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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6년 1월 훠꼴라레 생활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01 조회수710 추천수1 반대(0) 신고

생활말씀
2006. 1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18.20)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마태오 복음서는 놀랍고도 엄청난 이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이보다 더 놀라운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현존은,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육신적으로 머무셨던
역사적인 기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어디에 남으셨나요?
우리는 어디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마태오 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예수님께서 그분의 공동체인 교회를 위해 삶의 노선을 주실 때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 번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교회,
성체를 중심으로 다시 하나가 된 교회를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을 통해 교회가 지닌 참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곧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시는 바로 그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항상 우리 가운데 모실 수 있으며,
살아있는 교회를 체험할 수 있고,

교회를 이루는 근본적인 현실을 살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분께로 신자들을 모이게 하시고 일치시키시며,
신자들 사이에 서로 모이고 일치하게 하시며
모두를 그분의 몸이 되게 하신다면,

우리의 가정이나 공동체가 지닌 분열은 교회의 얼굴을 손상시키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분열되지 않았습니다.
조각난 그리스도는
알아보지 못하며 그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다른 교파의 교회와
교회 공동체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일치를 위한 발걸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갈라놓는 것보다 일치시키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주었습니다.

 

아직 신앙의 교의적이고 실천적인 몇 가지 면에서
완전한 일치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를 일치시키는 핵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인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풍요로움을 알고 서로 나누기 위해,
서로 용서를 청하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은
많은 분열을 극복하도록 해줍니다.

 

비록 작은 발걸음 같지만
“사랑으로 행한 모든 것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치의 원천이신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치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실”것입니다.

 

이 생활말씀을 제안하는데 있어
신앙 위원회와 교회일치 협의회,
그리고 교황청 일치 평의회가 이렇게 적었으며,
이번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주간의 복음구절은
더블린의 한 초교파 그룹이 준비했습니다.

 

사실1968년부터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주간 동안
모두가 같은 성서구절을 살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들 사이의 충만하고 또 눈에 보이는 일치를 향한 발걸음을 위한
희망의 표시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치되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그분 안에, 그분의 뜻 안에 일치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열망은
그분의 계명
곧 서로간의 사랑을 우리 사이에서 실천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이렇게 서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분께서 현존하시도록 모든 것을 옆으로 제쳐둘 줄 안다면
주위의 모든 것은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집, 일터, 학교 국회, 경기장에 함께 하실 것이며
모든 것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분의 현존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빛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개인적, 사회적 상황을 직면하기 위한 힘이 될 것이고,
어려운 선택을 앞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용기를 줄 것이며,
다양한 존재 방식을 지닌 인간의 삶을 위한 효소가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가정과 공장에, 정비소와 공사장의 일꾼들 사이에
영적이지만 실제적으로 현존하실 것입니다.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와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는 상인들과 공무원들 사이에서,
또 모든 환경 속에서 그분을 발견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새롭게 다짐한
서로간의 사랑으로써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현존하실 것이며,
세상이 처한 새로운 노예 상태로부터
이 세상을 자유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새로운 길을 여실 것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오래 전에 쓴 이 글이 참으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치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사이에 계신다.
이것은 가장 값진 것이다.
이는 우리 마음속에 지닐 수 있는 그 어느 보물 보다 더 값지다.

곧 어머니보다 아버지보다, 형제들보다, 자녀들보다 더 값진 것이다.
그리고 집, 직업, 재산보다 더 값지다.
로마와 같은 대도시가 지닌 예술 작품보다,
우리의 일보다 더 값지며, 꽃과 풀밭, 바다와 별 등
우리를 에워싼 자연보다 더 값지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보다 더 값진 것이다.”

 

가톨릭 신자와 아르메니아 정교회 신자,
감리교 신자와 정교회 신자 사이에서
복음이 말하는
서로간의 사랑을 산다면 세상에 어떤 증거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오늘도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순간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그분 계명의 바탕은 형제적 사랑입니다.

이 때문에 참되고 형제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모든 것은 값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안에 형제를 위한
사랑의 마음이 들어있지 않다면 이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시고 마음속에 항상 자녀만 간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하기 위해,
또 그분의 평화를 알지 못하는 세상에 그분을 가져다주기 위해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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