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익명성을 벗어나...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12-31 조회수868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4 김남희

 

 

내 글을 본 사람들이 누군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들이 꼬리글이나 답글을 남기지 않는 한.

그들이 어떤 느낌과 생각으로 내 글을 대하고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반대로 누군가의 글을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역시 모를 것이다.

아름답다고 여겨 아무 말 없이 슬쩍 퍼가도.

혹은 서너줄 읽다가 열린창을 닫아버려도.

 

이곳은 익명이 더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여기서 개별 인간은 익명성 안에 숨어 들어간다.

여기서 단독자 인간은 조회된 숫자로 변화되어버린다.

 

여기서 인간은 대중의 한 조각이 되어 버리고 다수 안의 하나가 될 뿐이다.

여기서 인간은 대중에 편입되어 평준화된다.

여기서는 ''다수성이 곧 진리''이다.

여기서는 피상적인 관계가 성립할 뿐이다.

 

키엘케고르는 말한다.

대중 안에서 개별자는 무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다수, 대중은 진리다''라는 말이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그러나 키엘케고르는 다수의 인간으로 하여,

인간의 본래성을 잃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그는 "대중은 진리가 아니라 비진리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대중 안에서 무책임성, 익명성을 기초로 드러나게 되는데,

인간은 바로 그 무책임성, 익명성 안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비본래적인 모습, 즉 익명성, 무책임성을 즐기며.

대중 안으로 스며들어 미치도록 바쁘게 살아가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런 성향은 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는데.

신과의 관계에서도 ''나''를 분리하여 바삐 돌아가는 세상과 대중에 자신을 편입시킨다는 것.

인간은 결코 자기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는 존재임을 투시한다.

 

여기에서 키엘케고르는 인간의 참된 실존을

''신 앞에 서있는 개별 인간'', ''신 앞에서 책임감을 느끼는 개별 인간''이라고 규정한다.

 

책임(Verantwortung) 이란?

Ver(...앞에서) + antwortung(대답, 응답) 으로,

인간은 결국 신 앞에서 응답하는 존재로서,

후에 신 앞에서 계산해야 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그에게 있어서의 ''실존''은

아무도 대신 응답할 수 없는 개별자의 모습으로서,  

신 앞에 서있는 인간을 말한다.

신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마음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신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마음은

죽음에 대해 묵상함으로써 이를 깊이 느낄 수 있다.

 

죽음은 진지한 삶을 위한 최고의 스승이며,

죽음은 삶의 일부. 최상의 동반자임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죽음을 묵상함으로써 

매일의 삶을 마지막 날인듯, 첫번째 날인듯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모든 것 안에서 새로움을 느끼며 살아감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실존적인 갈증,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써 받아들이고, 동반자로써 의식할 때,

하루하루가 애틋하고 소중하고 경이롭고 설레이며 

다시는 올 수 없는 것임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죽음을 깊이 느낄 때,

작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 대범함이 생기고

세상의 걱정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내맡김의 자세가 생겨난다는 것.

 

이렇게 우리 앞에 놓여진 죽음을 깊이 느낄 때

세계와 사회 안에서 자기 이웃들에 대한 책임도 생겨난다.

이것이 자기에 대한 책임보다도 더 중요한 책임이라고 그는 말한다.

 

비록 인터넷 안에서,

어쩔 수 없는 익명성과 대중화에 편입되어 있으나

개별 실존의 의식을 갖고 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상당히 다르리라.

 

한 해가 마감되는 시점에

문득 조회수에 가려져있는 우리의 모습들이 궁금하고

이렇게 숫자로 만나는 관계들이 공허한 듯 여겨지고 외롭게 느껴져 한마디 적어보았습니다. 

 

요즘은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휴대폰 뒷자리 번호로 음악을 청하는 사람 이름을 대신하더군요.

 

마켓에서 상품의 바코드로 모든 것을 처리하듯.

어느 틈에 우리 개별인간도

주민등록 번호, 학번, 군번, 환자 번호, 죄수 번호....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숫자로 표시하여 처리하는 것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피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코드화, 익명성에서 벗어나,

얼굴을 내밀고 마주 대하는 개별 실존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바람입니다.

동감하시나요?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