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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판공을 앞두고 삶을 되돌아보며....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18 조회수878 추천수8 반대(0) 신고

 

 

                      판공을 앞두고 삶을 되돌아보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가 어느 덧 막바지에 이른 대림 4주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대림 시기 동안, 나름대로 예수님의 오심을 잘 준비하였습니다.

외적인 준비로서, 오늘 본당 대청소를 통해서... 그리고 성당 입구에 “축 성탄”을 걸어 놓으면서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주간에 성탄 추리와 구유를 만들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할 것입니다.

이런 외적인 준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준비를 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 안에서 되돌아보는, 성탄 판공성사에 임할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때문에 오늘은 내일 판공성사에 앞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죄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쉽게 죄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자신의 지식에 의해 이것은 대죄! 이것은 소죄! 이것은 죄가 아니다!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죄는 무엇보다도 관계의 단절입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 불안과 불만, 시기, 질투를 불러일으키며 자신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를 단절시켜 버립니다. 상대방의 단점과 허물을 보며 비난하며 질책하게 합니다.

나아가 죄는 하느님과의 일치된 관계를 단절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아닌, 단순하게 반복되는 습관적인 생활로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성체를 모셔도 예수님으로부터 위로와 평화를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그럼, 이 시간에, 그리고 특별한 시기마다 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한 참회를 통한 고백성사를 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단순히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담에 의해 죄를 얻고 태어났기 때문일까요?


우리 교회에서 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을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용서 받아야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여 용서와 치유를 받아야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이웃과 하느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올바로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올바로 회복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복적으로 죄를 짓게 될 뿐만 아니라, 쉽게 죄에 대한 감각이 상실되어 버리는 모습을 종종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양심이 무디어져 버려 분명한 잘못과 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거리낌이나 죄책감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도 다 그렇다’ ‘나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것이 현 시대의 흐름이다.’라며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 시켜 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실상 이것이 더 큰 죄인 것이고, 하느님을 아프게 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중요한 시기마다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와 참회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를 하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천당으로 가는 문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천진난만함이고, 다른 하나는 참회입니다. 보잘것없는 우리가 어떻게 첫째 문이 활짝 열려 있기를 기대하겠습니까? 그러나 두 번째 문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참회의 필요성에 대해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참회는 새로운 마음으로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좋은 치료제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참회를 통한 성사 안에서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나는 항상 너를 사랑한단다.’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항상 내가 나에게로 되돌아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단다.’ 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보다 먼저 고해소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서 참회의 성사에서 우리는 단순히 죄를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부수어진 마음과 깨어진 관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탕자의 비유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을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집을 떠나서 전 재산을 먹고 마시며 노는 일에 모두 탕진하고 한 푼 없는 거지가 되어 돼지를 치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굶어 죽지 못해 돼지가 먹는 여물을 주인 몰래 훔쳐 먹음으로써 주린 배를 채우다가 주인에게 들켜 죽도록 얻어맞고 배고프고 고달픈 생활에 지쳐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잠들지 못하는 그의 눈앞에는 아버지의 집이 나타납니다. 풍족한 음식과 옷이며 인자하신 아버지와 인정 많은 형의 얼굴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결심을 합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가자’하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날마다 동네 입구에 서서 멀리 바라보시며 내 아들이 오늘이나 돌아오나 하고 기다렸던 아버지는 탕자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합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발 앞에 엎드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집을 떠난 후로 불안하여 잠을 못 이루고, 남 몰래 걱정과 눈물로 세월을 보냈던 그 아버지는 한 마디도 나무라지 않고, 내쫓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식의 초라한 모습이 남에게 보이지 않게 자신의 겉옷으로 가리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하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빨리 제일 좋은 옷을 가져오고, 가장 값진 목걸이와 금반지를 내어 오라. 내 자식에게 입히고 단장해야겠다. 그리고 가장 살찐 송아지를 잡아 저녁 잔치를 준비 하여라, 춤추는 사람을 불러 크게 즐기려 한다. 이는 죽었던 내 아들, 잃어버렸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이 지난 뒤에 굉장한 저녁 잔치가 마련되고 방안에는 많은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식탁에는 온갖 맛있는 음식이 먹음직스런 냄새를 풍기고, 향기로운 술 냄새가 코를 더 자극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참으로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더러웠던 자식이 훌륭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버지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탕자는 누구이며, 그 아버지는 또 누구입니까?

아들은 불행한 죄인이요, 아버지는 자애로우신 하느님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가장 큰 죄인이라도 고해 사제 앞에 엎드려 진실한 통회를 하면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방금 이야기한 그 광경이 자신 안에서 실제로 일어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리자인 고해 사제가 그 가련한 사람에게 사죄경을 베풀 때 그에게 큰 은총에 의해 고귀한 의복을 입힙니다.

그리고 좋은 가르침의 말씀이 마디마디 진주가 되고 금 은 보석이 되어 몸치장이 될 것이며, 예수님의 저녁 잔치인 성체 성사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도 가련한 자신의 잘못에 의해 마음 아파하던 죄인이 이제 성찬의 주인공이 되고 아들이 됩니다.

이것은 모두 올바른 고해가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고해는 참으로 용서와 위로의 성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정의의 하느님으로 생각하여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리거나,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겁에 질린 사람이지 회복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죄가 아닌 행위들까지도 다 단죄하면서 세심증에 시달리는 이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죄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무조건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만 고해 성사를 보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 훌륭한 것 같아 보이지만 올바른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그러한 참회와 고백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폭풍우처럼 밀려올 때에는 그러한 결심을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까맣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지금 자신의 아픈 상처를 치유 받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형제자매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가장 쉬운 방법으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요한 23세의 말씀처럼 천진난만함이나 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천진난만함은 이미 글러버린 것 같으니, 우리의 삶에 있어 진정한 성찰과 고백을 통해 하느님께 나를 좀 살려 달라고 청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성탄이라는 기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우리 마음 안에 오래 모시며 생활하도록 합시다.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할 의무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의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지만 늘 하느님의 따스한 시선과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는 죄인, 즉 사랑 받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베들레헴 작은 고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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