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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끄러운 고백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15 조회수948 추천수5 반대(0) 신고

 

 

                                      부끄러운 고백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 대해 평가를 하십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이러한 극찬 뒤에 그분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이 이중적인 평가를 두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에 대해 한번 묵상하게 됩니다.


그동안 많은 신자분들과 함께 지내오면서, 그리고 특히 고해 성사를 드리면서 저는 사제란 “생노병사”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례, 혼인, 그리고 사회적인 경사, 기쁜 일, 보람된 일 등을 통해 “생”의 기쁨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늙어가면서 더 이상 성당에 오지 못하는 여러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방문하면서 “노”의 수고에 위로와 감사를 드립니다.


육체적인 아픔을 지닌 이들에게 안수를 주고, 영혼의 아픔을 지닌 이들에게 사죄경을 외우면서 “병”에 참여하고, 생물학적인, 그리고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면서 “사”에 참여합니다.

그렇게 사제는 하루에도 수십 번 다양한 신자들의 갖은 희노애락에 함께 합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저는 눈물이 많습니다.

저 자신의 허물, 잘못을 돌아보며 그 죄스러움에 자주 울게 됩니다.

그런데, 어제 판공성사를 드리며 처음으로 저 자신이 아니라, 성사보시는 그 분의 아픔, 하느님께 죄를 짓고 싶지 않은데, 먹고 살기 위해,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그 고백에...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습니다.


‘이 분을 그렇게 치열하게... 그렇게 간절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이것이 뭔가? 이렇게 쉽게, 안일하게 살아도 되는가?’ 라는 생각에 하느님께 죄송했고, 무엇보다도, 그 분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가끔은 하느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 욕망, 인간적인 생각을 하느님의 뜻으로 오해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너무 힘들면, 하느님께 ‘하느님 왜 이리 힘들어야 합니까? 남들은 대충해도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왜?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입니까?’ 라고 말씀하십시오. 떼를 쓰십시오. 형제님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사를 드리던 내내, 그리고 강론을 준비하던 내내, 신학교에서 어느 선배가 한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제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하다 정작 자신의 영혼을 구하지 못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참으로 무심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을 둘러보면 반듯이 넘겨짚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신앙에 맛들일 수 있도록 안내하는 보조자로 있으면서 정작 제 자신의 신앙 문제, 제 자신의 삶의 문제를 성찰하지 않고 지낸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 잘 안내한다고 해도, 제 자신이 그분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위대할지 몰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비참한 인간으로 남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에 앞서서 사람들을 예수님께 안내해 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를 통해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세례를 베풂으로써 그분의 신원이 빛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소리였을 뿐 그는 “복음”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헤로데 앞에서 정의를 외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교 안에 십자가의 신비가 담겨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마 그는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수를 알고 깨달은 다른 사람들보다 하늘나라에서 더 위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안내자일 뿐이지, 그리스도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준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다시 제 얘기로 돌아갑니다.

저도 안내자입니다.

늘 부족하게 하느님 앞에 미안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그런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안내자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입니다.


안내자로서의 역할만 충실히 한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충실히 해야 함을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충실하지 못했음을... 너무 안일하게 하느님의 은총을 다루었고, 제 맘대로만, 욕심대로만 살았음을 고백하며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청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동방박사 세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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