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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27) 새벽 안심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22 조회수80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12월21일 대림 제4주간 수요일 성 베드로 가니시오 사제 학자 기념 허용 ㅡ아가2,8-14;루카1,39-45ㅡ

 

       새벽 안심

                  이순의

 

 

 

엄마도 아빠도 아직 해외여행 경험이 없다. 그런데 자식이 시대를 잘 만나서 수학여행을 해외로 가게 되었다. 여행용 가방도 없고, 변변한 자켓도 없고, 해외 여행을 보내려니 왜 그렇게 없는 것도 많은지? 아빠가 입으시던 검정 반코트가 유행이 지나서 어깨가 항아리만한데 그게 그런지도 모르고 엄마의 묵비권하에 교복 위에다 잘도 입고 다녔고, 중학생인 자식이 걸리버 만큼 클 줄 알고 길거리에서 엄청 큰 로~~ㅇ 코트를 사다 주었는데 크다는 불평 한 번 안하고 잘 입고 다녔다. 그런데 명색이 졸업반인데 자켓은 변변해야 되지를 않겠는가?! 초딩 6학년 때 얼마나 큰 잠바를 사 주었는지 여직껏 입고 다녔으니.......

 

남의 자식들은 아빠 옷도 잘 입고 다닌다는데 우리 아들은 양말을 제외한 아빠 옷은 아직 침범하지 않는다. 팬티도 아빠 것과 아들 것은 구분지어져 있고, 유행이 지났다고 해서  아빠의 새 잠바를 걸치고 나가는 경우는 요즘들어서야 가끔 있는 일일 뿐이다. 솔직히 아들녀석은 유행이 지나서 아빠 옷을 물려준 지를 아직 모르고 있다. 비싼 옷(?)을 잊어버릴까봐 황송해 하면서 입는다. 학생이니까 교복 위에 입는 반코트가 검정색이면 되었지 뭘 얼마나 다른 옷을 입을 수 있겠는가?! 그럭저럭 있는 옷도 입고, 남들이 주는 옷도 입으며, 춥지 않고 따숩게도 잘 자라주었는데, 막상 해외여행을 보내려고 하니 제 놈도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가방도 사고 자켓도 사고.....

 

그런데 가방도 첫 가게에서 첫 물건을 고르더니, 자켓도 첫 가게에서 처음 본 옷을 골라잡는다. 엄마는 여자이고 아들은 남자라서 충돌이 일어났다. 엄마는 좀 더 둘러보자는 것이고, 아들은 지난 번에 사달라고 할 때 안 사줘서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옷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조카들을 보면? 딸들은 지처서 다리가 꼬부라질 만큼 둘러 본다는데 도무지 아들녀석은 귀찮아서 곧 죽는다. 뭐...?! 엄마들에 따르면 아직도 엄마를 대동하여 쇼핑을 한 것으로 영광으로 알으라는 추세이고 보면 고마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엄마니까 또 자식에게 섭섭하지 않을 만큼의 구색을 갖추어서 여장을 꾸려주었다.

 

출발하는 날에 학교 운동장 집결 새벽 5시!

 

집에서 조금 일찍 출발했다. 겨울 새벽이 너무나 추웠으므로 승용차의 히터가 따뜻해져야 하기도 했지만 밤 운전이 익숙하지를 않았으므로 서둘러서 학교에 갔다. 운동장에는 도착한 버스도 있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버스도 있었다. 학생들은 기척도 없었고, 모자 간의 둘 만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엄마는 걱정만 있는데 아들녀석은 다 자란 망아지처럼 마음이 뜀박질이다. 너무 새벽이라서 밥을 먹이지 못했는데 급하게 꼬마 김밥을 말아서 가져간 밥을 먹으면서도 자식은 뜀박질하는 망아지다. 차차로 남은 버스들이 도착했다. 엄마 혼자서, 아빠 혼자서 또는 엄마랑 아빠랑 나란히 아들들을 배웅하러 오신 승용차들이 추운 새벽공기를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어느 아빠는 차에서 내려 아들과 악수를 했고, 어느 엄마는 운동장으로 진입하여 정차해 있었고, 일찍 도착한 나는 새벽의 풍경들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으며 부모 된다는 것은 위대한 정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아들을 배웅하러 함께 학교에 가자고 짝궁에게 부탁을 했지만 대꾸도 없었던 냉랭한 순간을 떠 올리며 마음 한 구석은 아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혼자 키우는 과부의 아들 같은 외로움이 엄습해 왔다. 추운 날씨에 장갑도 빼 먹고, 아무리 생각해도 용돈도 너무 조금 준 것 같고, 새벽 다섯 시에 가까워지는 시계를 보며 마련한 것 보다 부족한 것만 생각이 났다. 어미인 내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장갑을 가지러 갈 수도 없고, 칠흙 같이 어두운 꼭두의 새벽은 상점도 없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언니 오빠들에게 좀 여쭈어 볼 것을....... 공연히 자식의 수학여행으로 겨우 몇 일 나가면서 외국을 이웃집 드나들 듯이 하시는 분들에게 우수워 보이지나 않을까 하여 여쭙지도 못하고 모자 간에 알아서 대충 결정한 후회를  엄마의 새벽 가슴으로 고스란히 아파야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자식은 씩씩하고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남기고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풍경 좋기로 으뜸인 아들의 학교도 어둠에게는 꼼짝 없이 잡혀버리고, 멀리 버스의 창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아들의 그림자를 쫓아서 보았다. 인원 점검이 있는지 실내는 분주해졌다. 그곳에 남은 부모의 차는 없었다. 그때서야 언덕을 향해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늘 다녀 본 길이었다. 고3 이라서 더 자주 다녀 본 길이었다. 그 산 언덕은 깊고 길었다. 천천히 천천히 내려왔다. 늘 그러하듯이 차를 운전할 때면 드리는 기도를 하면서 아주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그런데 그렇게 어두운 언덕에 희뜩희뜩한 물체가 보였다. 가까이 보니 베이지색 파카를 입은 엄마가 걸어내려 가고 있었다. 살을 파고드는 강 추위에 그 언덕을 걸어서 내려 오는 동안 수 없이 많은 승용차들에게 추월 당하였을 것이다. 순간! <저 모습이 난데!> 새언니가 영심씨(=내 차 이름)를 나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저 모습이 나였다. 자식이 걱정이어서 택시를 타고 운동장에까지 왔다가 택시는 돌아 가고 엄마는 아들이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안심이 되어 그 산언덕을 무서워 하지도 않고 걸어서 내려갈 수 있는 여자 아닌 엄마! 저 엄마가 나인데! <새언니 덕택에 나는 호강도 하는 구나!> 짧은 순간에 그 엄마를 태워서 모셔다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한쪽에서 그러지 말으란다. 그 엄마는 그 추위보다도 강하고, 그 엄마는 그 새벽보다도 환하며, 무엇 보다도 그 엄마의 가슴은 안심이기 때문이다. 그 새벽의 저 외로운 길이 결코 외로운 기억으로 남지 않을 새벽 안심이기 때문이다. 잘 갔는지를 걱정하며 집에 있는 것 보다, 눈으로! 몸으로! 가슴으로! 자식의 길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저 사랑이라는 위대한 안심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혹시 그 엄마의 자존심을 다치게 할까봐 조심스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방식과 나의 환경과 나의 여건이라는 범위 안에서 늘 만족하는 삶을 원했으므로 누군가 과분한 동정을 해 오면 몹시 힘들어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측면 거울로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그 엄마를 두고 내려왔다.

 

여자! 를 생각해 보았다. 저 엄마에게도 남편이 있을 텐데 왜 남편들은 저럴 수 없는가?

엄마! 를 생각해 보았다. 그 아이에게도 아빠가 있을텐데 왜 아빠들은 저럴 수 없는가?

 

집으로 돌아와 차마 먼길 떠나는 아들 앞에서는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짝궁에게 꺼내 놓았다. 당신의 자식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로 여행을 가는데 당신은 따라서 배웅하지는 못 할 망정 이불 속에서 왜 눈도 떠 보지 않았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짝궁은 아들이 나갈 때 잠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새벽 잠을 깨워 준 사람이 짝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들에게 잘 다녀오라는 말도 하지 않고 이불 속에 엎드려 있었으니 아들녀석도 아빠에게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처다만 보고 간 것이다. 그런데 짝궁의 대답은 자식이 커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면서 아빠한테 인사를 하고 가는지 안하고 가는지 지켜 보았는데 제 날로 커서 애비한테 인사도 안하고 갔기 때문에 괴씸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한테 받아 본 사랑이 없다지만 그러지 마라고 울고불고 몸부림을 쳤다. 그 새벽에 학교까지 운전하고 오셔서 차에서 내려 아들에게 악수해 주는 아빠들이 당신보다 못나서, 당신보다 자식에게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어서, 당신보다 못 배워서, 당신보다 돈이 없어서, 당신보다 부족해서, 그러는 줄 아느냐고 울부짖었다. 그렇게 옛날에도 우리 친정 아버지는 도시로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토요일이나 방학에 집에 오면 엄마 몰래 용돈 꿈쳐 주시느라고 바쁘셨다고, 당신도 아빠니까 얼마의 용돈이라도 엄마몰래 좀 쥐어주고, 추운 새벽에 좀 안아주면 안되느냐고, 어떻게 자식에게 배웅도 하지 않고 눈 감은 아빠가 자식이 인사하고 가기를 바라느냐고, 당신 어머니가 큰 자식을 혼인 시키면서 국 한 그릇도 끓이지 않고 깍두기 김치에다 밥 준 내력을 그대로 밟아서 할 참이냐고,

 

얼마나 얼마나 울었었다.

 

그때서야 짝궁은 미안하다고, 생각을 잘 못했다고, 사과를 했지만 이미 자식은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산 언덕을 홀로 내려오는 여자가 아닌 엄마는 그 강한 찬 바람보다도 힘이 셌지만 그 아빠가 출장중이거나 다른 용무가 아닌 내 짝궁처럼 집에 있으면서 차도 없는 아내를 새벽 속으로......? 자식을 먼데 보내놓고 얼마나 얼마나 짝궁에게 이르고 이르고 또 일렀다. 부모가 백 가지를 해 주고도 자식은 한 가지도 안해도 되는 것이라고. 자식이 한 가지 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기특하고 대견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아들이 돌아오면 당신이 아빠니까 아빠가 먼저 효자를 해야 자식이 배운다고....... 그런데 아들이 돌아왔을 때 짝궁은 집에 없었다. 지방에 가고 없었다. 그리고 병원 예약이 잡혀있어서 병원에 가려고 열흘만에 돌아왔다. 그러니 3박4일 동안 집을 비운 자식이 해외여행을 간 것인지, 9박 10일동안 집을 비운 아빠가 해외여행을 간 것인지 헷갈려버리는!

 

또 가족이니까 만났으니 반갑고 좋고 행복한!!

 

그 새벽 어둠의 그 엄마가 산 언덕을 내려 온 이유도, 내가 짝궁에게 새벽부터 울고불고 소란을 피운 이유도, 여자이기보다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그렇게 작은 자신을 녹여 세상에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ㅡ"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루카1,4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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