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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26) 짓고 사는 죄!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20 조회수839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5년12월20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ㅡ이사야7,10-14;루카1,26-38

 

           짓고 사는 죄

                         이순의

 

 

그동안 긴 여행을 하느라고 집중력의 분산으로 떠오르는 일상의 묵상들을 메모지에서 묵상글로 옮겨오지 못했다. 여행 중이라고 해서 주님을 잊거나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현시대의 생활적 구조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뇌를 끄집어 내어 삭히느라고 고통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인간을 얼마만큼 용서하시고, 얼마만큼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깊이의 물음표를 표현해 내느라고 나의 심신이 녹아날 지경이었다. 결실이 인정을 받는다면 향후 몇 년 간은 저작권이 나에게서 소멸되므로 직접 벗님들께 보여드릴 수는 없으나, 결실이 더 우수한 인재에게 주어진다면 졸작이라는 평가를 넘어서서 내가 고행하며 쓴 것이니 벗님들께 돌려드릴 참이다. 그래도 될른지.......

 

 

요 몇 일은 아들의 진로를 놓고 우울하다.

수능성적표는 나왔는데...... 늘 밝혀 온 바이지만 내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렇게 뒷바라지를 해 주지도 못했지만 아들의 성향도 그다지 공부에 얽매어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정신 건강하고, 마음 튼튼하고, 육신이 토실한 채로 맑고 밝고 사랑스럽게 자라 온 아이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아이들의 사고와 시스템적으로 맞지를 않아서 작은 오차도 겪으면서 성장해 왔다. 키우는 어미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만족스러운 성장을 해 온 것이다. 부족한 성적 때문에 사랑스러운 자식으로 부터 안는 행복을 깨뜨리지 않는 그런 엄마!

 

처녀적에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건강한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굉장히 형언할 수 없는 큰 축복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들에게 내가 봉사를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에게 봉사를 해 준 경험들을 안고 결혼을 했다. 그러니 태동에서 부터 축복이었고, 행복이었으며, 은총이였던 것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날들을 혼자 나가서 떠도는 장사꾼인 짝궁이 신혼 때는 밤에만 일하는 시장 상인이었다. 그러니 남의 베란다에 있는 작은 셋방에서 낮에는 짝궁이 자고 나는 쭈구리고 앉아있고, 밤이 되면 짝궁이 나가고 내가 다리를 펴고 잠을 잤다. 그런데 여름 장마가 억수로 깊던 어느 날 밤에 짝궁은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서 폭우를 뚫고 단칸의 작은 방도 둥지라고 찾아든다.

 

당시에 우리는 빌라 집의 베란다 방 신세였으므로 그 깊은 심야에 초인종을 누를 수도 없었고, 더구나 전화가 없었으므로 임산부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 잠이 얼마나 달든지 짝궁의 기척을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문을 내가 열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짝궁이 쪼그리고 앉아서 날을 새야하는 반대적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 밤은 축복의 밤이었다. 취침시간이 같지를 않았으므로 배가 불러왔는데도 짝궁은 아가의 태동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폭우의 밤에 주님께서는 초보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잠을 잤는데 아가는 비 속에 돌아온 아빠를 알아보고 놀았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짝궁의 그 경이로운 표정은 20년이 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날이 밝는지도 모르고 초보 아빠랑 새 아가랑은 신이 났던 모양이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입덧도 없이 열달이 가고 편안했는데 출산은 난산을 하였었다. 자연분만이었지만 난산이었다. 어미의 건강이 워낙에 양호하지를 못해서....... 의사선생님은 수술을 권했지만 남들이 다 자연분만을 하는데 우리아가라고 못할 일이 아니라고 완전히 겁 없는 초보엄마의 고집으로 자연분만을 택한 것이다.

 

오직 아가랑 엄마만의 약속이었다. 그 분만실의 간호사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데....... 그러나 그 약속을 아가도 나도 이루어내고야 말았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그 감동에 만족한다. 그런 난산 속에서도 건강한 육신을 검증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키우면서는 정신이 건강해서 또 행복했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까지도 나에게는 내 아이가 최고로 천재이다. 장애인들을 겪으며 살아 보았으므로 강보에 싸진 아가가 크게 울 줄만 알아도 천재였고, 휴지를 이지라고 발음하던 날에도 천재였고,

 

엄마 친구가 오셔서 함께 밥을 먹는데 아빠부터 세기 시작하더니....... 한 분! 두 분! 세 분! 네 명! 이라고 어른을 높여서 셀 줄 알던 네 살짜리 꼬맹이도 천재였고,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불편하신 분들과 함께 생활해 보았다는 것은 자식을 키우면서 단 한 번이라도 어미가 자식을 향해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온전하기 때문에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의 자식! (그렇다고 해서 온전하지 못한 자식은 우주와 바꿔도 되는 자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혹여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두신 부모님들께 표현에서 오는 결례가 되지않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는 어떠한 삶에도 걸림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되고 싶어하는 군인의 길도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고, 소방관 역시 마찬가지이며, 아빠를 따라서 장사를 한다고 해도 걸릴 것이 없고, 요리사를 제일 부러워하므로 그 또한 아직도 가능한 조건에 놓여있다. 건강하다는 것은 허무한 욕심만 아니라면 세상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어떠한 조건에도 합당하다. 그러므로 내 아이는 천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수능시험 성적이 나오고 보내야할 대학을 고르려고 하니 우주만큼 큰 아들녀석의 가능성이 좁쌀만큼 작아져 버리는! 그래서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덜 모질은 엄마가 되려고 했던 시간들이 송두리째 죄가 되어버리는!

 

더구나 지금의 수능성적은 원점수니 표준 점수니 과목펼 표준편차니....... 나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도 없고, 계산은 더욱 불가능하고....... 그냥 앉아서 눈물만 난다. 다른 엄마들은 별별 정보에! 계산에! 눈치작전까지! 총동원을 한다는데 나는 단 한 가지도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정보지 책을 펼쳐 놓고 보면 도무지 저승의 문자요, 미지의 계산처럼 답답하고 갑갑하고 숨통이 막힐지경이다. 갑자기 천재인 내 아까운 자식을 이지경으로 키운 자책감에 나는 엄마 자격도 없어져버렸다. 나는 엄마 자격도 없다. 자식들을 키워 본 엄마들은 이 애매한 시기에 술 마시고, 이성친구들을 사귀고, 푼돈 번다고 아르바이트 다니면서 일상이 흐트러져버리는 모순이 얼마나 많은데 저런 아들을 걱정하느냐고 야단들이시다.

 

그런데 내 생각은 부모가 자식의 길에 도움이 못 되는 모자리가 되었으니...... 돈이 있어서 남겨 주기를 하겠는가? 공부를 잘 시켜서 좋은 길을 열어 주겠는가? 나는 삶이 힘들 때면 가끔은 이런 짝궁에게 시집을 가서 살으라고 하신 친정 엄마를 원망한 적이 있었다. 더 삶이 힘들 때면 시집 오던 날에 달랑 깍두기 김치에 밥을 주신 시어머니의 공로 탓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아들이 이 엄마를 원망해야할 시기가 온 것이다. 나는 내 자식의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었는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요즘은 울지도 못한다. 울보 엄마가 자식에게 면목이 없어서 울지도 못한다. 역시 짝궁은 곁에 없고 전화만 해서 아들을 어느 학교에 보낼 것이냐고 묻기만 한다. 저러는 짝궁을 보면 엄마인 나도 한탄스럽지만 아빠인 짝궁은 더욱 한탄스럽다.

 

짝궁은 짝궁대로 생각이 없겠는가?! 이 가난을 대물림할까봐서 가장 두려운 사람이 짝궁일 것인데....... 이 시대에는 난다 난다 하는 사람들도 추락하는 시대에 못난 어미에 못난 아비를 둔 자식의 앞 날을 생각하면 울고 싶어도 자식 앞에서 울 수도 없는 어미만큼 짝궁도 아비의 쓰라린 가슴으로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돌아오지 못하는 방황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말은 아들녀석이 회를 좋아하니까 서해안을 가든가 동해안을 가든가 부자간의 여행을 한다더니 전화만 하고 돌아오지를 않는다. 어제 밤에는 즐겨하지도 않는 술에 취하였고, 객지에서 얼어죽지 말고 술을 삼가라고 했더니 여관방이니까 얼어죽지는 않는단다.

 

참! 자식을 낳아서 행복을 받았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인생이라는 굴레를 안겨주는 죄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짓고 사는 죄인 것이다. 지으려고 해서 짓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어미 품을 벗어나 대학생으로 사회인으로 살아갈 아들의 인생을 탄탄하게 가꾸어 주지 못한 죄면스러움에 대하여 하늘을 두고 우러를 수 조차 없다. 저렇게 두꺼운 정보지 책을 봐도 봐도 모르겠으니 어찌한다는 말인가? 아들녀석에게 좀 찬찬히 계산을 해서 알아보자고 해도 시큰둥하고...... 제 앞 날인데 어쩌자는 심산인지? 그렇다고 자격도 없는 엄마가 윽박질러서 될 일도 아니고...... 이래저래 어미는 죄만 짓고 산다.

 

그런데 아들녀석은 엄마의 사진을 위하여 어제 하루 종일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며 컴퓨터 포멧을 해 놓았다. 어디 먼데로 학교를 가야하는지? 나는 묻지도 못한다. 그저 그렇게 어렵고 두꺼운 전국 대학 정보에 관한 책만 들여다 볼 뿐이다. 앞으로 자식의 인생이 어려워서 힘들어 할 때 나는 아들에게 줄 것이 너무나 없다. 좋은 학벌은 물론, 좋은 인맥도 없고, 더구나 실질적인 구제품인 돈도 없으니 자식을 낳았으되 죄만 짓는 엄마가 되었다. 나처럼 내 자식이 엄마를 원망할 때는 묵묵히 들어 줄 준비를 해 둬야겠다. 다행히 나에게는 다른 자식이 없으므로 아들의 몫을 뺏어다가 다른 자식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만으로도 은혜를 삼으며 짓고 사는 죄에 대한 원망을 들을 준비를 해야겠다.

 

늙어간다는 것은 원망을 들을 준비를 하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도 철없는 아들녀석은 아직도 <엄마 사랑해~~!>하며 그 큰 덩치를 엄마의 가슴에 맞긴다. 세월은 무상한 것! 그래도 나는 원망을 들을 준비를 하고있다. 그것이 짓고 사는 행복이라면 기꺼이 달게 받을 것이다.

 

ㅡ"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1,3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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