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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19 조회수944 추천수5 반대(0) 신고

 

 

                    주님,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만약에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딱하니 나타나면 어떠하시겠습니까?

기쁘기도 하겠지만 무척 놀랄 것입니다.

특히 어떠한 중대한 일이나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을 말씀해 주신다면,

‘왜 하필 저 입니까? 못합니다.’라는 응답을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가브리엘 천사가 즈가리아를 찾아가 요한이 태어날 것을 알려줍니다.

그때, 즈가리아는 “어떻게 제게 그런 일을 믿으라고 말을 합니까?”라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에 천사는 믿지 않았다고 하며 즈가리아에게 조그마한 벌을 내립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즈가리아와 천사의 대화가 내일 복음인 마리아와 천사의 대화와 거의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즈가리아와 같이 천사에게 똑같은 말을 합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러나 천사를 마리아에게 벌을 내리기 보다는 다시금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즈가리아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똑같이 태어날 아기의 사명에 대해 말씀해주시는데,

왜 즈가리아에게는 믿지 않았다며 벌을 내리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요한의 탄생으로 즈가리아 내외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비록 요한이 주님의 일을 하다가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요한의 탄생 그 자체가 즈가리아 내외에게는 기쁨인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이미 임신할 나이가 지났고, 기대하지 않았던 큰 선물을 하느님께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잉태는 기쁨보다는 희생, 고통을 의미합니다.

물론 하느님의 아기를 잉태했다는 기쁨이 있었겠지만,

일생동안 이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먼 훗날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에 묻어야 하는 고통이 포함된 잉태였습니다.

이렇게 엘리사벳의 잉태와 마리아의 잉태는 그 의미가 달랐던 것입니다.

즈가리아 내외에게는 기쁨과 환희의 잉태였지만, 마리아에게는 고통과 한을 담고 있는 잉태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 가브리엘 천사는 기쁜 소식을 전해줌에도 불구하고, 즈가리아가 믿지 못하여 외면해 버리자 질책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사실로 드러난 것은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이해가 아니라, 고백입니다.

믿음은 드러난 사건이 아니라, 이해하기 힘들고 설명하기 힘든 것에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아무리 큰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는 성서 말씀이나, 우리를 사랑한다는 하느님의 말씀도, 그것을 받아 안으려는 노력이, 믿음이 없다면 울리는 종소리와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지만,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무너져도 나의 사랑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하느님의 사랑 고백을 받아 안으려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이고, 결실을 맺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도 많이 부족합니다.

죽을 때까지 부족한 믿음을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 ‘주님 제 믿음이 부족합니다. 저에게 당신을 향한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우리가 지녀야할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니려 하지 않고, 즈가리아처럼 믿지 못하겠다고 하거나, 어떠한 표징을 요구한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 그 아기 누구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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