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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별 볼일 없는 곳에서 나신 예수님!
작성자김선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05 조회수724 추천수5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요한 복음 1 46

 

우리에게  영성작가로 알려진 헨리 뉴엔은 교수로 재직하다가 마지막 생을 캐나다의 라르슈 공동체인 새벽에서  장애인들과 생활하다가 선종하신 사제이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와의 긴밀한 대화를 중요시하던 뉴엔은 새벽에서 장애인들과 생활하면서 자신의 결함, 즉 자신의 장애와 대면하면서 깊은 갈등을 했다.

 

그는 아침마다 25살 짜리 청년 애덤을 돕는 일로 일과를 시작했다. 애덤은 자기에게 주는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상대가 자기를 불쾌하게 만드는지 아닌지, 어떤 음식을 원하는지 않는지 표현할 능력이 없고 심지어는 상대를 알아 보는지 조차 확인할 길이 없는 청년으로 생활의 기본이 되는 옷을 입고, 벗고, 걷고, 먹고, 화장실에 가는 일들을 세심하게 보살펴 주어야한다.

 

뉴엔은 장애자들과 함께 하는 생활에서 철저하게 자기 대면을 하면서 더 이상 현존이 느껴지지 않는 하느님에게 자신을 송두리채 집어 던지고 자기 존재의 모든 부분이 무로 느껴질 각오를 하라고 요구하는 철저한 고독을 느낀다. 그리하여 그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신 예수의 고독과 같은 것을 느낀다.

 

오늘 복음에서 성격이 성실하고 정직하여 예수님으로 칭찬을 받은 나다나엘은 나자렛과 같은 별 볼일이 없는 곳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시큰둥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그런 후진 곳 누추한 마굿간에서 태어 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시지만 더욱 선명하게 그 분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라르슈 공동체, ‘새벽과 같은 곳이다.

 

나 역시 십년가까이를 정신적 육체적인 장애인들을 보고 산다. 내 아이가 장애가 되기 전까지는 관심조차 갖지 않던 그들이 내게 가까이 다가 왔을 때 난 하느님이 정녕 계신가를 의심했고 오랜 세월동안 깊은 갈등과 절망에서 긴 무덤속을 걸어 나와 비로서 내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꿈뚤거리기 시작했다.

 

필립보의 와서 보시오처럼 진정 체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믿지를 못 한다. 세상의 아름다운 창조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이 계심을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고,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헐 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이 돌 봐 주듯이 너희 형제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당신에게 해 준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낮은 곳에서 나오신 것 처럼 낮은 곳을 응시했을 때 샘물처럼 솟구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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