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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저희는 성령의 힘으로 살아갑니다(두 번째)
작성자장기항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27 조회수636 추천수1 반대(0) 신고

                                                           -- 김상배 베다

피정 59 일 (2000. 5. 2 화요일)

 

온 몸이 성령으로 가득하도록 기도함이 무엇보다도 먼저이다.

혼자일 때는 주님과 대화하고

더불어 있을 때에는 내게 가득한 성령이

더불어 있는 사람들에게 담뿍 채워지도록 하는

봉사를 먼저 하여야 한다.

 

가족은 바닥 밑에서부터 중요하다.

사랑덩어리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은 존재를 만들어낸다.

더욱 깊은 사랑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인간은 때로는 너무 당연한 일을 등한시 한다.

우주의 덩어리가 사랑이듯이

그 닮은 꼴 중 닮은 꼴이 가족이라

사랑으로 똘똘 뭉친 그 천국의 모습이 가족이다.

 

영원을 동경하는 우리는 태초의 질서를 그리워 한다.

그 태초의 질서를 잊지않고 수 백 천겁을

살아가기 때문에 기억하고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태초의 질서로 돌아가려는 행동을 정진이라고 하고

그 힘은 영혼 속에서 초봄 푸릇한 순처럼

성령으로 자라난다.

 

 태초의 질서는 사랑이라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빅뱅 이후 지금은 희미하게 옅어진 _ 그래서 성령이라고 부르는 _

사랑이 빽빽히 뭉쳐 있었다.

그가 신이다.

신은 어마어마한 사랑의 덩어리이다.

그 곳을 기억하는 우리가 돌아가려는 것은 당연하고

그 곳으로 돌아가고자 긴 정진을 다하는 것이

 신의 증거이다.

 

신의 부분이자 부품인, 조각이자 축소판인 우리가

 영혼의 食飮(먹고 마심)을 열심히 하여

작지만 단단한 사랑덩어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주인님의 부분이자 부품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이것이 행복이고 평화이다.

 

태초의 질서에 반대되는 말(현상)이 현세의 무질서이다.

이 현세의 무질서를 우리 현대인의 판단으로 질서라고 예기한다.

기준이 우리(물질과 육체가 판단하는)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가까운 원숭이가 우리를 보면 우리가 ET를 바라보듯 질서의 깨어짐을 느낄 것이다. 소나 말이 우리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새나 물고기가 우리를 바라보면 더욱 혼돈스럽다.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존경스런 눈으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더 나아가 태초의 덩어리가 우리를 보면 두통을 일으킬 정도의 무질서이다.

 

그 태초의 덩어리가 무(無)이다.

사랑과 자비의 덩어리이며 그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무(無)이다.

그 무(無)는 현세의 모든 무질서를 온통 진정시키면 나타나는 에너지 높다란 환희의 사랑이 되고 그것은 가능하다.

태초의 기억이 있고 경험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生老病死의 고해를 땅이라 한다.

그 위에 중생이 있다.

태초의 질서이며 사랑의 덩어리가 뭉쳐있는 천국을 하늘이라 한다.

그 곳에 천국을 다스리는 하느님이 계신다.

땅은 현세의 무질서이며 하늘은 태초의 질서인 것이다.

색즉시공이며 공즉시색이고 시와 공의 앞뒤를 논함이 어리석음이다.

 

우리의 육신은 현세의 무질서에서 더욱 무질서해지는 미래도 달리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영혼은 태고의 질서를 동경하고 그 곳의 침묵을 향해 달리고 있으니, 누가 앞으로 누가 뒤로 가는 것이고 누가 내일을 생각하고 누가 어제로 돌아가는 것이겠는가.

있음의 공간이 헛되고 흐름의 시간이 헛되니 그 무엇도 아닌 무(無)의 존재가 확연하고 구태어 그 헛됨의 중심이 중(中)이다.

그 것이 사랑의 덩어리를 구태어 밝혀 봄이고 중(中) 또한 시작과 끝없음의 중(中)이니 그 중(中)이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중(中)은 무(無)이고, 무(無)는 중(中)이다.

 

피정 69 일 (2000. 5. 12 금요일)

어제 밤에는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깊은 느낌을 받으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우주 저 먼 원점에서 저를 살라버리고

성령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해나가겠습니다.

물질의 세계, 육체의 세계를 떠나

정신의 세계, 영혼의 세계에서 성령의 힘으로

걸어가게 하시옵소서.

저는 주님의 도구이옵니다 .

 

피정 76 일 (2000. 5. 19 금요일)

 

주님!

욕망의 덩어리인 제가 주님께 향하여 뉘우치고 바른 길을 걸어 갈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종이옵기에 주님이 만드셨던 태고의 뭉치에 저 자신을 살라버리고 성령으로 살아 갈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펼쳐나가는 모든 일이 주님의 뜻이며 성령의 힘으로 이끌어 나가는 일입니다.

부디 저의 모든 정신과 영혼이 주님이 보내주시는 성령 이외에는 저 자신의 마음조차도 처리하지 못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피정 77 일 (2000. 5. 20 토요일)

 

낙엽이 지는 이유는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영양소라도 열매에게 돌려주기 위함이다.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내가 낙엽되지 아니하고 욕망과 욕정을 금치 않는다면 열매가 맺어지지 않으며 후손도 없으며내가 늙어 없어지면 그 것으로 끝이 난다.

많은 후배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펼쳐나갈 사업에 열중하련다.

거기에서 얻어지는 모든 영양소는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뜻에 따라 주님의 열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후배가 그 열매를 먹고 씨앗을 만들어 낼 일이다.

그래서 성령의 삶은 연속되는 것이다.

 

피정 85 일 (2000. 5. 28 일요일)

 

하느님 앞에서 나 자신이 모두 비어진 깨끗한 성령의 그릇을 느꼈다. 그 안에 3 년 반 전에 나를 찾아오셔 탄생하신 예수님(아기예수)이 커가심을 느낀다. 내 안의 그릇은 성령의 그릇이고 사랑의 그릇이다.

그 안에 사랑을 가득 담는다.

그 곳에 나는 없다.

사랑이 가득 채워져야 하는데 아직 다 차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랑을 배푸시는 아기예수가 숨쉬고 있다.

역시 나는 없다.

Spiritual Big Bang

그 곳에 내가 타고 있다. 불타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평화로움을 만끽하는 행복을 갖는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성체를 모시고 사랑을 받아 모시며 모든 이를 사랑하는 영육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은 큰 사랑이시고

저는 성령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명상의 순서를 새롭게 세운다.

하나,  내 안에 내가 있는지 확인한다.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하느님께로 남김없이 보낸

                다. 

         Total Surrender/Detachment.

          내 안에 내가 없음을 확인한다.

          주의 기도 30 번 (45 분 - 1시간)

둘,     큰 사랑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

         비워진 성령의 그릇 안에 가득 담는다.

         주의 기도 30 번 ( 45 분 - 1 시간)

셋,     이웃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봉사의 방법

         을 명상한다. 

         주의 기도 30 번 ( 45 분 - 1 시간)

 

피정 89 일 (2000. 6. 1 목요일)

 

겸손에 대하여 묵상하였다.

겸손은 모든 영혼의 부활을 기원하는 마음이다.

누구든지 영혼의 성숙을 향하여 백천 겁의 고행을 지낸다.

그 영혼이 내 밑에 있지 아니하고 위에 있지 않으니 우리는 모두 동반자인 것이다.

내가 먼저 난 것도 아니며 네가 먼저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함께 가는 수도행의 먼 길에서 어서 빨리 성불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남을 위하는 것이 겸손이다.

겸손한 마음은 그들에게 웃는다.

밝게 화를 낼 이유도 없고 짜증 낼 이유도 없다.

이런 恒常心이 계속되어야 한다.

손 아래 사람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생명이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도

항상 웃으며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그 것이 겸손이다.

그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다.

그리고 진리이다.

 

하느님 아버지!

어찌하면 많은 사람들이, 더 나아가 모든 생명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껏 들이마시며 서로를 사랑하는 이웃이 되겠습니까?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아니며, 손발로 일구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다가가는 성령만이 그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고 위로하고 부활의 기쁨을 나눌 수 있지요.

조용히 침묵하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기다리나이다.

겸손되이 생활하며 깨어 있는 성령으로 당신의 사업을 퍼뜨리겠나이다.

부족하여 당장 풀어나가지 못하며 모자라서 서두르지 못하나이다.

아버지께서 그 지혜를 주시는 날까지 조용히 순종하며 기다리나이다.

빛이시며 사랑이신 아버지,

당신은 나에게 임하소서.

묵묵히 순응하며 성령으로 살아가는 이 종, 이 아들을 받아주소서.

아버지, 찬미하나이다.

십자가의 길이기에 피눈물을 흘리겠지만 아버지의 뜻이기에 따르겠나이다.

아멘.

 

천천히 하여라.

주님의 뜻이 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마주하는 사람이 성불하기를 기도해야 하고, 너는 지혜가 모자라는 어린 마음이지 않느냐?

그러니 기다려라.

누가 무어라 할 것임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올바른 너의 사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가르침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라.

침묵 속에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고 기다려라.

그러나 항상 깨어 있어라.

 

아버지,

사랑을 나누는 사업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성령되게 하여 많은 생명이 함께 나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왜? 는 묻지 않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도? 도 묻지 않겠습니다.

그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지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 길이 비겁하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뜻이라면 나아가겠습니다.

지혜를 주시옵소서.

사랑을 주시어 넘치게 하시옵소서.

아멘.

 

하느님은 네가 사랑을 베풀 능력이 충분해 질 때까지 충분한 사랑을 주시지 않는다.

주어서 나쁜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너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먼저임을 깨달아라.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선 청빈하여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 갈 수 있는 사람은 금단추에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격이 없다.

청빈을 실천하지 않는데 어찌 사랑을 나눌 수 있겠는가? 어찌 너를 낮출 수 있겠는가?

겸손하지 아니한데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헛된 외침을 떠들 것인가?

청빈하고 겸손한 하루하루의 생활이 너로 하여금 사랑을 나누는 하느님의 사업에 동참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것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겸손과 청빈으로 생활하며 하느님 아버지의 지혜가 다가 올 때까지 침묵하여라.

그리고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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