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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7 조회수907 추천수11 반대(0) 신고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산행을 할 때,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게 되듯이, 우리 삶의 여정 역시 즐거울 때와 슬프고 고달플 때가 있습니다.

기쁘고 즐거움 속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고, 반대로 슬프고 고달플 때, 하느님께 의지하며 극복하게 됩니다. 곧, 고난을 자신을 성숙시키는 새로운 계기,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삶의 희로애락이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없다면, 우리 삶과 일생이 단조롭기 때문에, 어떠한 재미와 긴장을 주기 위해 체험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 자체가 희로애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삶의 희로애락이 있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되어 버릴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고난과 역경, 지금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할 시련이나, 선택의 순간에 좌절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도와 달라고... 제발 길을 보여 달라고 애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겪는 많은 시련과 고난의 시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밤의 시기에 자기 혼자만 그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유혹이(죄가) 많은 곳에 더욱 많은 은총이 내렸습니다.’ 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고 어제 ‘잃은 양을 찾아 길을 떠나시는 목자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너무 무거운 짐에 허덕일 때,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할 때, 중대한 결정을 두고 불안과 긴장 속에서 허덕일 때, 함께 해주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의 결정을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 고백이요, 이를 체험하며 온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떤 고난을 체험할 때, 함께 해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합니까?

솔직히, 저는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고민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자세가 ‘뭐 그 까이거 대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도 두 번의 힘겨운 결단의 시련을 체험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제발 길을 보여 주십시오.’ 라는 고민을 하며 몇날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새울 정도였습니다.


처음은, 92년도에 신학교에 가려고 결정할 때 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 대해 아무리 좋고, 긍정적으로 평가를 내려도, 제가 신학교에 갈 줄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역시 ‘주제 넘는 소리 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스스로도 저 자신을 믿지 못해서 고민했고, ‘과연 내게 성소가 있는가?’ ‘신학교에 갈 수 있습니까?’ 라며 하느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드릴 수 있는 모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성서 말씀을 통해 제가 고민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었고, 또한 믿고 있습니다.

‘네가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겨라.’ 라는 말씀을 들려주시면,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시는구나.’고 믿고 신학교에 가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하는 4년이 제 삶의 꽃다운 시기요, 하느님과 놀라운 사랑을 나누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고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기도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신학교에서도... 지금도 드리지 못했던 기도를 드렸던 시기요, 참 솔직하고 순수하게 하느님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부제품을 앞둔 시기입니다.

‘과연 내가 사제가 될 수 있을까?’ 라며 두려움과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얼마나 고민을 했으면, ‘이렇게 왼쪽 머리가 휑하니 빠졌겠습니까?’

그 때 하느님께서는 저를 당신의 어머니께로 이끌어 주셔서, 성모님께 의지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아니, 신학교 삶 자체가.. 사제 생활하는 내내, 성모님의 도움으로 살아왔고, 그분의 손을 잡고 예수님께 나아갔기에 사제가 될 수 있었고, 이렇게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긴 시간동안 저의 삶의 일부를 나눠드린 것은, 저에 대해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해서 하느님이 성소를 받았고, 저렇게 살아와서 사제가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분임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입니다.

‘무거운 짐을 나에게 주어라. 너의 고민, 아픔, 고난을 나에게 주고, 너는 오직 나만 믿고 따르기만 하여라.’ 라고 말씀하시며 분임을... 진정 살아계신 분임을 이 자리에서 고백하고 싶어서 입니다.


떠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어제 복음에서 알려주듯이, 길을 잃은 양을 찾아 길을 떠나는 목자의 마음으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함께 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을 우리가 믿고 따르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기 위해서 입니다.


잠시 우리 삶을 되돌아봅시다.

과연 우리 삶 안에... 우리가 숨쉬고 살아왔던 모든 시간, 세월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지 않았던 시기, 시간이 언제 입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비참하고, 처참하게 버려 버리신 때가 언제 입니까?

없습니다. 아니 있을 수 없습니다.

삶에서 늘 고통과 비참, 눈물이 떠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주셨기에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밖에 할 수 없는 무능력한 분이십니다.

늘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 짐을 대신 짊어지시는 분입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해도.. 남이 알아주지 않고, 나쁜 놈, ‘무능력자’, 라는 평판을 들어도.. “나는 적어도, 나의 사랑만을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만은 그리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함께 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분이시기에, 우리는 늘 다윗과 같이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이 바로 우리 자신의 고백이라 여기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외에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무엇이옵니까? 당신께서 이토록 기억해 주시다니!

사람이 무엇이옵니까? 당신께서 이토록 돌보아 주시다니!”(시편 8, 5)

 

                               

 

                               제주 광양성당에서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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