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12월 6일 야곱의 우물입니다 - 소중한 당신/아버지 ♣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6 조회수1,274 추천수12 반대(0) 신고



     
    대림 제2주간 화요일 - 소중한 당신  
    
    
    [마태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하유설 신부님 (메리놀외방전교회) - 
    
     
    남성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아버지와 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아버지와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해본 적도 없었고, 아버지가 화를 내면 무척 두려웠다. 
    
    그러나 중년기에 들어 남성학을 공부하면서 아버지와 관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화를 걸기 전에 아버지와 할 이야기를 미리 준비하였고 그러면서 차츰 각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 게 되었다. 만나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게 될 때도 이야깃거리를 준비했다.
    1992년 2월에는 식사를 하면서 종교 체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중에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이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말씀하셨는 데 한 달 후에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겨우 아버지와 가까워졌는데….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죽음도 우리의 사랑을 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큰 축복을 주셨 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버지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무엇 보다도 크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
    예수님도 오늘 비유를 통해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어떤 목자가 양 백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비유의 핵심은 아흔아홉 마리를 잃을 수 있는데도 이들을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어리석은 목자 에 대한 것이다. 이 비유는 우리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소중하게 여김 을 표현하는 것이라 본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아이다. 우리 각자가 하느님 아버지께 소중하고 고유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가족과 공동체와 함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열쇠다.
    이번 대림절에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자.또 가정이나 공동체나 직장 안에서 내가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이에게 그의 소중함을 표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2002년12월 같은 복음에 나오는《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신은근 신부님 (마산교구 월남동 천주교회) - 
    
     
    ▒ 한 마리 양 ▒
    
    
    양을 잃어버렸다면 찾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들판에 아흔아홉 마리를 그냥
    두고 한 마리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도둑이 와서
    몰고 가면 어쩌려고 그럴까.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된 뒤에도 이 생각은 별반 바뀌지 않았다. 잃어버린 양 한마리가 그렇게 중요할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을 나간 양은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다수를 위해 소수는 희생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다수의 의견에 소수는 따라야 하고, 대의를 위해선 사소한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인간다운 행동이라 여겨왔다. 정말 그럴까?
    진리는 진정 다수의 의견에 있는 것일까. 세상은 그럴지 몰라도 하느님께는 통 하지 않는다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다. 인간의 논리와 판단기준을 뛰어넘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복음은 이야기하고 있다.
    자녀가 병들면 부모도 같이 아프다. 사랑하는 자녀가 낫는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건강한 아이를 제쳐두고 아픈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도 바로 이런 부모의 마음이다. 그에게는 들판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양 한 마리 한 마리가 그렇게도 소중한 것이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시다. 그분은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이다.
    
    
    앗!...나의 생활나눔 *^^* 
    
    
    † 아버지 †
    
    
    이 비유는 
    우리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소중하게 여김을 표현하는 것이라 본다.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려면...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봐야 안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앗! 나는 [안낳]랍니다.^ ^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 깊이는 다를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는 운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가끔은 우물가에서 상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 그 중에 하나가 부모님들의 인연으로 받은 상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 의 눈으로 바라본다면,하느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은 은총'이라든가, 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몽당연필 하나 사주지 않았던 내 아버지.../ 내가 가도 그리 반기지 않고...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계셨던 그분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직장을 다니며..나름데로 경제력이 생겼을 때 어버이날과 아버님의 생신날만큼은 잊지않고 찾아뵈올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신앙의 힘'이 무엇이냐구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이지요... 아빠 아버지, 나의 하느님의 사랑이 내 삶을 섭리하고 계심을 깨달았을 때. 육신의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큰 사랑 앞에서... 내 상처들은 더 이상의 상처로 남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보담아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이...그 어린 나이에도 가득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소중이 여기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죄인 하나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지금은 들을 수 없지만, 어렸을 적에, 새벽예배를 알리는 새벽종소리를 들으면 그만 마음이 쌰~하니 눈물이 흐르는 것도 죄인이 돌아오는 것이지요.../
    세상을 향하여...세상의 것을 구하기 위하여 뛰어다니다가도, 어느날 교회 앞을 지나갈 때면 발걸음이 멈춰지는 것도 죄인이 하느님 아버지를 의식하는 것이겠지요.../
    아버지.
    지난 가을 고국 방문 길에, 아버지 산소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온 것은...결혼하고자 승낙을 받으러 갔던 스물 아홉살 때였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몇 년의 세월을 보내고 계셨 을 때였으니..누군가에게 절 받기를 싫어하셨습니다. 결국 또 상처를 받고 돌아섰습니다.
    인생사가 마음먹은데로 되지 않는 것처럼... 제 결혼생활이 순탄했더라면, 다시 아버지를 뵈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빨리 지나가달라고 애원할 때에는 그리도 더디 가더구먼, 화살처럼 지난가버린 세월이 십여년,
    어느날....삶의 방황길에서, 너무나 보고 싶어서, 너무나 그리워서...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때가 이르렀을 때. 묵은 전화번호 수첩을 뒤적거려서...전화를 드리니...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내 살아온 날에... 처음으로 담배를 한 갑 사서 피워 물었습니다. 그리고 베란다에 나가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서... 또 십육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태평양을 건너와서야, '아버지'가 그리워진 것입니다.
    .
    .
    .
    산소 묘비에는... 9남매 이름 다음에, 제 이름이 써있었습니다.
    그리고,아버지 이름 옆에는 [베드로]라는 본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요셉이시요, 할머님은 막달레나..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오열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붙이는 것인지요... 참으로 온 마음으로,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궈지도록 울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용서의 눈물이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로 부터 느낀 그 사랑의 아주 작은 부분이었지만,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스럽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살아온 모든 세월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나를 용서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요.
    힘들 때마다... 그리움이 원망으로 변하였던 그 시간들... 그런데, 더 이상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젠 사랑 할 수도 없구, 원망과 미움의 시간도 다 지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덧 없는 세월.... 무엇이 그리도 미웠으며, 원망스러웠던고!...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육신의 형제자매에 대한 그리움이 없어졌습니다. 미움이 없으니 저절로 그리움도 없어집니다. 연락이 없다해도 이제는 섭섭치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형제자매가 더 그립습니다. 이야기가 자꾸 샛길로 갑니다...*^^*

    그런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위해서... 12월 8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살레시오 수도원 미사에서 평생 연미사를 봉헌해 드릴려고 합니다.
    내 육신을 낳아주신 아버지, 베드로 님을 생각하니... 영적인 아버지, 고 김승훈 마티아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영세를 주시면서,...'잘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씀해주신 분. 견진을 받을때에,...'착하게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씀해주신... 신부님이 내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가까이 내 삶에서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지키려고... 잘 살려고 애씁니다. 착하게 살려고 있는 힘을 다해봅니다.
    그래서 영적인 아버님을 위해서도 평생 연미사를 봉헌합니다. 이제 뭔가를 깨달아 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신앙의 신비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이지요...그렇지요...!
    오늘은 울엄니의 남동생이 먼 길을 떠나셨다고 한국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어머님께는 말씀드릴 수도 없는 비보입니다.
    오늘은 웬지 울엄니가 측은해 보입니다... 친형제 자매들이 한 분씩 한 분씩 떠나시는 것도 모르시는 울엄니... 이제 제가 사랑해드릴 수 있는 분은 울엄니뿐이 아니 계시는구나 싶으니... 어머님은 이제 더 이상 저의 십자가가 아닙니다...아니구말구요~!
    한없이 길어지는 삶의 이야기, 세상사는 이야기입니다... 안나 아지매는 그래서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습니다..
    야곱의 우물 책에 이 말씀이 써있습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이사43,4]
    
    
    네. 주님, 그렇지요...
    앗! 나는 주님께 그렇게 귀염둥이지요...
    앗! 나는 주님께 그렇게 사랑둥이지요...
    
    어디 앗! 나만 그렇겠습니까!... 앗! 너 님들도 그리 사랑하십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지...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어서 줄입니다. 한 말씀 나누면서 마칩니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시다
    그 분은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이다. 
    
    
     
     
    
    소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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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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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대림 제2주간 화요일 - 소중한 당신</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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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마태 18,12­-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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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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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br>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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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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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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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유설 신부님 (메리놀외방전교회)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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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아버지와 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아버지와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해본 적도 없었고, 아버지가 화를 내면 무척 두려웠다. 
    <br>
    그러나 중년기에 들어 남성학을 공부하면서 아버지와 관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화를 걸기 전에 아버지와 할 이야기를 
    미리 준비하였고 그러면서 차츰 각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
    게 되었다. 만나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게 될 때도 이야깃거리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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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2월에는 식사를 하면서 종교 체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중에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이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말씀하셨는
    데 한 달 후에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겨우 아버지와 가까워졌는데…. 
    <br>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죽음도 우리의 사랑을 
    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큰 축복을 주셨
    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버지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무엇
    보다도 크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 
    <br>
    예수님도 오늘 비유를 통해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어떤 목자가 양 백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비유의 핵심은 아흔아홉 
    마리를 잃을 수 있는데도 이들을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어리석은 목자
    에 대한 것이다. 이 비유는 우리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소중하게 여김
    을 표현하는 것이라 본다. 
    <br>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아이다. 
    우리 각자가 하느님 아버지께 소중하고 고유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가족과 공동체와 함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열쇠다. 
    <br>
    이번 대림절에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자.또 가정이나 
    공동체나 직장 안에서 내가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이에게 그의 소중함을 표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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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2002년12월 같은 복음에 나오는《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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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은근 신부님 (마산교구 월남동 천주교회)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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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한 마리 양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양을 잃어버렸다면 찾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들판에 아흔아홉 마리를 그냥
    두고 한 마리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도둑이 와서
    몰고 가면 어쩌려고 그럴까.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br>
    어른이 된 뒤에도 이 생각은 별반 바뀌지 않았다. 잃어버린 양 한마리가 그렇게
    중요할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을 나간 양은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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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를 위해 소수는 희생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다수의 의견에 소수는 따라야 하고, 대의를 위해선 사소한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인간다운 행동이라 여겨왔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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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는 진정 다수의 의견에 있는 것일까. 세상은 그럴지 몰라도 하느님께는 통
    하지 않는다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다. 인간의 논리와 판단기준을 뛰어넘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복음은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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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가 병들면 부모도 같이 아프다. 사랑하는 자녀가 낫는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건강한 아이를 제쳐두고 아픈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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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도 바로 이런 부모의 마음이다. 그에게는 들판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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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한 마리 한 마리가 그렇게도 소중한 것이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시다. 그분은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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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앗!...나의 생활나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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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b>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이 비유는 
    우리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소중하게 여김을 표현하는 것이라 본다.</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려면...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봐야 안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앗! 나는 [안낳]랍니다.^ ^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 깊이는 다를 것입니다.
    <br>
    저는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는 운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가끔은 우물가에서 상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 그 중에
    하나가 부모님들의 인연으로 받은 상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
    의 눈으로 바라본다면,하느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시는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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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고통은 은총'이라든가,
    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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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당연필 하나 사주지 않았던 내 아버지.../
    내가 가도 그리 반기지 않고...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계셨던 그분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직장을 다니며..나름데로 경제력이 생겼을 때
    어버이날과 아버님의 생신날만큼은 잊지않고 찾아뵈올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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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신앙의 힘'</b>이 무엇이냐구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이지요...
    아빠 아버지, 나의 하느님의 사랑이 내 삶을 섭리하고 계심을 깨달았을 때.
    육신의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br>
    너무나 큰 사랑 앞에서...
    내 상처들은 더 이상의 상처로 남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보담아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이...그 어린 나이에도 가득했습니다.
    <br>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소중이 여기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죄인 하나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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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들을 수 없지만, 어렸을 적에, 새벽예배를 알리는 새벽종소리를 들으면
    그만 마음이 &#49968;~하니 눈물이 흐르는 것도 죄인이 돌아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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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향하여...세상의 것을 구하기 위하여 뛰어다니다가도,
    어느날 교회 앞을 지나갈 때면 발걸음이 멈춰지는 것도 죄인이 하느님 아버지를 
    의식하는 것이겠지요.../
    <br>
    <b><big>아버지.</b></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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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가을 고국 방문 길에, 아버지 산소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온 것은...결혼하고자 승낙을 받으러 갔던 스물 아홉살
    때였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몇 년의 세월을 보내고 계셨
    을 때였으니..누군가에게 절 받기를 싫어하셨습니다. 결국 또 상처를 받고 
    돌아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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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사가 마음먹은데로 되지 않는 것처럼...
    제 결혼생활이 순탄했더라면, 다시 아버지를 뵈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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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지나가달라고 애원할 때에는 그리도 더디 가더구먼, 화살처럼 지난가버린
    세월이 십여년, 
    <br>
    어느날....삶의 방황길에서,
    너무나 보고 싶어서, 너무나 그리워서...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때가 이르렀을 때.
    묵은 전화번호 수첩을 뒤적거려서...전화를 드리니...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br>
    내 살아온 날에...
    처음으로 담배를 한 갑 사서 피워 물었습니다.
    그리고 베란다에 나가 목놓아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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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소식을 듣고서...
    또 십육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태평양을 건너와서야, '아버지'가 그리워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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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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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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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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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소 묘비에는...
    9남매 이름 다음에, 제 이름이 써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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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아버지 이름 옆에는 [베드로]라는 본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요셉이시요, 할머님은 막달레나..참으로 놀라웠습니다.
    <br>
    오열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붙이는 것인지요...
    참으로 온 마음으로,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궈지도록 울었습니다.
    <br>
    그것은 사랑과 용서의 눈물이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로 부터 느낀 그 사랑의 아주 작은 부분이었지만,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스럽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br>
    그리고, 살아온 모든 세월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나를 용서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요.
    <br>
    힘들 때마다...
    그리움이 원망으로 변하였던 그 시간들...
    그런데, 더 이상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젠 사랑 할 수도 없구, 원망과 미움의 시간도 다 지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br>
    이렇게 덧 없는 세월....
    무엇이 그리도 미웠으며, 원망스러웠던고!...
    <br>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육신의 형제자매에 대한 그리움이 없어졌습니다.
    미움이 없으니 저절로 그리움도 없어집니다. 
    연락이 없다해도 이제는 섭섭치가 않습니다.
    <br>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형제자매가 더 그립습니다. 
    이야기가 자꾸 샛길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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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그런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위해서...
    12월 8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살레시오 수도원 미사에서 평생 연미사를 봉헌해 드릴려고 합니다. 
    <br>
    내 육신을 낳아주신 아버지, 베드로 님을 생각하니...
    영적인 아버지, 고 김승훈 마티아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br>
    영세를 주시면서,...<b>'잘 살아야 합니다'</b>라고 말씀해주신 분.
    견진을 받을때에,...<b>'착하게 살아야 합니다'</b>라고 말씀해주신...
    신부님이 내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가까이 내 삶에서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br>
    그 말씀을 지키려고...
    잘 살려고 애씁니다. 
    착하게 살려고 있는 힘을 다해봅니다.
    <br>
    그래서 
    영적인 아버님을 위해서도 평생 연미사를 봉헌합니다.
    이제 뭔가를 깨달아 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신앙의 신비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이지요...그렇지요...!
    <br>
    오늘은 울엄니의 남동생이 먼 길을 떠나셨다고 한국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어머님께는 말씀드릴 수도 없는 비보입니다. 
    <br>
    오늘은 웬지 울엄니가 측은해 보입니다... 
    친형제 자매들이 한 분씩 한 분씩 떠나시는 것도 모르시는 울엄니...
    이제 제가 사랑해드릴 수 있는 분은 울엄니뿐이 아니 계시는구나 싶으니...
    어머님은 이제 더 이상 저의 십자가가 아닙니다...아니구말구요~!
    <br>
    한없이 길어지는 삶의 이야기, 세상사는 이야기입니다...
    안나 아지매는 그래서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습니다..
    <br>
    야곱의 우물 책에 이 말씀이 써있습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이사43,4]</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네. 주님, 그렇지요...
    앗! 나는 주님께 그렇게 귀염둥이지요...
    앗! 나는 주님께 그렇게 사랑둥이지요...
    <br>
    어디 앗! 나만 그렇겠습니까!...
    <b>앗! 너</b> 님들도 그리 사랑하십니다.
    <br>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지...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어서 줄입니다.
    한 말씀 나누면서 마칩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4pt"><b>
    하느님은 그런 분이시다<FONT color=brown style="FONT-SIZE: 11pt">
    그 분은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이다. </b>
    <br>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height=70 src="http://cafe210.daum.net/cafeimg-proxy?
     grpcode=Coreansanctus&imgType=logo&time=1127253570000"
     width=230 align=absMiddle border=0><FONT color=red><FONT size=3> 
    <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FONT> 
    <IMG src="http://youngminene.com.ne.kr/New_Menu/image/brigid_logo.gif" border=0> </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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