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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무대 위에서의 나의 배역"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17 조회수72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5.12.17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창세49,1-2.8-10 마태1,1-17

                                     



   "하느님의 무대 위에서의 나의 배역(配役)"



아침기도 시, 지혜서의 8장 말씀 중 일부가 좋아 인용합니다.

“지혜는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이 이루시는 일 낱낱이 다 알고 있나이다.
주여, 거룩한 하늘에서 지혜를 보내 주소서.
영광의 옥좌에서 그를 내려 주옵소서.
지혜가 나의 곁에 나와 함께 있게 하시고,
당신 뜻에 맞갖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정작 필요한 것은

산더미 같은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의 선물을 얻기 위해 끊임없는 성서 묵상에 기도입니다.
매일 미사시간,

지혜 자체이신 주님을 모시므로 나날이 지혜로워지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 주신 지혜 있어야

하느님의 뜻은 물론 내 삶의 의미와 목표를 깨닫습니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내 역할이 무엇인지, 즉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됩니다.

오늘 12.17일 성탄 전 8부내 첫 날의 마태오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참 흥미롭습니다.

지루한 족보를 읽으면서 퍼뜩 떠오르는 것은
예수님 탄생까지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인내였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역사의 무대에서 무수히 나타났다 사라져간 사람들이
꼭 무대 위의 배우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 감독은 배후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시고
주인공은 족보 마지막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족보가, 역사의 무대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역사의 시작이자 마침이신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이런 저런 무수한 인물들,
모두 하느님 주신 그만의 고유한 자리와 역할이 있음을 봅니다.

사람 잣대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윤리적으로 함량 미달의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새삼 하느님 잣대와 인간 잣대가 다름을 깨닫게 됩니다.
단 한 가지 공통점은 하느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관심의 초점은 ‘무죄한 의인들’이 아닌 ‘회개하는 죄인들’,
즉 믿음의 사람들임을 봅니다.

여하튼 총감독이신 하느님의 인내와 섬세한 배려가 놀랍습니다.
이런 저런 배역을 최대한 이용하여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각본에는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 도움이 되는 사람들,
이미 하느님의 각본에는 있었던 것입니다.
좋은 역이든 악역이든 하느님의 각본에 따른 배역이며,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역사 무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족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퇴장에 이어 곧 새 배역들이 등장하는 세상 무대입니다.

과연 하느님의 역사 무대에서
나의 배역은 무엇이며 나는 내 배역에 충실하고 있는지요?

우리 요셉수도원 또한 그 배역은 무엇이며
과연 그 배역에 충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참으로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 주신 지혜로 내 자리와 역할을 깨달아야
다른 배역에 대한 욕심 버리고 내 자리와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의 저자,
이런 지혜 있어 유다를 통한 하느님의 축복을 예언하지 않습니까(창세49,10)?

좋으신 주님은 매일 미사를 통해 당신의 지혜를 우리에게 선사하시어
하느님 주신 우리 배역을 잘 알아 그 배역에 충실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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