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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한 한해!
작성자임성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02 조회수655 추천수1 반대(0) 신고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하느님을 따르는 사자의 지혜로운 대답이다.

 

A도 아니고 B도 아니라면 어찌 C라는 일을 하시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전형적인 질문이다.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들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법이다.

 

여기서는  엘리야인지 예언자인지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오직 촛점은

 

세례를 줄 자격이 없다는 흠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장점을 찾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면, 상대방의

 

단점을 찾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이러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의도를 하느님의 사자는 단번에 격파한다.

 

세례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에 세례 자체의 질적 수준으로 승부한다.

 

그것도 지극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방법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 시킨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당신은 자격이 없다는 주장은 그 밑에 교만이라는 악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즉, 너가 무엇인데 감히 세례를 주느냐? 라는 인간을

 

무시하는 저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같은 교만의 공격에는 겸손이라는 하느님의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을 보여 준다. 어둠에는 빛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법이다.

 

방안이 어두을 때에는 형광등을 켜면 되는 것이다. 어둠을 바가지로 아무리

 

퍼 내어 보아도 여전히 어둠이기에 필요한 것은 불을 켜는 것이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예수님을 찾는 것이고,

 

예수님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 성심의 본질인 겸손과 온유함을 따라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을 취하는 것이다.

 

세레자 요한의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라고 하는 대응은 표현은 다를지라도

 

전부 다 겸손이라는 덕목이 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나의 세례 행위가 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세례 행위가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는 것은

 

나의 신분과 자격이

 

인간의 가장 비천한 종의 모습을 취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음을 얘기하면서

 

지극한 겸손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모친이신 에리자벳의 태중에서부터 성령을 가득히 받아 성모님이 방문 했을 때

 

뻐 뛰놀았다는 세례자 요한은 이미 성령으로 가득차 있음에도 본인은 자신을

 

지극히 겸손한 종으로 자리매김한다.

 

 

 

 

새로 시작하는 오늘 올 한해를 겸손으로 시작해서 2006년 12월 31일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낸다면 우리도 한 해를 예수님의 성심으로 살게 되리라.

 

올 한해는 무엇을 성취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덕행으로

 

매사에 임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겸손한 마음에 예수님의 성심이 함께 할 것이고,

 

예수님의 성심이 함께 하는 곳에 예수님의 사랑이 함께 있을 것이고, 예수님의 사랑

 

이 있는 곳에 하늘나라가 있을 것이고, 우리가 하늘나라를 먼저 구하면 그러면 세상

 

것도 함께 받을 것이라 했으니 하느님의 선물도 풍성히 받게 될 것이라.

 

 

결국 올 한해 우리가 겸손을 취하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를 어여삐 보시고 우리에게

 

당신 선물을 풍성히 주시는 기적을 베푸는 한 해로 만드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수님! 우리 마음을 차지하시어 당신 성심안에서 겸손한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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