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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성의 몸
작성자홍기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09 조회수966 추천수11 반대(0) 신고

여성의 몸

 

여성의 몸은 보호되어야 하는 가정의 성전이다.

우리나라의 전래 동화 중에 나뭇꾼과 선녀를 보면, 사슴이 선녀의 옷을 훔쳐 아내로 삼을 수 있도록 나뭇꾼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절대로 아이가 셋이 될 때까지 날개옷을 주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나 마음씨 따듯한 나뭇꾼은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며 날개옷을 입고 싶어하는 아내의 말을 듣게 된다. 그는 사슴의 말을 잊고 두 명의 아기를 낳고 난 뒤에 날개옷을 꺼내준다. 선녀는 그 날개옷을 입고 아기를 양 팔에 한 명씩 안고 하늘로 날아간다. 전래동화의 결말은 따듯하다. 아내를 잃은 나뭇꾼은 두레박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때를 몰래 기다렸다가 그 두레박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 선녀인 아내와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비롯 이 이야기가 전래 동화이지만, 이야기 속에는 많은 상징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여자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점차 그 집안 사람이 되어간다. 아이를 한 명 낳을 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느낌이 다르고, 아이를 두 명 낳을 때 또 다르며, 아이를 세 명 낳을 때 여자는 더욱 풍성한 인성을 가지게 된다. 아이를 한 명씩 더 낳을 때 마다, 여자의 심성은 점차 어머니의 심성으로 깊어지고, 마음은 점차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집안 사람이 되어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친정으로부터 독립되고, 아가씨의 마음에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성숙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면, 적당한 시기에 아기에 있어야 하며, 그 아기는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넓고 깊게 성장시키며 가정에 평화와 기쁨의 햇살을 비추게 한다. 그래서 아내를 '안해', 즉 '안에 있는 해'라는 말을 하였을 것이다.

 

가정에서 아기의 수를 부부의 의지에 따라 조절하게 되어, 부부애가 돈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이혼률이 증가하는 것은 이러한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 한 명만 낳아 잘 기르자는 뜻은 한 명만 낳아 잘 기르려는 좋은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뜻밖에 발생하는 가정의 작은 고난에 금새 좌절하고 부부애가 위기를 맞으며 이혼으로 가게 되는 경향이 많다.

그러한 지금의 사회적 풍토에 따라, 여성의 몸을 소중하고 건전하게 돌보지 않은 경향은 유산이나, 자궁외 임신, 임신 중독증 등, 많은 질병을 가져오게 한다.

 

근래 발생한 황우석 교수의 사건은 이러한 여성의 몸에 더욱 위기감을 가져오게 한다. 불치병을 고치는 치료가 꼭 난자에 있는 줄기세포만이 아닐텐데, 왜 여성의 몸을 난자생산공장으로 전락시키는지 모르겠다.

불치병을 고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윤리적으로 과학적으로 큰 문제가 없고, 부작용이 없는 골수의 성체줄기세포가 있다.

골수의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성인의 몸에 있는 골수에 있는 것이므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여성의 몸은 남자의 몸과 다르게 난자가 몸의 외부로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자궁에 착상되게 되어있다. (물론 정자와 결합하지 못한 난자는 적절한 시간이 지난 뒤 몸밖으로 나온다. 그것이 생리이다.) 그것은 탯줄로 이어진 아기의 한 단계 이전 모습이다. 그러한 난자를 억지로 착출하는 것은 자궁의 자연적인 현상인 난자가 착상되는 것을 거꾸로 돌리는 억지이며,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지구인 몸의 자연순환궤도를 바꾸는 것과 같이, 마치 자전하는 지구를 거꾸로 돌리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인공유산의 폐혜를 잘 모르는 사람은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순수한 의사를 표현할 지 모르지만, 과학자의 윤리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난자 기증의 의사는 그렇게 쉽게 수용할 것이 아니다.

 

만약 어떤 여성이 처녀일때 난자를 기증하였다. 그 후 그 여성은 결혼한 후에 그 때의 인공유산과 같이 난자를 착출했던 일로 인하여 임신불능이나, 조산, 자궁외 임신등,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여러가지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을 황우석교수의 연구소와 재단은 처리할 준비가 되었있는지 의심스럽다. 불상사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길상사로 만들 수 있을까? 깊이 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아직 연구의 추후계획이나 임상실험의 단계에 오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 한국 젊은 여성들의 순수한 혈기를 그렇게 수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임상실험을 거친 비아그라는 현시점에서 판매율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심장마비, 신장병, 심장병, 고혈압, 등으로 더 큰 질병을 가져오게 되는 현상으로 말미암아 복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적어지고 있다.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와 시험, 임상실험등,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과학적인 과제는 우리의 희망처럼 그렇게 낙관적으로 예상할 수 없다. 수없이 많은 난관이 산재해 있다. 어쩌면 수천, 수만의 난자가 생체실험대상이 되어 파괴된 뒤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심하게는 몇 몇 비인간적인 양심을 소유한 과학자들에 의해 인류에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자연적이지 못한 인위적인 모든 의료, 과학적인 행위에 있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모든 방법과 과정은 고찰에 고찰을 거듭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비인간애적인 행위, 비과학자적인 행위에 대하여 분명히 감상적인 동정심을 베풀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앞으로 더 큰 사건을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그것이 이번 황 우석 교수의 난자 채취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그것에 감정적인 동정심이나, 선진국의 과학적인 성취에 대한 비교에서 나오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국수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난자채취에 대한 정확하고 윤리적인 법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생명을 위한 것이여야 한다. 실험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난자와 쥐의 줄기세포를 결합시켰다면, 그것이 인간인가? 쥐인가?

 

발전하려는 과학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 아니다. 황우석 박사님의 과학적 성취는 분명 놀라운 일이며, 그 노력과 업적은 과학계에서 공로에 알맞게  업적을 인정받을 것이다.

 

과학이 과학 홀로 존재하는 일은 없다. 과학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람은 과학에 영향을 받는 서로 돕는 관계이다. 그 과학이 때로 인간의 생명과 존재 여부를 결정하는 치명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늘은 땅에 영향을 미치고, 땅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사람은 땅과 하늘의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인간의 신체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과학윤리에 대한 관행과 법이 가장 중요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할 때에는 늘 윤리학자와 종교지도자들, 각계각층의 깨어있는 사람들의 충언이 있었고, 그것이 고쳐지지 않을 때에는 인류에 재앙을 초래했을 뿐이다. 지금의 사태는 그러한 병의 발생을  막고자 하는 병의 증세가 드러난 일이다. 그것은 생명과학에 대한 법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윤리의식, 과학자들의 정직성은 부끄럽게도 이미 어느 수준인지 드러났다.

그러므로, 그 과정과 방법 또한 과학계가 아닌 곳, 종교와 윤리, 홍익인간의 정신에 입각한 윤리적인 엄정한 평가와 검증이 있어야 할 일이다.

 

 

과학은 인간에게 많은 번영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많은 인공재해를 가져올 수도 있고, 인류의 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쌍날같은 과학의 성취에 우리는 이성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재해를 미리 막는 슬기로움을 발휘해야 한다.

 

건강한 젊은 여성의 자궁과 난자는 나라의 미래이며, 국력이다. 그것은 결코 실험대상이 되어서 안되며, 실험실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된다. 근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우리들의 자녀는 모두 한국여성의 몸에서 나온 우리의 아들 딸이다. 그들의 보금자리인 자궁, 그들의 원천인  난자는 한국인의 성전이다.

 

일제식민시대의 마루타로 피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신 우리의 할머니들이 또 한 번 대성통곡을 하게 될 일이다. 과학에 대한 지성적인 윤리의식이 배제된 맹종은 우리 한국인을 다시금 과학의 식민지로 전락시켜 과학제국의 식민이 되게하는 첩경이다

 

 

 

 

반인반수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나오는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는 황소를 사랑하여 몸통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머리는 황소인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를 낳았다. 그 괴물은 사람들을 잡아먹어 크레타의 미노스 왕은 미궁에 그를 가둔다. 미노타우로스는 사람만을 먹어서, 미노스 왕은 전쟁포로들을 그의 먹이로 주었다.

 

황우석 박사님이 연구하는 난자에 다른 동물의 필요한 부분결합을 유도하는 것인지, 환자의 맞춤형줄기세포의 결합을 하는 것인지,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어떤 과정인지 모른다. 그러나 신화가 우리에게 상징하는 불행한 사태에 대하여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려는지, 윤리의식의 측면에서 그 연구과정이 심히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한 여성의 난자와 소가 결합하였다면, 그야말로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이 탄생할 것이다. 그 괴물은 난자를 제공한 여성의 후손인가?

아니면 소의 후손인가?

아니면 황우석 박사의 연구소 소속의 생명체인가?

 

만약 그러한 사태에 난자를 기증한 여성에게 미노타우로스 같은 괴물이 당신의 자손이라고 하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만약 결혼전에 난자를 제공한 그 여성과 결혼한 어떤 남성이 결혼 후에 임신과 함께 발생하는 임신불능, 자궁외 임신, 유산, 등의 불상사에 대하여, 난자를 제공한 여성에게 숭고한 행위를 했다고 박수치고 환영할 수 있는 남성이 얼마나 있을까?

 

여성의 난자가 실험실의 토끼나 쥐처럼 취급당하여 실험해도 되는 것일까?

 

생명과학의 발달의 진입부에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의혹과 질문은 이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계속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질문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에 양심이 흔들림이 없는 당당하고 정확한 답변을 하여야 한다.

 

그러한 사태에 대하여 어떻게 윤리적으로 대처할 것인지에 대하여, 인간존중에 입각한, 생명존중에 입각한 명백하고 합리적인 법적인 기준과 대처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협의회와 생명법 위원회에 각계각층에 비율을 합리적으로 맞추어야 하며, 많은 토론과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고, 깊은 성찰을 한 후에 생명법과 과학연구에 대한 방법과 과정에 대한 기준을 결정하여야 한다.

 

잘못된 법기준은 한국과 인류에 치명적인 오류를 남길 것이다.

 

과학은 인류에 행복과 번영을 가져오는 도구로 쓰여져야 한다. 과학을 비인간애적인 방법과 반생명적인 방법을 묵인하고 맹종한다면, 우리는 과학의 노예일 뿐이다.

 

퀴리부처는 라듐을 발견할 때에 방사선의 노출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알지 못했다. 그 당시 그들 연구소의 직원은 하나 둘씩 알수 없는 원인으로 죽었다. 퀴리부처는 방사선의 사용특허로 경제적인 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경제적인 이익을 갖지 않고 모두 공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것이 X-ray 이다.

 

광산 채굴에 어려움을 느낀 노벨은 폭탄과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그의 발명은 굴착공사, 수로, 도로공사에 이용되었다. 그러나 그가 발명한 폭탄이 원자폭탄이라는 더욱 파괴력을 지닌 물건으로 재생산되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되었고 수많은 생명이 살생되었으며, 그 원폭피해자는 다시 태내에서 방사선이 누츨된 장애아를 출산하는 등,  그 피혜는 자자손손 계속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일에 대하여 양심적인 고뇌에 시달리게 되었고, 말년에 그의 모든 재산을 노벨재단에 기탁하였고, 노벨평화상, 물리, 화학, 생리, 문학상과 상금을 수여하게 하였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 나치의 과학자들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가스실험을 하고, 생체실험을 하였고, 무자비한 사살을 하였다.

일본제국주의 과학자들은  중국, 한국을 비롯한 나라의 포로들을 생체실혐하였고, 어린 중국 한국 여성들은 일본군인들의 성적인 노리개인 윤락녀로 삼았다.

 

과학연구에 대한 인간존중에 입각한, 생면존중에 의한 연구방법을 교육시키고 준법시키는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윤리적인 과학자를 양성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기 그지 없다.

 

역사는 부끄러운 과거의 흔적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남겼다. 우리는 그 교훈을 무시하지 말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과학자와 행정가들의 감성적인 동조와 다수처럼 보이는 인터넷 넷티즌에 대한 비굴한 처세는 독일의 히틀러나, 일본의 천황이 남긴 오류를 되풀이 할 뿐이다. 인터넷의 넷티즌은 다수처럼 보이는 극성스러운 고함일 뿐이다. 인간애가 담긴 합리적인 지성의 활동이 기대된다.

 

그것은 선을 가장한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에 밝은 빛을 비추는, 생명을 창조한 하느님의 엄중한 권고이며, 한처음 <생명나무를 건들지 말라>는 말씀이며 , 동양에 진리를 전달한 달마의 우렁찬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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