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2월15일-그리운 내 얼굴/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일곱째 날)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15 조회수855 추천수7 반대(0) 신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콘
     
    대림 제3주간 목요일-그리운 내 얼굴   
    
    
    [루카 7,24­-30]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 리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요한의 설교 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 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 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임숙희 님 (그레고리안대학 신학박사과정 ) -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요한 세례자 안에서 단지 한 예언자가 아니라 무엇
    보다도 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준비한 사람, 광야에서 하느님을 찾은 진정한 
    예언자로 보기를 원한다. 
    
    영적 쇄신의 한 방법으로 광야의 정화를 추구하는 것은 유다이즘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모세와 엘리야 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긴 전통이었다. 제2성전 시기에 많은 유다인이 꼭 어느 종파에 속하지는 않았어도 인생의 어느 기간 동안 광야의 고독을 체험하기 위해, 또는 훌륭한 지도자를 찾아 가정과 가족을 떠났다.
    집 근처에 숲이 있어 매일 나무 사이로 지는 태양, 바람에 흔들리는 옥수수밭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산과 숲이 있는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나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항상 숲을 동경해 왔다. 뮌스터에서 두 달 머물 때 기숙사 근처에 숲이 있어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하였다.
    그 작은 숲 입구에는 조그만 나무 간판 위에 ‘이곳은 침묵을 지키는 곳입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고장에서, 해질녘 숲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사실 처음에는 두려웠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걸음을 멈추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숲속 깊이 들어갔고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들 사이로 신비로운 경외감을 느끼며 걸었다.
    무엇보다도 숲속에서 가끔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지나가는 노인들, 젊은이 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절실하게 기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삶 전체를 하느님 손안에 놓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기도가 아니겠는가. 어떤 의미에서 일몰은 끝자락이 아니라 하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자신의 영혼에 귀기울이기 위해, 내면에 울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것을 몸으로 체험한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 나름의 광야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나의 고유한 얼굴, 내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리운 내 얼굴과 내 창조주,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다시 발견하고 ‘증언’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앗!...나의 생활나눔 *^^* 
    
    
    † 광야 †
    
    
    이곳은 내일 모레 금요일에 눈이 아주 많이 온다고 합니다. 주말마다 엄니를
    모시고 엄니네 아파트에 가서 한국식 목욕을 하는데, 한 주를 건너뛰면 하하,
    울엄니의 왕짜증이 시작될 것 같아서, 
    
    사실, 엄니가 기분이 아니 좋으시면..저도 야곱이 써내려가기가 힘드니 길이 좋을 때에 얼른 모시고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물동이를 날라야 되는 시간이 부족하기에, 지루하지 않도록 음악이 메들리로 나오는 곡을 골라서, 바오로 딸에서 출간된 송봉모 신부님의 『광야에 선 인간』에 나오는 맺는 말을 옮겨봅니다.
    광야의 이야기만 나오면 저는 할 이야기가 많아지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광야를 많이 돌아다녀봤기 때문이겠지요.^ ^ 오늘은 송신부님의 '광야'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신부님께서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을 너무나도 잘 정리해놓으셨으니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첫째, 광야는 우리 최종 목적지로 가는 한 과정이요,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장소라는 것, 영원한 바람소리를 내는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연적
    인 과정이라는 것을 보았다.
    
    이 과정은 단순히 공간적. 시간적인과정이 아니다. 그것으 존재 자체가 변화를 겪 는 과정이다. 야곱의 후손이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로 새롭게 태어나고,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 자유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한때 안주했던 과거 세계, 옛 인습과 옛 자아의 세계를 부숴버리게 된다.노예살이를 하는 동안 우리는 몸에 붙어 있던 과거 이집트의 잔재 들을 떼어내고,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생관을 갖게 된다.
    둘째, 거대하게 펼쳐진 광야,가도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광야길은 생의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자리임을 보았다.아득한 지평선을 보면서 숨이 막힐 때, 앞길을 막고 있 는 거대한 바위산 앞에서 두 다리의 힘이 빠져 나감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 생의 가장 중요한 분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생의 조건이 철저히 결여된 고통스런 광야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광야는 하느님을 우리 생의 우선 순위로 선택하게 만드는 장소이다.
    셋째, 광야는 두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것을 보았다. 광야는 한편에서는 고통과 아픔의 얼굴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에선느 하느님 돌보심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이 다.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 상황에서 우리가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 하느님 돌보심 때문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은 목숨이 질겨서 살아간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하느님 돌보심 때문이다.
    넷째, 두 얼굴을 보이는 광야에서 우리가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보면 하느님께 반항 하게 되지만 돌보심의 얼굴을 바라보면 인내와 힘을 얻게 된다.
    다섯째, 우리가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보면 유혹을 받게 되어 끝내 파멸하게 되지만 돌보심의 얼굴을 보면 시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람으로 단련되고 정화된다. 그러니 광야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더라도 받아 안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 각자가 대면하고 있는 광야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 해방에 이르기 위해 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다.
    (1) 광야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이 신앙의 학교에 들어와 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 야곱의 후손들이 광야에서 자기들의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양성되는 교육을 받았듯이 우리도 광야에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양성교육을 받는다.
    광야에서 겪게 된느 수많은 고통과 시현 그리고 많은 아픔과 눈물은 마치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국어. 산수. 자연 등을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광야가 주는 고통과 시현은 한 인간이 자기 발로 서기 위한, 그리고 하늘과 진릴르 섬기기 위한 교육 과정이다.
    (2) 광야는 신앙의 학교이다. 이 신앙의 학교에서 우리는 순종하여야 한다. 마치 선생 님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처럼 하느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야 한다. 나에게 좋은 것만 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으면서 인내하여야 한다. 나를 양성시키시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순종하고 인내해야 한다.
    (3) 그래도 견디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느님은 결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련을 겪도록 내버려 두는 분이 아니심을 믿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가 견딜 만큼만 시 련을 허락하신다.우리가 겪는 광야의 시련이 초대 교회의 순교 성인들의 시련만큼 모질 다고 생각지는 말자.광야의 시련 앞에서 우리는 성서인물 유딧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시험하셨듯이 지금 우리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충성심을 단련하기 위하여 불과 같은 시련을 준 것만큼 혹독하게 우리를 다루지는 않으십니다." [유딧8,25-26]
    
    우리에게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 나름의 광야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나의 고유한 얼굴, 내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리운 내 얼굴과 내 창조주,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다시 발견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말이다. 
    
    
    벗 님들~!...
    
    광야의 끝이 어디인줄 아십니까!... 이렇게 '증언'하게 되는 자리랍니다.
    광야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렇게 자신을 홀라당 벗기어서 인터넷 바다 위에 올려놓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적어도 [안나]아지매는 그렇습니다. 광야의 끝. 마흔 아홉의 끝 에서 그리운 내 얼굴을 찾았습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는 내 영을, 내 주님을, 내 아버지 하느님을, 그리고 내 성모님을 찾았습니다.
    내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선교사'의 꿈을...중년의 아짐이 되어서야, 살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게 된 것이지요...*^^*
    참.../행복합니다. 매일매일 바쁘고 정신없는 가운데서도... 주님의 멍에를 조금이나마 지게되는 것 같아서.../ 그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 ______ ^
    주님을 '증언'하는 그 자리는...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가는 길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고해도, 주님이 부르시는 자, 주님이 가라하시면 가야 됩니다.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가야됩니다.
    행복한 앗! '나'이지만... 행복함 속에...주님과 [안나]만의 눈물,콧물의 시간이 있음이지요. 마냥 웃음으로 이어진 행복함이 아니라, 뜨거운 눈물의 고백들이.. 수없이 이어지는/주님과 나만의 맞대면에서 이뤄내야하는 광야의 끝은 바로 '증언'이랍니다.
    오늘, 송 신부님의 광야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결코 우리가 견딜 수 없는시련을 겪도록 내버려 두는 
    분이 아니심을 믿어야 한다.그분은 우리가 견딜 만큼만 시련을 
    허락하신다.
    
    우리가 겪는 광야의 시련이 초대 교회의 순교 성인들의 시련 만큼 모질다고 생각지는 말자..
    
    하하, 이 말씀이 눈에 쏙 들어오네요...
    제 믿음이 가장 많이 향상된 시기가...
    바로 순교성인에 대하여 공부할 때 였으며,
    지금 또한 그 분들의 삶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힘차게 자라고 있습니다.
    
    요즘은 기도에 대해서 많이 읽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묵상글의 한 줌을 더 붙잡으며 물동이를 마치겠습니다.
    
    삶 전체를 하느님 손안에 놓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기도가 아니겠는가.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드리는 9일 기도 ▒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당신을 우리의 어머니로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신뢰와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부릅니다.
    
    온갖 아쉬움과 위험과 고통 중에 드리는 자녀들의 청원을 거절하지 않으시는 어머님,
    이제 당신의 유래 깊은 성화 앞에서 9일기도로 청하는 이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시어, 당신의 힘있는 전구를 깊이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자신의 기도제목을 말씀드립니다)
     
    자애로우신 어머니!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우리가 
    가진 바 모든 것을 서로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 안에 실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상이 우리 안에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구원의 힘을 얻는 참된 지식을 가지게 해 주시며,
    믿는 자들의 마음 안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생활이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
    
    윗 기도문은 남양성지에서 출간된 
    '특별한 은총을 위한 기도문'에서 발췌한 기도문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화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눠서 말씀드리며, 성화에 대한 설명도 덧붙이겠습니다.
     
    ▒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화에 관한 이야기 - (6) ▒
    
    한국 땅 평양에도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이 전파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으로 파견되는 선교사들의 동반자이신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은 1923년 한국 평양으로 진출한 미국 메리놀 외방 선교사들과 함께 이땅에 오셨습니다. 1932년 당시 평양 교구장이었던 메리놀회 목 요안 신부는 선교 수녀회로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를 창립하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을 주보로 정해 주었습니다.
    
    ▒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화 ▒
    
    mph5.gif
    예수의 발
    예수는 어머니께 기대어 그 손에 매달리며 계속 십자가를 응시한다. 수난 도구의 무시무시한 광경에 그는 왼발을 오른발 위로 포개고, 이 갑작스런 움직임으로 오른발 샌들이 헐거워져 늘어졌다. 아이가 오른발을 약간 들고 있어서 발바닥이 보인다. 몸의 움찔함과 샌들의 헐거워짐은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미적 표현이다.
    
    ▒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드리는 9일기도 (일곱째 날) ▒
    
    시작 기도
    어머니,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저희에게 영원한 도움을 주시는 어머니,
    이 성화 안에 계신 당신을 바라보면서 당신에게서 영감을 받은 한 화가가 당신의 그림을 그리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거룩한 상징들, 소중한 가르침 그리고 신비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것들에 대해서 더 알고자 할 뿐 아니라, 놀라우신 스승이신 당신께서 당신의 아드님과 사랑이신 아버지이시며 어머니이신 우리의 하느님 에 대해서 가르쳐주시고자 하는 것도 알고자 합니다.
    어머니,
    저희를 도와주시어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게 해주소서.
    저희 정신과 마음을 일깨워 주시어 믿음, 희망 그리고 사랑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당신의 영원한 도움에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하소서.
    (성모송)
    일곱째 날 (별[어머니 머리 위]을 묵상하며)
    은혜로우신 어머니의 머리에 있는 별을 봅니다. 이 별은 베들레헴으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던 세 명의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그 별을 생각나게 합니다.
    어머니는 베들레헴의 그 별과 같은 분이십니다. 당신은 저희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고 저희가 그분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 안에서, 미사 안의 기도와 침묵 안에서, 저희 형제 자매들 안에서,
    그리고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 안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당신 아드님의 부활 이후에, 어머니께서는 첫 번째 제자들과 밤새 기도하시며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성령께서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던 성령강림 때에 사도들 가운데 계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교회의 첫 번째 선교단 안에서 새 교회와 함께 계셨습니다.
    성모님, 복음의 별이시여, 당신 아드님을 따르는 이들로서 저희가 해야 할 일을 다하도록 도와주소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의 노력에 축복하여 주소서.

    출 처 : 예수님 성모님 메세지와 영성 카 페 : http://cafe.daum.net/AveMariaJejus 글쓴이 : [십자가의 벗]
    
     
     
    
    소스입니다*^^*
    
    <ul><IMG height=507 alt="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콘"
     src="http://www.cssrkr.com/mother/imgmother/mph.jpg" width=409 borde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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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대림 제3주간 목요일-그리운 내 얼굴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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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루카 7,24­-30]</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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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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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
    리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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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요한의 설교
    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
    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
    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 임숙희 님 (그레고리안대학 신학박사과정 ) -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요한 세례자 안에서 단지 한 예언자가 아니라 무엇
    보다도 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준비한 사람, 광야에서 하느님을 찾은 진정한 
    예언자로 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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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쇄신의 한 방법으로 광야의 정화를 추구하는 것은 유다이즘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모세와 엘리야 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긴 전통이었다. 제2성전 
    시기에 많은 유다인이 꼭 어느 종파에 속하지는 않았어도 인생의 어느 기간 동안 
    광야의 고독을 체험하기 위해, 또는 훌륭한 지도자를 찾아 가정과 가족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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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근처에 숲이 있어 매일 나무 사이로 지는 태양, 바람에 흔들리는 옥수수밭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산과 숲이 있는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나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항상 숲을 동경해 왔다. 뮌스터에서 두 
    달 머물 때 기숙사 근처에 숲이 있어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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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작은 숲 입구에는 조그만 나무 간판 위에 ‘이곳은 침묵을 지키는 곳입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고장에서, 해질녘 숲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사실 처음에는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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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걸음을 멈추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숲속 깊이 들어갔고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들 사이로 신비로운 경외감을 
    느끼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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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도 숲속에서 가끔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지나가는 노인들, 젊은이
    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절실하게 기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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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전체를 하느님 손안에 놓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기도가 아니겠는가. 어떤 
    의미에서 일몰은 끝자락이 아니라 하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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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자신의 영혼에 귀기울이기 위해, 내면에 울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것을 
    몸으로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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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 나름의 광야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나의 고유한 얼굴, 내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리운 
    내 얼굴과 내 창조주,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다시 발견하고 ‘증언’
    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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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src="http://www16.plala.or.jp/puchikan/sozai/illust/xmas/kristmasanime9.gif">
    <b>앗!...나의 생활나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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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이곳은 내일 모레 금요일에 눈이 아주 많이 온다고 합니다. 주말마다 엄니를
    모시고 엄니네 아파트에 가서 한국식 목욕을 하는데, 한 주를 건너뛰면 하하,
    울엄니의 왕짜증이 시작될 것 같아서, 
    <br>
    사실, 엄니가 기분이 아니 좋으시면..저도 야곱이 써내려가기가 힘드니 길이
    좋을 때에 얼른 모시고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물동이를 날라야 되는 시간이 부족하기에, 지루하지 않도록 음악이 메들리로 
    나오는 곡을 골라서, 바오로 딸에서 출간된 송봉모 신부님의 
    <b><big> 『광야에 선 인간』</b></big>에 나오는 맺는 말을 옮겨봅니다.
    <br>
    광야의 이야기만 나오면 저는 할 이야기가 많아지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광야를 많이 돌아다녀봤기 때문이겠지요.^ ^ 오늘은 송신부님의 '광야'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신부님께서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을 너무나도 잘 
    정리해놓으셨으니까요.*^^*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지금까지 우리는 <b>첫째,</b> 광야는 우리 최종 목적지로 가는 한 과정이요,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장소라는 것, 영원한 바람소리를 내는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연적
    인 과정이라는 것을 보았다.
    <br>
    이 과정은 단순히 공간적. 시간적인과정이 아니다. 그것으 존재 자체가 변화를 겪
    는 과정이다. 야곱의 후손이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로 새롭게 태어나고,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 자유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br>
    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한때 안주했던 과거 세계, 옛 인습과 옛 자아의 세계를 
    부숴버리게 된다.노예살이를 하는 동안 우리는 몸에 붙어 있던 과거 이집트의 잔재
    들을 떼어내고,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생관을 갖게 된다.
    <br>
    <b>둘째,</b> 거대하게 펼쳐진 광야,가도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광야길은 생의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자리임을 보았다.아득한 지평선을 보면서 숨이 막힐 때, 앞길을 막고 있
    는 거대한 바위산 앞에서 두 다리의 힘이 빠져 나감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 생의
    가장 중요한 분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br>
    생의 조건이 철저히 결여된 고통스런 광야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광야는 하느님을 우리 생의 우선 순위로 선택하게 만드는 장소이다.
    <br>
    <b>셋째,</b> 광야는 두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것을 보았다. 광야는 한편에서는 고통과
    아픔의 얼굴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에선느 하느님 돌보심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이
    다.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 상황에서 우리가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 하느님 돌보심 때문이다. 
    <br>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은 목숨이 질겨서 살아간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하느님 돌보심 때문이다.
    <br>
    <b>넷째,</b> 두 얼굴을 보이는 광야에서 우리가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보면 하느님께 반항
    하게 되지만 돌보심의 얼굴을 바라보면 인내와 힘을 얻게 된다.
    <br>
    <b>다섯째,</b> 우리가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보면 유혹을 받게 되어 끝내 파멸하게
    되지만 돌보심의 얼굴을 보면 시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람으로 단련되고 정화된다.
    그러니 광야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더라도 받아 안아야 할 것이다.
    <br>
    끝으로 우리 각자가 대면하고 있는 광야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 해방에 이르기 위해
    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다.
    <br>
    <b>(1)</b> 광야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이 신앙의 학교에 들어와 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
    야곱의 후손들이 광야에서 자기들의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양성되는
    교육을 받았듯이 우리도 광야에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양성교육을 받는다.
    <br>
    광야에서 겪게 된느 수많은 고통과 시현 그리고 많은 아픔과 눈물은 마치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국어. 산수. 자연 등을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광야가 주는 고통과 시현은 
    한 인간이 자기 발로 서기 위한, 그리고 하늘과 진릴르 섬기기 위한 교육 과정이다.
    <br>
    <b>(2)</b> 광야는 신앙의 학교이다. 이 신앙의 학교에서 우리는 순종하여야 한다. 마치 선생
    님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처럼 하느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야 한다. 나에게 좋은 것만
    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으면서 인내하여야 한다. 나를 양성시키시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순종하고 인내해야 한다.
    <br>
    <b>(3)</b> 그래도 견디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느님은 결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련을 겪도록 내버려 두는 분이 아니심을 믿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가 견딜 만큼만 시
    련을 허락하신다.우리가 겪는 광야의 시련이 초대 교회의 순교 성인들의 시련만큼 모질
    다고 생각지는 말자.광야의 시련 앞에서 우리는 성서인물 유딧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ul>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시험하셨듯이 지금 우리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충성심을 단련하기 위하여 불과 같은 시련을 준 것만큼 혹독하게 
    우리를 다루지는 않으십니다." 
    [유딧8,25-26]
    </ul>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우리에게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 나름의 광야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나의 고유한 얼굴, 내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리운 내 얼굴과 내 창조주,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다시 발견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말이다.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벗 님들~!...
    <br>
    광야의 끝이 어디인줄 아십니까!...
    이렇게 '증언'하게 되는 자리랍니다.
    <br>
    광야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렇게 자신을 홀라당 벗기어서 인터넷 바다 위에 올려놓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적어도 [안나]아지매는 그렇습니다. 광야의 끝. 마흔 아홉의 끝
    에서 그리운 내 얼굴을 찾았습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는 내 영을, 
    내 주님을, 내 아버지 하느님을, 그리고 내 성모님을 찾았습니다.
    <br>
    내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선교사'의 꿈을...중년의 아짐이 되어서야,
    살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게 된 것이지요...*^^*
    <br>
    참.../행복합니다.
    매일매일 바쁘고 정신없는 가운데서도...
    주님의 멍에를 조금이나마 지게되는 것 같아서.../
    그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 ______ ^
    <br>
    주님을 '증언'하는 그 자리는...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가는 길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고해도, 주님이 부르시는 자,
    주님이 가라하시면 가야 됩니다.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가야됩니다.
    <br>
    행복한 앗! '나'이지만...
    행복함 속에...주님과 [안나]만의 눈물,콧물의 시간이 있음이지요.
    마냥 웃음으로 이어진 행복함이 아니라, 뜨거운 눈물의 고백들이..
    수없이 이어지는/주님과 나만의 맞대면에서 이뤄내야하는 광야의
    끝은 바로 '증언'이랍니다.
    <br>
    오늘, 송 신부님의 광야 이야기에서,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하느님은 결코 우리가 견딜 수 없는시련을 겪도록 내버려 두는 
    분이 아니심을 믿어야 한다.그분은 우리가 견딜 만큼만 시련을 
    허락하신다.
    <br>
    우리가 겪는 광야의 시련이 <big>초대 교회의 순교 성인들의 시련</big>
    만큼 모질다고 생각지는 말자..</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하하, 이 말씀이 눈에 쏙 들어오네요...
    제 믿음이 가장 많이 향상된 시기가...
    바로 순교성인에 대하여 공부할 때 였으며,
    지금 또한 그 분들의 삶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힘차게 자라고 있습니다.
    <br>
    요즘은 기도에 대해서 많이 읽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묵상글의 한 줌을 더 붙잡으며 물동이를 마치겠습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b>
    삶 전체를 하느님 손안에 놓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기도가 아니겠는가.</b>
    <ul>
    <IMG height=262 src="http://www.solph.or.kr/02oct/images/mary3.jpg" width=212>
    </ul>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영원한 도움의 성모님》</b>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드리는 9일 기도 ▒ </b>
    <b>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당신을 우리의 어머니로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신뢰와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부릅니다.
    <br>
    온갖 아쉬움과 위험과 고통 중에 드리는 자녀들의 
    청원을 거절하지 않으시는 어머님,
    <br>
    이제 당신의 유래 깊은 성화 앞에서 9일기도로 
    청하는 이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시어,
    당신의 힘있는 전구를 깊이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b>
    <br>
    (자신의 기도제목을 말씀드립니다)
    <br>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자애로우신 어머니!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우리가 
    가진 바 모든 것을 서로 나눔으로써 
    <br>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 안에 실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br>
    그리하여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상이 우리 안에 새롭게 되어, 
    <br>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구원의 힘을 얻는 참된 지식을 가지게 해 주시며, 
    <br>
    믿는 자들의 마음 안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br>
    우리의 생활이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br>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윗 기도문은 남양성지에서 출간된 
    '특별한 은총을 위한 기도문'에서 발췌한 기도문입니다.
    <br>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화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눠서 말씀드리며,
    성화에 대한 설명도 덧붙이겠습니다.
    <br>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화에 관한 이야기 - (6) ▒</b>
    <br>
    <IMG height=200 alt="한국 땅 평양에도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이 전파되었습니다."
     src="http://www.solph.or.kr/mary/images/mary8.jpg" width=162 border=0>
    <br>
    세계 각국으로 파견되는 선교사들의 동반자이신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은 
    1923년 한국 평양으로 진출한 미국 메리놀 외방 선교사들과 함께 이땅에 
    오셨습니다. 1932년 당시 평양 교구장이었던 메리놀회 목 요안 신부는 
    선교 수녀회로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를 창립하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을 주보로 정해 주었습니다.
    <br>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화 ▒</b>
    <br>
    <IMG height=73 alt=mph5.gif
     src="http://www.cssrkr.com/mother/imgmother/mph5.gif" width=118 border=0>
    <br>
    <B>예수의 발</B>
    <br>
    예수는 어머니께 기대어 그 손에 매달리며 계속 십자가를 응시한다. 
    수난 도구의 무시무시한 광경에 그는 왼발을 오른발 위로 포개고, 
    이 갑작스런 움직임으로 오른발 샌들이 헐거워져 늘어졌다. 
    아이가 오른발을 약간 들고 있어서 발바닥이 보인다. 몸의 움찔함과 
    샌들의 헐거워짐은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미적 표현이다. 
    <br>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드리는 9일기도 (일곱째 날) ▒</b>
    <br>
    <b>시작 기도</b>
    <br>
    어머니,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저희에게 영원한 도움을 주시는 어머니, 
    <br>
    이 성화 안에 계신 당신을 바라보면서 
    당신에게서 영감을 받은 한 화가가 당신의 
    그림을 그리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거룩한 상징들, 
    소중한 가르침 그리고 신비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br>
    저는 그것들에 대해서 더 알고자 할 뿐 아니라, 
    놀라우신 스승이신 당신께서 당신의 아드님과 
    사랑이신 아버지이시며 어머니이신 우리의 하느님
    에 대해서 가르쳐주시고자 하는 것도 알고자 합니다. 
    <br>
    어머니, 
    <br>
    저희를 도와주시어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게 해주소서. 
    <br>
    저희 정신과 마음을 일깨워 주시어 
    믿음, 희망 그리고 사랑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당신의 영원한 도움에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하소서.
     <br>
    (성모송) 
    <br>
    <b>일곱째 날 (별[어머니 머리 위]을 묵상하며)   </b>
    <br> 
    은혜로우신 어머니의 머리에 있는 별을 봅니다. 
    이 별은 베들레헴으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던 
    세 명의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그 별을 생각나게 합니다. 
    <br>
    어머니는 베들레헴의 그 별과 같은 분이십니다. 
    당신은 저희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고 
    저희가 그분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br>
    그분의 말씀 안에서, 
    미사 안의 기도와 침묵 안에서, 
    저희 형제 자매들 안에서, 
    <br>
    그리고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 안에서 
    그분을 찾을 수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br>
    당신 아드님의 부활 이후에, 
    어머니께서는 첫 번째 제자들과 밤새 기도하시며 함께 계셨습니다. 
    <br>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성령께서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던 
    성령강림 때에 사도들 가운데 계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교회의 첫 번째 선교단 안에서 새 교회와 함께 계셨습니다. 
    <br>
    성모님, 
    복음의 별이시여, 
    당신 아드님을 따르는 이들로서 저희가 해야 할 일을 다하도록 도와주소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의 노력에 축복하여 주소서. 
    <br> 
    <br>
    출  처 : 예수님 성모님 메세지와 영성 
    카  페 : http://cafe.daum.net/AveMariaJejus
    글쓴이 : [십자가의 벗] 
    <br>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height=70 src="http://cafe210.daum.net/cafeimg-pr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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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FONT> 
    <IMG src="http://youngminene.com.ne.kr/New_Menu/image/brigid_logo.gif" border=0> 
    </ul>
    <EMBED style src=http://tian57.cafe24.com/mux/r_c_layderm_an.as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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