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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시금 부르게 된 각설이 타령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26 조회수733 추천수7 반대(0) 신고

 

 

                                다시금 부르게 된 각설이 타령

 

 

                
 

 

 

 

주님의 성탄 8부 축제를 경축하는 오늘, 우리는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을 함께 기념합니다.

스테파노 순교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처음으로 순교한 분으로서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주님의 성탄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복음 말씀처럼 어떻게 드러내고, 어떻게 전해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어제, 본당 중고등부 성가대와 청년들이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위해 성 이시돌 양로원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출발하기까지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는 1시 30분까지 가겠다는 약속을 드렸는데, 1시가 넘어서 출발하게 되어 늦장 부리는 청년들이 솔직히 너무 미웠습니다.


부랴부랴 과속을 하며 이시돌 양로원에 도착해 보니, 약속 시간은 10분 이상 넘어 버렸고, 어르신들께서는 강당에 모여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광양성당에 이찬홍 야고보 신붑니다. 성탄 축하드립니다.’고 인사를 드리는데, 무표정한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시는 모습이 꼭 늦게 도착한 것을 꾸짖는 것 같아 더욱 미안했습니다.


사실, 양로원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성탄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하는 것이 어르신들을 억지로 모이게 하는 불편함을 드리는 것은 아닌지?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겠다고 하면서도, 그저 단순히 공연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았었는데, 늦어 버려 더욱더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학생들 역시 저와 생각이 같아서 그런지, 조금은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준비한 성가를 불렀습니다.

예상대로 호응하는 것은, 봉사자와 간호사들, 그리고 함께 간 청년들뿐이었고, 어르신들께서는 아무런 느낌, 표정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길을 헤매다 늦게 도착한 노홍철을 뺨치는 교리 교사가 사회는 보며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는 어느덧, 따스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변해갔습니다.

이상하게도 불편하고, ‘성당에 돌아가믄 다 죽었어!’ 라며 짜증이 났던 저의 마음도 어느 덧, 주님 성탄을 함께 기뻐하고, 나누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학생들과 청년들이 어르신들 사이에 함께 하며 이제는 정말 ‘친해졌구나. 그 어떤 농담, 장난을 해도 이상하지 않겠구나...’는 생각이 들쯤에 약속했던 시간이 서서히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작별인사를 드리려는 순간, 한 할머니께서 ‘너무 고마워서 우리도 그 값으로 노래를 불러야겠습니다. 할머니들 앞으로 나옵써! 그냥 보내믄 안됩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아리랑을 부르며 흥겹게 노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그 어떤 꾸밈이 없는 순수한 모습이었습니다.


‘찾아가서 어떻게 말할까? 성탄 축하를 드리는 것이 광양 성당을... 중고등부를 티내는 것이 되어 버리면 안 되는데.. 그저 자연스럽고 편하게 갔다가 그렇게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라며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찾아간 우리를 위해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깨  춤을 추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의 걱정은 속 좁은 저만의 우려였고, 진정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어르신들의 그런 모습이 너무 고맙고, 몸 둘 바를 몰라서, ‘앞으로는 부르지 마라’는 신학교 추천 신부님의 명을 어기고 10여년 만에 다시, 모슬포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고마운 마음의 표현을 했습니다.


청년들과 학생들 앞이라 조금은 창피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하고 즐거움 속에 다시 부른 각설이 타령이었습니다.

(물론, 10년 전 만큼 감칠 맛 나는 그런 흥은 나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흥을 잃어가는 것 같아 슬프네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강론을 준비하기 위해 복음을 묵상하는데,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때에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다른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전하고, 주님 성탄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것은, 비록, 박해와 같은 그런 극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정말이지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해준 그런 양로원 방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양로원 방문 동한 늘 함께 해 주시며,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흥겹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꾸어 주고, 순간순간 필요한 말, 행동을 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바라보며 ‘본당에 가믄 죽었어!’ 라는 쪼잖한 생각도 주님께서 가져가 버렸습니다.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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