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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습니다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10 조회수952 추천수11 반대(0) 신고
12월 11일 대림 제3주일-요한 1장 6-8절, 19-28절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절한 고정희 시인의 시는 언제 읽어도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유고시집의 표제시를 읽다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이 또한 여백이로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어떻습니까?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사람이 없습니까? 어쩔 수 없이 쓸쓸했던 사람, 그 누군가를 위해 기쁘게 사라진 사람, 그래서 여백 같던 사람...


저는 세례자 요한이 생각났습니다.


한 그룹의 신자들과 마주앉아 차를 한잔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자 자신들이 소속된 본당 신부님들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습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경쟁하다시피 칭찬들을 하시는데, 제가 샘이 다 날 지경이었습니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는 것 같아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신자들이 겪는 고초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함께 눈물 흘리는 사제, 겸손하게도 신자들에 앞서서 먼저 인사하는 사제, 본당 재정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홀로 식사를 해결하는 사제, 미사 시작 1시간 전, 가장 먼저 성체 앞에 앉아 기도하는 사제, 조금의 돈이라도 생기면 어려운 사람들 찾아나서는 사제,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는 사제, 신자들에게 민폐 끼치기 싫다며 죽기 살기로 축일행사를 마다하는 사제, 전철 잘 운행되는데 자가용은 무슨 자가용이냐며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제, 인사이동 때면 모든 것 그냥 두고, 모든 것 나눠주고 손가방 두 개만 챙겨서 바람처럼 떠나는 사제, 세례자 요한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 어떤 환상에도 빠지지 않는 사제...


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세례자 요한에게 보내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세례자 요한은 지체 없이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오.”


세례자 요한이 선구자로서 가장 적격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단지 그리스도에 앞서서 파견된 존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가장 큰 예언자로 불리는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그 어떤 환상에도 빠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신은 누구요?”란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습니다. 자신은 조연에 불과하고 주인공은 자기 뒤에 서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단호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시는 예수님이 더욱 높이 올라가도록, 더욱 빛을 발하도록 자신을 최대한 낮춥니다.


세례자 요한이 조금이라도 덕이 덜 닦인 사람이었더라면, 선구자로서의 삶의 준비가 부족했더라면 백성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올라갈 때 까지 올라갔던 자신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바라보며 착각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파견된 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야욕이 스며드는 것을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파견하신 이유를 상기하면서 겸손의 덕을 청합니다.


이토록 겸손했던 세례자 요한의 삶, 그 배경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세례자 요한은 오랜 기간 광야에서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의 강도 높은 피정과 자기 쇄신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잘 다스렸습니다. 고독과 침묵 속의 광야 생활에 충실했기에 세례자 요한은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음성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여 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례자 요한이 우리에게 보여준 모범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인공인 연극에 조연으로서의 겸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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