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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기 위해서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31 조회수799 추천수5 반대(0) 신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기 위해서

 

 

요한복음은 시작부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신 후에, 예수님의 활동과 생애에 대해 전개해 나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똑같은 하느님으로서, 그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창조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 피조물과는 다른 분이요,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렇게 인간과는 다른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과 우리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임을... 곧 비천한 피조물이지만,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작년 성탄 어린이 미사 때에, 이러한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설명할 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들 강아지 좋아해요?’ “네”

‘강아지를 좋아해서, 같이 잠자기도 하고, 늘 가슴에 품고 지내죠? 그러다가 강아지가 아프거나, 죽으면 슬프죠?’ “네”

‘그런데, 그렇게 개를 좋아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강아지가 되고 싶어요?’

“아니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이심에도 사람이 되셨어요. 이는 여러분이 강아지를 사랑해서 개가 되려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에요.’ 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설명할 때, 종종 사용하는 예화지만, 복음을 묵상하며 단순히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보다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곧 우리 삶과 무관한 예수님이 아니라, 늘 함께 웃고, 울고, 부대끼며 살아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에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랜 풍화 작용을 견디다 못한 바위들이 쩍쩍 갈라져 떨어져 내리는 곳, 어느 날 그 틈에서 파란 싹이 돋아났습니다.


‘나 여기서 살아도 돼?’ “위험해!! 이곳은 네가 살 곳이 못돼.”

‘늦었어. 이미 뿌리를 내렸는걸.’ “.......”

‘넓고 넓은 세상을 놔두고 왜 하필 여기로 왔어?’

“운명이야. 바람이 날 여기로 데리고 왔어.”


그 좁은 틈에서도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바위는 나무를 볼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 뿌리를 내렸으면 정말 멋있는 나무가 되었을 텐데.’

“그런 말 하지 마! 난 세상에서 이곳이 젤 좋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무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이 부족해 졌습니다.

‘뿌리를 뻗어 좀 더 깊이.’


바위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무가 뿌리를 뻗으면 뻗을수록 균열이 심해졌습니다.

나무와 바위는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았고

이윽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무야!! 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

‘난 이곳에서 십억 년을 살았어.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어. 난 너를 만나기 위해 십억 년을 기다렸던 거야.’

“...........”

‘네가 오기 전에 난 아무 것도 아니었어. 네가 오고 나서 난 기쁨이 뭔지 알았어.’

“나도 그랬어. 이곳에 살면서 한번도 슬퍼하지 않았어.”


그날 밤엔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나무는 바위를 꼭 끌어안고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면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명확하게 알려주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분명 각 개개인은 십억, 수십억 인구 중 하나이기에 어떠한 가치나 별 의미 없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바닷물을 한 바가지로 퍼낸다 해도 바닷물은 아무런 변화가 없이 보이듯이 이 세상에 나 하나는 있으나 마나한 그런 미약한 존재로 여기며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에게... 각 개개인에게 살아가야할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비록, 부대끼고 힘들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 행복이 있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우리 가운에 오시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분명,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요, 있으나 마나한 존재 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 난 이후로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그 후부터는...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조금이나마 이웃들에게 나눠주려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 그 후부터 나는 우리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을 당신의 거룩하고 완전한 삶과 연결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또 전해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 가슴에 뿌리를 내린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날마다 쪼개지는 바위가 되겠습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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