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36) 새벽에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06 조회수900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6년1월6일 금요일 주님 공현 전 금요일 ㅡ요한1서 5,5-13; 마르코 1,7-11ㅡ

 

       새벽에

               이순의

 

 

새벽에 영심씨(=제 차이름)를 타고 가족이 터미널로 갔다.

새벽의 도로는 아름답고 고요했지만 우리 부부의 가슴은 떨리는 기쁨이었다. 아들녀석이 친구들과 섬 집으로 행했기 때문이다. 겨울바다와 살았던 추억을 그리워하면서도 입시라는 중압감에 눌려 여유자적할 틈이 없었으므로 섬 집에를 가고 싶다는 생각도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수능시험이 끝나고 섬 집에를 가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어미의 생각은 어미랑 함께가서 밥도 해 주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줄거라고 생각을 했었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를 제외한 친구들과의 여행이었다. 먹을 것도 입에 맞지 않을 것이고, 여러 해 동안 내가 섬 집에를 가지 못했으므로 여러가지로 허술한데가 많을것 같아서 같이가자고 우겼었다. 그런데 엄마가 같이 가면 안간다는 것이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라면이라도 끓여먹고 올테니까 걱정을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목포행 고속버스를 타야만 낮 배를 타고 섬 집에를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날 아침에 마누라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은 짝궁이 돈도 넉넉히 장만하고 시간을 맞추어서 시장에서 들어왔다. 그리고 잠도자지 않고 아들의 가방을 들고 따라나섰다. 오히려 수학여행 때 보다는 짐이 훨씬 많았다. 어제 김치도 담궈서 말 안하시는 우리 아저씨 계시니 가져가라고 했고, 아저씨 담배랑 아저씨 약이랑 시장 본 음식들이랑 짐이 많았다. 그걸 끌고 들고 따라나서는 짝궁이 아니던가?! 그리고....

 

<아들! 아빠가 아들 수학여행 보내놓고 엄마한테 겨우 뼈다귀 추려놓았네. 오늘 아침에 그때 서운하신 것 다 잊으시소.>ㅎㅎㅎㅎ ㅋㅋㅋㅋ

짝궁도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았었나보다. 터미널 주변 지리에 어두운 운전자인 나를 잘 인도하더니 기다리라 하고 짐을 끄집으며 또 앞장서 나선다. 그리고 아들 친구들의 차표도 사주고 돌아왔다. 그리고.....

<마누라, 신랑이 공부 잘 했는가? 몇 점 주실랑가?>ㅎㅎㅎㅎㅋㅋㅋㅋ

아들이 해외로 수학여행을 가던 그 날의 풍경이 짝궁이 생각을 해도 잘못이 인정되었나보다. 오늘 아침에는 만점을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도착하자마자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출발허셨는가? 눈좀 붙이시고 못 자신 잠을 차에서 주무시소. 아드님!>

마무리꺼정 만점을 챙겼다. 그런 짝궁 때문에도 기분이 좋았지만 아들이 벌써 커서 그렇게 먼 섬 집에를 친구들과 함께 찾아간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대학의 합격 불합격을 떠나서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얼마만에 찾아가는 여행인가?!

 

어린 시각으로 바라본 마음이 아니라 다 자란 청년의 가슴으로 텅 빈 겨울의 대지와 바람으로 채워진 바다를 친구들에게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지와 그 바다의 여름을 자랑하고 소개하느라고 분주할 것이다. 친구들은 그저 상상으로 그림을 그리며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겨울 서해의 일몰도 보여줄 것이라고 했고, 또 작은 공소의 성당에도 간다고 했고, 언덕 위에 당산나무에 서서 서울서 친구들을 데려왔노라고 자연에게 소개를 하고 싶다고도 했고, 오염된 공기로 더러워진 폐를 깨끗이 청소(?)하게 한다고도 했고, 전에 우리가 지금의 집을 사기 전에 살았던 장고의 집에도 가서 마루에 앉아보고 건너편 산마루의 여름 운무도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벌써 자식이 커서 서정에 대하여 자랑할 심장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고, 그런 친구를 따라서 겨울 섬으로 찾아가는 아들의 친구들이 있어서 또 행복했다. 더구나 오늘 새벽은 오랜지색 가로등들의 피날레가 창연한 아스팔트 위에 영심씨를 함께 타고 앉아서 다 자란 아들에 대하여 짝궁은 할말이 많았으므로 더욱 행복했다. 무사히 잘 다녀오시기를 빈다. 어데 내 힘으로 키운 자식이던가?! 하늘이 알아서 정신도 육신도 저만큼 건강하게 키워주셨으니 은혜일 수 밖에!

 

<저런 아들 두어서 당신 축하해요.> 짝궁에게 새벽 인사를 했다.

<아니여. 못난 신랑만나서 저만큼 키워 준 자네가 수고했지. 우리 아들은 자네 손끝이로 키웠네. 고맙네!> 짝궁이 답례 인사를 해 주었다.

사랑하는 영심씨의 라디오에 맞춰진 평화방송에서는 아침 여섯 시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짝궁은 기도문을 따라서 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 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 되시도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주님께서는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영심씨 너무너무 고마워요. 매번 이렇게 중요할 때마다 고마워서 어찐당가요?!

 

ㅡ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이다.”마르코1,11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