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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베네딕도회 영성"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04 조회수680 추천수2 반대(0) 신고

2006.1.4 주님 공현 전 수요일
1요한 3,7-10 요한1,35-42

                                                     

 

 

 

"베네딕도회 영성"

 


저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영성을 산(山)과 강(江)으로 비유하기를 좋아합니다.

 

몇 해 전에 써 놓은, 자주 인용하는 ‘산과 강’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밖으로는 산
안으로는 강
산 속의 강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산
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강“

 

언제나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산이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첫째 번 서원인

정주(定住;stability)를 상징한다면,

 

늘 맑게 흐르는 강은
끊임없이 하느님 찾는 수행에 전념하는
둘째 번 서원 '수도승다운 생활(conversatio morum)'을 상징합니다.

 

산과 강의 영성,
비단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찾아 늘 강처럼 흘러야 비로소 산 같은 정주입니다.
물도 고이면 썩듯이,
강처럼 늘 맑게 흐르는 내적 여정이 없으면
정주는 곧장 안주로 전락해 버려 수행자로서의 빛과 생명을 잃습니다.

 

진정 하느님을 찾는 자에게는 늘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정작 바꿔야 할 것은 밖의 환경이나 사람이기 보다는 내 마음입니다.

 

마음이 새로우면 똑같은 환경도, 사람도 늘 새롭게 만납니다.
하느님을 찾는 회개의 여정 있어, 비로소 깨어 있게 되고 마음도 순수해집니다.

 

이런 마음에서 1독서의 요한 사도 같은 확신의 고백도 나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성령이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1요한3.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 늘 하느님을 찾아 맑게 흐르는 사람이기에
감히 죄가 끼어들 틈도, 머물 수 있는 여지도 없습니다.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하느님의 성령이 하느님 찾는 갈망의 원천입니다.
하느님 찾는 갈망 있어 요한의 두 제자들, 마침내 주님을 만났습니다.

 

“무엇을 찾느냐?”
비단 요한의 두 제자만 아니라,
이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궁극적 물음입니다.
과연 수녀님들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주님과 함께 머물고 싶어 하는 제자들의 간절한 원의를 알아채신

주님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와서 보시오.”

삶과 유리된 체험 없는 하느님 지식들이

우리를 피곤하게, 복잡하게, 허무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하느님에 대해 많이 알면 무엇 합니까?
정작 필요한 것은 하느님을 아는 하느님 체험이요,
이 체험에서 나온 지혜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들이기 위해
이 주님의 미사잔치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마침내 주님과 함께 머물면서 주님의 사랑을 속속들이 체험한 안드레아,
자기 형 시몬에게 감격에 벅차 고백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이 또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와서 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의 집인 수녀원에 묵고 있는 우리들,
매일 매일 미사에 참석하는 우리들,
과연 ‘우리는 주님을 만났소.’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애매하거나 추상적일 수 없습니다.
오늘 요한 1서 독서의 마지막 부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1요한3,10bc).”

 

막연한 추상적 하느님이 아닌,

사랑의 하느님이란 사실을 자칫 잊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 계신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 계십니다.

 

하느님을 찾는 진정성은 형제 사랑을 통해서 입증됩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요한 사도는 단호히 천명합니다.

 

사랑의 실천 없는 하느님 탐구,
완전히 환상 속의 헛된 탐구이기 십중팔구입니다.

 

형제가 좋아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형제가 싫어도 사랑할 수 있는 게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오늘도 좋으신 주님은 이 은혜로운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 찾는 일에, 사랑 실천에 항구할 수 있도록
당신의 생명과 사랑으로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충전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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