살아온 거인이다.
    그는 진실로 요셉과 같이 "~일지라도"의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젊은이다.
    - 송봉모 신부님의 [신앙의 인간 요셉] 중에서 [옮김]-
       
      『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2004년 12월 6일자 
      수원교구 성남동 천주교회 김양요님의 글입니다.  *^^* 
      
        
      ♣ 외적 무능 ♣ 
      
      
      중풍병자는 침상에 누운 채 예수님 앞에 옮겨져 왔다.한 인간이
      그곳에 아무 능력도 없이 드러누워 있다. 산다는 것이 그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저 자신에게는 짐이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이다. 그런 그가, 모여 있던 우리 모두가 지금 한 가지 희망을 품게 되었다.그리 스도께서 이 사람을 치료하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찾음으로써 이 사람에게도 인생이 커다란 전환점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이 중풍환자나 주위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으로 이 순간을 지켜 보고 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어리둥절하게 한다.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그는 죄 때문이 아니라 육신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인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입장 에서 판단하신다.
      몸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하는 것보다는 우선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영적으로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보신다. 육체 를 꿰뚫어 마음속을 보신다.
      그 중풍병자의 가장 큰 고통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그의 인생을 아무 의미도 없는 짐으로 만드는 하느님과의 격리였다.
      자기 힘으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 도와주더라도 그렇다. 중풍이나 외적 무능은 이렇듯 영적 비탄의 표시다. 눈으로 보는 사건의 외형 너머로 내적 사건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스러운 존재였던 중풍병자가 무거운 침상을 가볍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게 한다.
      
      【 묵 상 나 누 기 】
      
      
      † 전환점 †
      
      
      오늘 복음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말씀를 읽을 때면 언제나 떠오
      르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님. 그리고 내 자신이다. 몇 달前 여름
      방학 동안에 야곱의 우물을 나르면서 마지막 날인 8월 30일 야
      곱의 우물을 올리며 [안나]의 오래된 영혼의 중풍병이 나음을 
      받았기에 오늘 묵상글을 나누는 느낌은 남다르다.
      
      
      [루가 5,24]
      그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다.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앗!나는 사람들 앞에서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나즈막한 소리를 마음으로 알아들으면서 '주님,
      사마리아 여인되어 물동이를 지고 나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국방문길에 올라서도 종종거리며 물동이를 날랐다.^^
      
      지금은 나음을 받았던 그가 그랬듯이 앗! 나는 날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기쁘다. 미사의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미사를 드리니 삶의 의미가 새롭 게 다가온다. 중풍병자처럼 내 맘데로 할 수 없었던 묶인생활 을 살아보았기에/얼마나 갑갑했던가를 아직은 잊지 않았기에!
      성체를 모시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곤고한지를 느꼈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라는 사제의 기도 소리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울컥 뜨거운 눈물이 솟 구치는 것이다. 아파본 경험이 없다면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한 체 그 날이 그 날인것처럼 미사를 드렸으리라...
      
      중풍이나 외적 무능은 이렇듯 영적비탄의 표시다...
      
      
      10 년 전에 처음으로 버스 운전을 배울 때의 일이다. 유럽베낭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리어커 끌고 배추장사라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다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러 돌아갔지만,보수
      가 맞지를 않는다. 장비운전하면서 취득한 대형면허가 있으니/
      버스 운전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친구의 권유와 또 언젠가는
      유치원을 경영하고픈 꿈이 남아 있었을 때였으니 맞춤쟙이었다.
      
      몇 일을 기사 뒤에 앉아서 노선을 익혀 두었다. 그리고 운전하 는 솜씨를 얼마나 눈여겨 보았던가. 하지만, 운전은 자신이 직 접 버스를 끌고 도로를 나와야 하는 것이다.아무리해도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일 주일 후에는 새벽시간에 직접 운전을 해야된 다고 하는데.../운전대를 잡아보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일을 해야 먹고 사는데, 일을 해야 다음 꿈을 이룰 수 있는데/ 그 다음 날 아침 새벽기도회에 가서 엎드려졌다. 예배가 끝난후 모두가 돌아간 빈 자리에서 하느님과 앗! 나의 맞대결을 시작하 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캄캄한 상태. 인생에 있어서 광야와 같은 곳에 섰을 때.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때... 나는 나의 죄를 들여다 보기 시작하였다. 단지 지금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 속에서 나와 주님 과의 해결해야 될 것을 짚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다.
      그랬다.나는 몇 일간을 주님과 마주 앉아서 죄에 대한 통회자복 을 하였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보일 줄이야.../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무엇을 해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그 때 삶을 통해서 느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이른 새벽에 첫 차를 운전하였다. 전철 역으로 가는 몇 안되는 손님을 태우고 사수(운전을 가르친 기사) 를 뒤에 태우고 첫 길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내 무거운 죄 들을 고백하고나서야 삶의 힘을 얻은 것이다. 그런 후 5년 동안 무사고 영업용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운전했던 일은 내 삶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앞으로도 기 회가 되면 그 일은 나에게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여리딘 내가 할 수 있었기에 나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묵상글로 돌아간다.
      
      그는 죄 때문이 아니라 육신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인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입장에서 판단하신다. 몸이 건강한지 병
      들었는지 하는 것보다는 우선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영적으로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보신다. 육체를 꿰뚫어 
      마음속을 보신다. 
      
      
      내가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온 삶의 모든 '꺼리'들은 그 문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줄을 깨달으면 
      해결된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언제나 '죄'의 문제를 해결하
      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스러운 존재였던 중풍병자가 
      무거운 침상을 가볍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게 한다.
      
      
      나는 누구보다 이 말씀이 가슴으로 이해가 간다. 내가 부름을 
      받았을 때 그 때도 느꼈지만, 살아가면서 내내 삶의 굽이들을
      만날 때면 나음이 무엇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 것
      인지를 알고 있는...
      
      
      
      안나가요*^^*
    
    벗 님들~!
    무엇인가...삶에서 '외적 무능'이 찾아올 때에는..
    세상의 잣대가 아닌 신앙의 잣대로...얼른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주님 앞에 엎드려, 성모님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죄'를 살펴보는 길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적인 것이 해결이 되면, 육적인 필요함들은 저절로 해결이 되더군요... 영적인 것이 먼저 해결이 되면...남은 숙제를 풀어가기가 훨씬 쉽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저는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는 이렇게 신기한 일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이루어지기도 하더군요...
    .
    
    .
    .
    
     
     
    
    소스입니다.*^^*
    
    <ul><img src="http://GodisLove.net//wwwb/data/picture/
    038_142416violet22_com.jpg" border="0" color="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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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대림 제2주간 월요일-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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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루카 5,17­-2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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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주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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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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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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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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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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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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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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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유설 신부(메리놀외방전교회) -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왜 예수님은 치유하실 때 먼저 용서부터 하셨을까? 용서란 그 자체로 기적을 
    이루는 것일까? 사실 용서는 정서적·영적·육체적 기적을 불러일으킨다. 
    <br>
    캐럴린 메이스는 워크샵 중에 일어난 일을 들려준다. 한 참석자가 용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거부반응을 보이며 그 자리를 떠났다.
    <br>
    나중에 들어보니 아내의 반대에도 친척에게 돈을 빌려주고 집을 담보로 보증
    까지 서주었는데 그 친척이 도망을 가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었던 분이다. 
    게다가 건강과 직장까지 잃게 되자 더더욱 그 친척을 용서할 수 없었다. 
    <br>
    용서란 다른 이가 잘했다거나 옳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캐럴린은 용서란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새로운 
    인식이라고 말한다. 
    <br>
    그 상처가 나를 지배하지 않고 상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상처 안에 숨겨진 선물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큰 상처라 하더라도 그 안에 숨겨진 선물이 있다. 
    <br>
    적어도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지 않은가? 
    우리가 한 가지라도 숨은 선물을 찾게 된다면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 
    받은 상처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나 자신이 피해자가 된다. 
    <br>
    그날 그 남자는 강의를 듣고 더이상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석 달 후에 인생이 변하고 그 친척을 완전히 용서했으며 
    건강도 찾고 일자리도 얻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br>
    이번 대림절엔 내가 용서할 이는 누구인지, 혹 나부터 용서해야 하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용서가 힘들다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그 힘을 주실 수 있다
    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은총을 하느님께 구하자.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IMG src="http://www16.plala.or.jp/puchikan/sozai/illust/xmas/kristmasanime9.gif">
    <b>앗!...나의 생활나눔 *^^*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 용서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오늘 묵상글은 가슴속에서 쏟아지는 글들을 주체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어느 귀절에서도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벗 님들도 그러신가요?@.@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5pt"><b>
    용서란 <FONT color=brown style="FONT-SIZE: 11pt">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새로운 인식이라고 말한다.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 사랑의 빚진 자가 되어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
    <br>
    그럼으로써...
    앗! 나는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났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신앙의 눈길로 바라보니 모든 것이 은총일뿐.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b>
    그 상처가 나를 지배하지 않고 상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상처 안에 숨겨진 선물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큰 상처라 하더라도 그 안에 숨겨진 선물이 있다. 
    <br>
    적어도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지 않은가? 
    우리가 한 가지라도 숨은 선물을 찾게 된다면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 
    받은 상처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나 자신이 피해자가 된다.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참으로 놀라운 묵상 말씀입니다. 
    상처 안에는...아픔과 고통과 분함과 억울함, 그리고도 많은 것들이 그득하건만, 
    우리 주님은 그 끈을 놓게 하십니다. 그리곤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br>
    그것이 <b>'신앙의 신비'</b>이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아니면 내 어떻게
    이렇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하염없는 감사의 눈물이 흐릅니다.
    <br>
    울보 아지매라서가 아니라, 이제 그 상처를 디디고 일어서서 다른 이의 상처를
    보담아 안아주고 싶어서, 보잘것 없는 삶을 열어서 이렇게 저렇게 조잘거립니다.
    <br>
    길어지는 이야기들을 줄이고 '용서'라 하면 송봉모 신부님의 저서중에 나오는 
    조엘 소넨버그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br>
    동영상으로 나와 있는 글이 있어서../함께 나눌려니../요즘은 소스를 지웠는지
    뜨지를 않아 카페에서만 스크랩을 했습니다.
    <br>
    그리고 지난 해. 같은 복음의 내용으로, 평신도이신 [김양요] 님이 올리신 글은
    '용서'라는 각도가 아니라, 중풍병자라는 '외적 무능'에 대해서 나누신 글 또한
    혼자서 읽기엔 아쉬운 글입니다. 안나 아지매의 생활나눔도 벗님들과 다시 나누
    고 싶은 마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br>
    오늘도, 어느 귀절에서든가...한 줄을 붙드시고...
    힘찬 한 주간을 시작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한국도 폭설로 빙판 길이라고 하던데...이 곳도 밤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br>
    몇 년동안 이곳에 와서 하얀 눈을 즐겼습니다만, 이제는 출근을 해야되니
    반갑지만은 않은 눈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이렇게 간사하군요.*^^*
    눈길 조심해서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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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005e77>
             <B>- 송봉모 신부님의 [신앙의 인간 요셉] 중에서 -</B>
    <br>
    요셉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생각나는 젊은이가 있다. 조엘 소넨버그이다 
    그는 두 살 때 부모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br>
    통행료를 내기 위해 매표소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대형 트럭이 들이닥쳐
    추돌하면서 생긴 사고였다. 조엘은 뒷자리 유아용 좌석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불에 휩싸이게 되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는 죽었을 것이다.
    <br>
    조엘의 몸은 5분의 4가 화상을 입었고 한 손은 없어졌다. 그는 긴 세월을
    재활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몸의 고통은 물론 마음의 고통도 엄청 겪어야
    했다. 온통 일그러진 얼굴은 조롱감이었다.
    <br>
    사람들은 그를 보며 "저기 원숭이 좀 보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어떤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그를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축구팀의 주장과 학생회장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과대표를 맡았다.
    <br>
    조엘 앞에서 우리는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된 
    젊은이가 어떻게 그 모든 비극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을까?"
    <br>
    조엘은 이렇게 대답한다. <b>"만일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면 이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계속되는 모든 재활 작업과 수술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모든 고통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되겠지요."</b>
    <br>
    '만일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은 성조 요셉의 신앙 태도이다.
    요셉이 이해할 수 없는 생의 풍파 앞에서 하느님을 신뢰하였듯이
    조엘도 고통스런 자신의 처지 안에서 하느님을 신뢰하였다.
    <br>
    조엘도 성조 요셉처럼 자신에게 비극적 고통을 입힌 사람들에 대한
    악감정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
    가 사고 처리 중에 외국으로 도망가서 19년 동안 잠적해 버린 것이다.
    <br>
    조엘의 입장에서 그 운전사를 증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복수와 보복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br>
    그러나 조엘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 문제를 하느님께 넘깁니다.
    저는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몽땅 다 하느님에게 맡긴 것이다.
    <br>
    마치 요셉이 형들에게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을 
    대신하리이까?" [창세기 50,19]하고 말한 것처럼.
    <br>
    트럭 운전사가 19년 만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성조 요셉의
    형들이 20년이 조금 넘어서 요셉을 만난 기간과 유사하다. 조엘은
    법정에서 자기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이 운전사와 대면하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br>
    "제 생애에서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은 병원에서 치료받던 것입니다.
    거기서 저는 무력감을 느끼면서 보통 사람이 평생 겪어야 할 고통을
    겪었고 겪어오고 있습니다. ...
    <br>
    레지날드 도트 씨, (트럭 운전사의 이름)
    당신이 은혜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증오는 불행만 초래할 뿐이므로 우리의 인생을 증오로 얼룩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 인생을 사랑, 곧 하느님의 은혜 안에
    있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감싸야 할 것입니다."
    <br>
    지금 조엘 소넨버그는 스물세 살이다. 나이로 치면 아직 젊지만 영적
    차원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길고 깊은 인생을 살아온 거인이다.
    <br>
    그는 진실로 요셉과 같이 
    "~일지라도"의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젊은이다.
    <br>
                          <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음체 color=#005e77>
             <B>- 송봉모 신부님의 [신앙의 인간 요셉] 중에서 [옮김]-</B>
    <ul><IMG src="http://free2.ttcgi.com/myoung/ttboard/data/HIHYUN3/User1.gif">
    <pre><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2004년 12월 6일자 
    수원교구 성남동 천주교회 김양요님의 글입니다.  *^^* </b>
    <pre>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외적 무능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중풍병자는 침상에 누운 채 예수님 앞에 옮겨져 왔다.한 인간이
    그곳에 아무 능력도 없이 드러누워 있다. 산다는 것이 그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br>
    저 자신에게는 짐이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이다. 그런 그가,
    모여 있던 우리 모두가 지금 한 가지 희망을 품게 되었다.그리
    스도께서 이 사람을 치료하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br>
    그리스도를 찾음으로써 이 사람에게도 인생이 커다란 전환점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br>
    이 중풍환자나 주위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으로 이 순간을 지켜
    보고 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어리둥절하게 한다.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그는 죄 때문이 아니라
    육신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인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입장
    에서 판단하신다.
    <br>
    몸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하는 것보다는 우선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영적으로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보신다. 육체
    를 꿰뚫어 마음속을 보신다.
    <br>
    그 중풍병자의 가장 큰 고통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그의 인생을
    아무 의미도 없는 짐으로 만드는 하느님과의 격리였다.
    <br>
    자기 힘으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 도와주더라도 그렇다. 중풍이나 외적 무능은 이렇듯 영적
    비탄의 표시다. 눈으로 보는 사건의 외형 너머로 내적 사건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br>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스러운 존재였던 중풍병자가 
    무거운 침상을 가볍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게 한다.
    <br>
    <pre><FONT color=#005e77 style="FONT-SIZE: 10pt">
    <b>【 묵 상 나 누 기 】</b>
    <pre><FONT color=#005e77 style="FONT-SIZE: 11pt">
    † 전환점 †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오늘 복음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말씀를 읽을 때면 언제나 떠오
    르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님. 그리고 내 자신이다. 몇 달前 여름
    방학 동안에 야곱의 우물을 나르면서 마지막 날인 8월 30일 야
    곱의 우물을 올리며 [안나]의 오래된 영혼의 중풍병이 나음을 
    받았기에 오늘 묵상글을 나누는 느낌은 남다르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루가 5,24]
    그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다.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앗!나는 사람들 앞에서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나즈막한 소리를 마음으로 알아들으면서 '주님,
    사마리아 여인되어 물동이를 지고 나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국방문길에 올라서도 종종거리며 물동이를 날랐다.^^
    <br>
    지금은 나음을 받았던 그가 그랬듯이 앗! 나는 날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기쁘다.
    미사의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미사를 드리니 삶의 의미가 새롭
    게 다가온다. 중풍병자처럼 내 맘데로 할 수 없었던 묶인생활
    을 살아보았기에/얼마나 갑갑했던가를 아직은 잊지 않았기에!
    <br>
    성체를 모시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곤고한지를 느꼈기 
    때문에 <b>'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b>라는 
    사제의 기도 소리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울컥 뜨거운 눈물이 솟
    구치는 것이다. 아파본 경험이 없다면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한
    체 그 날이 그 날인것처럼 미사를 드렸으리라...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중풍이나 외적 무능은 이렇듯 영적비탄의 표시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10 년 전에 처음으로 버스 운전을 배울 때의 일이다. 유럽베낭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리어커 끌고 배추장사라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다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러 돌아갔지만,보수
    가 맞지를 않는다. 장비운전하면서 취득한 대형면허가 있으니/
    버스 운전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친구의 권유와 또 언젠가는
    유치원을 경영하고픈 꿈이 남아 있었을 때였으니 맞춤&#51161;이었다.
    <br>
    몇 일을 기사 뒤에 앉아서 노선을 익혀 두었다. 그리고 운전하
    는 솜씨를 얼마나 눈여겨 보았던가. 하지만, 운전은 자신이 직
    접 버스를 끌고 도로를 나와야 하는 것이다.아무리해도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일 주일 후에는 새벽시간에 직접 운전을 해야된
    다고 하는데.../운전대를 잡아보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br>
    일을 해야 먹고 사는데, 일을 해야 다음 꿈을 이룰 수 있는데/
    그 다음 날 아침 새벽기도회에 가서 엎드려졌다. 예배가 끝난후
    모두가 돌아간 빈 자리에서 하느님과 앗! 나의 맞대결을 시작하
    는 것이다.
    <br>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캄캄한 상태. 인생에 있어서 광야와 같은
    곳에 섰을 때.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때...
    나는 나의 죄를 들여다 보기 시작하였다. 단지 지금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 속에서 나와 주님
    과의 해결해야 될 것을 짚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다.
    <br>
    그랬다.나는 몇 일간을 주님과 마주 앉아서 죄에 대한 통회자복
    을 하였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보일 줄이야.../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무엇을 해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그 때 삶을 통해서 느꼈다.
    <br>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이른 새벽에 첫 차를 운전하였다. 전철
    역으로 가는 몇 안되는 손님을 태우고 사수(운전을 가르친 기사)
    를 뒤에 태우고 첫 길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내 무거운 죄
    들을 고백하고나서야 삶의 힘을 얻은 것이다. 그런 후 5년 동안
    무사고 영업용 운전을 할 수 있었다. 
    <br>
    그렇게 운전했던 일은 내 삶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앞으로도 기
    회가 되면 그 일은 나에게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여리딘 내가 할 수 있었기에 나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묵상글로 돌아간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그는 죄 때문이 아니라 육신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인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입장에서 판단하신다. 몸이 건강한지 병
    들었는지 하는 것보다는 우선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영적으로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보신다. 육체를 꿰뚫어 
    마음속을 보신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내가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온 삶의 모든 '꺼리'들은 그 문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줄을 깨달으면 
    해결된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언제나 '죄'의 문제를 해결하
    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스러운 존재였던 중풍병자가 
    무거운 침상을 가볍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게 한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나는 누구보다 이 말씀이 가슴으로 이해가 간다. 내가 부름을 
    받았을 때 그 때도 느꼈지만, 살아가면서 내내 삶의 굽이들을
    만날 때면 나음이 무엇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 것
    인지를 알고 있는...
    <pre><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IMG src="http://www.imagestation.com/picture/sraid53/
    p1267c37ffdbfe50aca62ebc9cb2ddfb0/fc8b9715.gif">
    <b>안나가요*^^*</b></ul>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벗 님들~!
    무엇인가...삶에서 '외적 무능'이 찾아올 때에는..
    세상의 잣대가 아닌 신앙의 잣대로...얼른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br>
    주님 앞에 엎드려, 성모님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죄'를 살펴보는 길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br>
    영적인 것이 해결이 되면, 육적인 필요함들은 저절로 해결이 되더군요...
    영적인 것이 먼저 해결이 되면...남은 숙제를 풀어가기가 훨씬 쉽습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저는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는 이렇게 신기한 일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이루어지기도 하더군요...<b>
    .
    <br>
    .
    <br>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height=70 src="http://cafe210.daum.net/cafeimg-proxy?
     grpcode=Coreansanctus&imgType=logo&time=1127253570000"
     width=230 align=absMiddle border=0><FONT color=red><FONT size=3> 
    <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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