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9일 야곱이-제 아들은 제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봉헌 준비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29 조회수768 추천수6 반대(0) 신고
 
성탄 팔일축제 내 제5일 - 제 아들은 제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루카 2,22-­35]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 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 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 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 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김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 - 
 
◆”제 아들은 제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 말은 초등학생 자폐아를 둔 
어느 어머니의 말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얼마 동안은 그 사실
을 모르다가 나중에야 자폐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아들을 잘 키워야겠 다는 마음으로 어려움을 마다않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생각 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때때로 깊은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도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노력을 계속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어머니는 오히려 아들을 통해 삶을 배우고 인생을 알게 됐다고 할 정도로 예전의 시각과는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아들은 이제 마음의 그늘이 아니라 삶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선물은 참으로 많습니다. 다만 우리가 삶의 축복과 선물을 감사하는 마음 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하찮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더욱이 조금 이라도 고통이 따르게 되면 그것을 선물로 여기기는커녕 생각조차 하기 꺼려합니다.
그러나 세상엔 고통이 따르지 않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마치 삶과 죽음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이듯이 말입 니다.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던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 안에서 사랑(구원)과 고통, 생명(아기)과 죽음(십자가)을 동시에 봅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성취뿐만이 아니라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픈 고난까지도 함께 읽은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시므온의 심안을 꼭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적지 않은 본당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상을 부활하신 예수님상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어둡고 우울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이미지가 신자들이 누려야 할 부활의 기쁨을 감소시킨다는 이유에서 지요.
그러나 사람들이 부활의 영광과 기쁨의 원천이 바로 십자가로부터였다는 것을 영영 보지 못할까 봐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세상의 모든 자폐아동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세상의 모든 자폐아동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세상의 모든 자폐아동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고통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상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되기를...두 손을 모읍니다...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나, 
그분께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나, 
그분께 가까이 가기 위하여나, 
그분께 무엇을 드리기 위하여나,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자기를 바치기 위하여나 항상 성모님을 중개자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봉헌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의 손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명백하게 봉헌하고 우리 선행의 모든 가치를 바치게 된다"

즉 이 33일간의 정화과정을 거쳐 "악을 끊어버립니다. 죄를 끊어버립니다, 
허례허식을 끊어버립니다"라는 순수한 자유의지에 의한 고백으로 

세속과 마귀와 육식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세례성사를 갱신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세례 때 받았던 아름다운 품위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중에서 -

오늘 물동이는 많이 늦어졌습니다...ㅠ.ㅠ

 


가시에 찔리신 성모 성심...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봉헌의 의미와 그 중요성 ■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봉헌(奉獻)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성당이나 집을 새로 지어 바치거나 미사 성제 때 빵을 포도주를 
바치는 경우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이 자신의 맏아들을 하느님의 
것으로 바쳤듯이 사람을 바치는 등 자신의 자유의지로 사람이나 
물건, 장소 등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바치는 행위를 "봉헌"이라 
일컫는다. 

즉 봉헌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것 으로 인정하는 행위인데 이때 봉헌의 대상,즉 봉헌을 받는 이는 하느님이시다. 봉헌의 대상은 오로지 하느님뿐이며 하느님만이 우리의 전적인 봉헌을 받으실 권한을 갖고 계신다.
하느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봉헌은 바로 이 진리를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다시 돌려드리며 그분께로 돌아가는 행위이다.
하느님께의 완전한 종속을 인정하고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섬기는 일이다. 따라서 봉헌은 자연적이고 세속적인 용도가 아닌 하느님을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하느님께 봉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봉헌의 본질은 봉헌하는 이와 봉헌을 받는 이와의 인격적인 만남에 있다.봉헌하는 이는 그 행위로써 자신을 온전히 열어보이고 순종을 약속하고 봉헌을 받는 이의 소유가 됨을 인정하는 것이 되며, 봉헌 을 받는 이는 바쳐진 봉헌물을 들어올려 자신의 소유세계로, 거룩 함의 세계로 수용함으로써 그것을 거룩하게 한다.
따라서 봉헌은 거룩함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하느님의 영역에 로 들어올려 지는 것이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도약이다. 즉 하느님께 봉헌됨으로써 그것은 성화(聖化)된다.
구약의 이스라엘인들의 삶은 바로 이 봉헌의 삶이었다. 그들은 곡식 이나 양, 염소,비둘기 등 동물을 제물로 바쳐 죄를 씻고 성화되고자 했으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느님께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 곤 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하느님께 바치고(느헤12, 27-43),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 사무엘의 한평생을 하느님께 맡겨 드렸다(1사무 1, 21-28).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하셨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19).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전 존재로써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봉헌의 의미를 가장 충만히 채우셨고 그리하여 봉헌의 완전한 모범이 되셨다.
성모님 또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루가 1, 38)라고 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헌신하는 데 주저함 없이 자신을 봉헌하셨다. 이 봉헌으로 말미암아 성모님은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한 궁전이 되셨다.
봉헌의 대상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그럼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과연 타당한가?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천상 여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우주적 권능에 신비적으로 참여하고 계시며 그 영역에는 모든 인간들도 포함 한다.따라서 우리는 그분께 봉헌할 수 있으며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더욱 큰 성화를 가져오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타당하다.
그리고 이 봉헌은 그리스도께 봉헌과 중복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은 구별되는 두 줄기를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개하는 여인이 중개자와 병립되는 것이 아니고 성모님의 중개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며 그러므로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 은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최상의 방법이 되는데 이것은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1673-1716)이 말하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다.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뛰어난 주형이며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을 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성모님의 손을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가장 완전하고 안전하며 빠른 길이라고 루도비코 성인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완덕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봉헌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심 중에서 가장 완전한 신심은 그리스도를 완전 히 따르며,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자신을 봉헌하는 신심이다.
그런데 모든 조물 가운데 마리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셨다. 따라서 모든 신심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예수님께 가장 잘 봉헌하게 하고 친밀하게 일치시키는 신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이신 마리아께 대한 온전한 신심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봉헌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께도 봉헌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마리아께 전적으로 봉헌하는 것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가르치려는 신심으로서, 바꾸어 말하면 세례 때에 발한 서약과 맹세를 갱신하는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20항>
그는 자신의 저서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성모님께 바쳐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되는 것이 바로 성모님께 대한 완전한 참된 신심이라고 귀결지으면서,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성모님께 봉헌하고 성모님께 종속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는 또한 우리가 하느님께 마땅히 바쳐야 할 감사와 존경을 비롯하여 하느님 으로부터 받는 모든 은총 역시도 성모님을 통해서 받는 것은 하느님께서 기뻐 하시는 일이라고까지 말한다.
루도비코 성인에 따르면 이는 바로 성삼위 하느님의 표양을 따르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성부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만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또 계속해서 보내고 계시며, 성자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인간으로 탄생하셨고, 성령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고 그 신비체의 지체를 만들며 은총을 나누어주시기"<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40항> 때문이다.
성 삼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시고 은총을 나누어주시는데 있어 동정녀 마리아를 거쳐 오신다면 우리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 나아가고 은총을 청하는 데 있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나, 그분께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나, 그분께 가까이 가기 위하여나, 그분께 무엇을 드리기 위하여나, 그분과 일치 하고 그분께 자기를 바치기 위하여나 항상 성모님을 중개자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43항>

한편 봉헌은 세례성사의 갱신이다.
"나는 이 신심이 세례 때 한 약속의 완전한 갱신을 뜻한다는 것을 이미 말했 었다.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세례 전에는 악마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악마 의 노예였다.
그러나 영세 때에 자기 입으로 혹은 대부 대모의 입으로 마귀와 마귀의 행실과 유혹을 끊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인 또는 최고의 주권자로 삼아 자신을 사랑의 종으로서 완전히 바칠 것을 하느님께 엄숙하게 맹세하였다.
마리아께 드리는 완전한 봉헌을 통하여서도 그와 같은 것을 우리는 행한다. 봉헌 기도문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마귀와 세속과 죄악과 자기 자신을 끊어 버리고 우리 자신을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이다.
아니 이 신심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을 때에는 다른 사람, 즉 대부 대모의 입을 통해서 말을 하고 그래서 대리인에 의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게 되나 이 완전한 봉헌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또 명백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 때에는 적어도 명백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치지 않고 자기 선행의 모든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께 전부 바치지 않으므 로 세례 후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이를 적용하거나 자신을 위하여 보존 할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봉헌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의 손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명백하게 봉헌하고 우리 선행의 모든 가치를 바치게 된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26항>

즉 이 33일간의 정화과정을 거쳐 "악을 끊어버립니다. 죄를 끊어버립니다, 허례허식을 끊어버립니다"라는 순수한 자유의지에 의한 고백으로 세속과 마귀와 육식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세례성사를 갱신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세례 때 받았던 아름다운 품위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소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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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성탄 팔일축제 내 제5일 - 제 아들은 제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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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루카 2,22-­35]</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br>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br>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
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br>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
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br>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
에게는 영광입니다.” 
<br>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
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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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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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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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들은 제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 말은 초등학생 자폐아를 둔 
어느 어머니의 말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얼마 동안은 그 사실
을 모르다가 나중에야 자폐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br>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아들을 잘 키워야겠
다는 마음으로 어려움을 마다않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생각
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br>
때때로 깊은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도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노력을 계속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br>
이 어머니는 오히려 아들을 통해 삶을 배우고 인생을 알게 됐다고 할 정도로 예전의 
시각과는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아들은 이제 마음의 그늘이 아니라 삶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br>
우리 삶의 선물은 참으로 많습니다. 다만 우리가 삶의 축복과 선물을 감사하는 마음
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하찮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더욱이 조금
이라도 고통이 따르게 되면 그것을 선물로 여기기는커녕 생각조차 하기 꺼려합니다. 
<br>
그러나 세상엔 고통이 따르지 않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마치 삶과 죽음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이듯이 말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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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던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 안에서 
사랑(구원)과 고통, 생명(아기)과 죽음(십자가)을 동시에 봅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성취뿐만이 아니라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픈 고난까지도 함께 
읽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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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이 시므온의 심안을 꼭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적지 않은 본당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상을 부활하신 예수님상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어둡고 우울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이미지가 신자들이 누려야 할 부활의 기쁨을 감소시킨다는 이유에서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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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이 부활의 영광과 기쁨의 원천이 바로 십자가로부터였다는 것을 영영 
보지 못할까 봐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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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www.ciz.co.kr/cizmail/images/character/2_2_1.gif" borde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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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세상의 모든 자폐아동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세상의 모든 자폐아동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세상의 모든 자폐아동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고통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오늘 묵상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되기를...두 손을 모읍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b>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나, 
그분께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나, 
그분께 가까이 가기 위하여나, 
그분께 무엇을 드리기 위하여나, 
<br>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자기를 바치기 위하여나 
항상 성모님을 중개자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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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헌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의 손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명백하게 봉헌하고 우리 선행의 모든 가치를 바치게 된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즉 이 33일간의 정화과정을 거쳐 "악을 끊어버립니다. 죄를 끊어버립니다, 
허례허식을 끊어버립니다"라는 순수한 자유의지에 의한 고백으로 
<br>
세속과 마귀와 육식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세례성사를 갱신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세례 때 받았던 
<big>아름다운 품위</big>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b><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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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물동이는 많이 늦어졌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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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가시에 찔리신 성모 성심...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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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ul><big><b>■ 봉헌의 의미와 그 중요성 ■</b></big></ul></ul>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봉헌(奉獻)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성당이나 집을 새로 지어 바치거나 미사 성제 때 빵을 포도주를 
바치는 경우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이 자신의 맏아들을 하느님의 
것으로 바쳤듯이 사람을 바치는 등 자신의 자유의지로 사람이나 
물건, 장소 등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바치는 행위를 "봉헌"이라 
일컫는다. 
<br>
즉 봉헌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것
으로 인정하는 행위인데 이때 봉헌의 대상,즉 봉헌을 받는 이는 
하느님이시다. 봉헌의 대상은 오로지 하느님뿐이며 하느님만이 
우리의 전적인 봉헌을 받으실 권한을 갖고 계신다. 
<br>
하느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봉헌은 바로 이 진리를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다시 돌려드리며 그분께로 돌아가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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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의 완전한 종속을 인정하고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섬기는 일이다. 따라서 봉헌은 자연적이고 세속적인 용도가 
아닌 하느님을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하느님께 봉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br> 
봉헌의 본질은 봉헌하는 이와 봉헌을 받는 이와의 인격적인 만남에 
있다.봉헌하는 이는 그 행위로써 자신을 온전히 열어보이고 순종을 
약속하고 봉헌을 받는 이의 소유가 됨을 인정하는 것이 되며, 봉헌
을 받는 이는 바쳐진 봉헌물을 들어올려 자신의 소유세계로, 거룩
함의 세계로 수용함으로써 그것을 거룩하게 한다. 
<br>
따라서 봉헌은 거룩함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하느님의 영역에
로 들어올려 지는 것이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도약이다. 
즉 하느님께 봉헌됨으로써 그것은 성화(聖化)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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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이스라엘인들의 삶은 바로 이 봉헌의 삶이었다. 그들은 곡식
이나 양, 염소,비둘기 등 동물을 제물로 바쳐 죄를 씻고 성화되고자 
했으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느님께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
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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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하느님께 바치고(느헤12, 27-43),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 사무엘의 한평생을 하느님께 맡겨
드렸다(1사무 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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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하셨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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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전 존재로써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봉헌의 의미를 가장 충만히 채우셨고 
그리하여 봉헌의 완전한 모범이 되셨다. 
<br>
성모님 또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루가 1, 38)라고 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헌신하는 데 주저함 없이 자신을 봉헌하셨다. 
이 봉헌으로 말미암아 성모님은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한 궁전이 
되셨다.
<br>
봉헌의 대상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그럼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과연 타당한가?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br>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천상 여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우주적 
권능에 신비적으로 참여하고 계시며 그 영역에는 모든 인간들도 포함
한다.따라서 우리는 그분께 봉헌할 수 있으며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더욱 큰 성화를 가져오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타당하다. 
<br>
그리고 이 봉헌은 그리스도께 봉헌과 중복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은 구별되는 두 줄기를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br> 
중개하는 여인이 중개자와 병립되는 것이 아니고 성모님의 중개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며 그러므로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
은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최상의 방법이 되는데 이것은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1673-1716)이 말하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다.
<br>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뛰어난 
주형이며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을 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성모님의 손을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가장 완전하고 안전하며 빠른 길이라고 
루도비코 성인은 강조하고 있다.
<br>
"우리의 완덕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봉헌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심 중에서 가장 완전한 신심은 그리스도를 완전
히 따르며,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자신을 봉헌하는 신심이다. 
<br>
그런데 모든 조물 가운데 마리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셨다. 따라서 모든 신심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예수님께 가장 잘 
봉헌하게 하고 친밀하게 일치시키는 신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이신 마리아께 대한 온전한 신심이다. 
<br>
그래서 마리아에게 봉헌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께도 봉헌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마리아께 전적으로 봉헌하는 
것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가르치려는 신심으로서, 바꾸어 
말하면 세례 때에 발한 서약과 맹세를 갱신하는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20항>
<br>
그는 자신의 저서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성모님께 
바쳐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되는 것이 바로 성모님께 대한 
완전한 참된 신심이라고 귀결지으면서,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성모님께 봉헌하고 성모님께 종속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하고 있다. 
<br>
그는 또한 우리가 하느님께 마땅히 바쳐야 할 감사와 존경을 비롯하여 하느님
으로부터 받는 모든 은총 역시도 성모님을 통해서 받는 것은 하느님께서 기뻐
하시는 일이라고까지 말한다. 
<br>
루도비코 성인에 따르면 이는 바로 성삼위 하느님의 표양을 따르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성부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만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또 
계속해서 보내고 계시며, 성자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인간으로 탄생하셨고, 
성령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고 그 신비체의 지체를 
만들며 은총을 나누어주시기"<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40항> 때문이다.
<br>
성 삼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시고 은총을 나누어주시는데 있어 동정녀 
마리아를 거쳐 오신다면 우리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 나아가고 은총을 
청하는 데 있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br>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나, 그분께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나, 
그분께 가까이 가기 위하여나, 그분께 무엇을 드리기 위하여나, 그분과 일치
하고 그분께 자기를 바치기 위하여나 항상 성모님을 중개자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43항>
<br>
 <br>
<b>한편 봉헌은 세례성사의 갱신이다.</b>
<br>
"나는 이 신심이 세례 때 한 약속의 완전한 갱신을 뜻한다는 것을 이미 말했
었다.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세례 전에는 악마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악마
의 노예였다. 
<br>
그러나 영세 때에 자기 입으로 혹은 대부 대모의 입으로 마귀와 마귀의 행실과 
유혹을 끊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인 또는 최고의 주권자로 삼아 
자신을 사랑의 종으로서 완전히 바칠 것을 하느님께 엄숙하게 맹세하였다. 
<br>
마리아께 드리는 완전한 봉헌을 통하여서도 그와 같은 것을 우리는 행한다. 
봉헌 기도문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마귀와 세속과 죄악과 자기 자신을 끊어
버리고 우리 자신을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이다. 
<br>
아니 이 신심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을 때에는 
다른 사람, 즉 대부 대모의 입을 통해서 말을 하고 그래서 대리인에 의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게 되나 이 완전한 봉헌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또 명백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br>
세례 때에는 적어도 명백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치지 않고 자기 선행의 모든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께 전부 바치지 않으므
로 세례 후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이를 적용하거나 자신을 위하여 보존
할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 
<br>
그러나 이 봉헌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의 손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명백하게 봉헌하고 우리 선행의 모든 가치를 바치게 된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26항>
<br>
<br>
즉 이 33일간의 정화과정을 거쳐 "악을 끊어버립니다. 죄를 끊어버립니다, 
허례허식을 끊어버립니다"라는 순수한 자유의지에 의한 고백으로 세속과 
마귀와 육식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세례성사를 
갱신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세례 때 받았던 아름다운 품위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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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UL></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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