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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연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6 조회수727 추천수2 반대(0) 신고

2005.12.6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이사40,1-11 마태18,12-14

                   

                          
    "하느님의 연민(compassion)"


연민(compassion)의 하느님입니다.
강물 깊이의 사랑(love)이라면 태평양 깊이의 사랑이 연민입니다.

마치 이성(異性)간의 사랑 보다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 같은 측은히 여기는, 가엾이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사랑으로
불교의 자비(慈悲)와 통하는 사랑입니다.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연원한, 선과 악, 강함과 약함 등 전체를 껴안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 까지 미치는 사랑이 연민입니다.

모두가 잠시 있다 사라져갈 불쌍한 존재들이라는 자각에서 나오는 연민입니다.

이사야의 말씀이 이런 통찰을 잘 보여줍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사람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있으리라(이사40,6-8).”

잠시 있다 사라져갈 들풀과 같은 덧없는 인생이요, 들꽃과 같은 인간의 영화(榮華)입니다.
이 진리를 깊이 통찰할 때, 저절로 지혜요, 겸손이요, 연민이요, 용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위에 굳건히 서있어야 풀꽃 같은 인생도 영원의 빛을 발산하며
허무주의의 어둠에도 빠지지 않습니다.

하느님만이, 하느님의 말씀만이 삶의 허무감, 무의미에서 우리를 지켜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연민의 사랑으로 바꿔줍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연민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잘난 이들보다는 못 난이들을,
강한 이들보다는 약한 이들을,
건강한자들 보다는 병자들을,
의인보다는 죄인들을,
남자보다는 여자들을,
젊은이들보다는 어린이나 노인들을
각별히 챙기시는 연민의 하느님, 예수님이심을 봅니다.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길 잃은 양 한 마리의 구원이 하느님 관심의 초점이자 기쁨입니다.

능력과 효율,
적자생존,
업적위주의,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가치관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하느님의 가치관, 연민입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18,14).”

오늘 복음의 결론입니다.

오늘도

싫음과 미움을 넘어

상대방 전체를 싸안을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 연민으로
다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시는 성체성사의 주님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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