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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 무엇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06 조회수1,091 추천수15 반대(0) 신고
1월 7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요한 2장 1-11절


“포도주가 없구나.”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 무엇>


생각만 해도,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설레고, 행복해지는 대상이나 물건, 풍경, 음식들이 있지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예를 들면 이런 것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거울 같이 잔잔한 호숫가, 그 호수 안에 뜨는 보름달, 불어오는 산들바람, 이런 정경들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기러기 떼, 황홀한 일출, 장엄한 저녁노을, 가을 들녘, 낙엽으로 뒤덮인 한적한 산책길, 절친한 고향친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


음식으로 넘어와도 할 말이 많습니다. 갓 구운 따뜻한 빵 한 조각, 향기로운 커피 한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제대로 끓인 떡라면 한 그릇,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포도주입니다.


포도주,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 무엇입니다. 저 같은 경우 단순해서 그런지 괜찮은 포도주 한 병이면 인생이 다 행복해집니다.


코르크 마개를 여는 동시에 그 특유의 향이 순식간에 퍼져 나오지요. 품위 있는 잔에 한 잔 가득 따르면 더 이상 좋을 수 없습니다.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그러나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그윽한 맛이 사람을 기쁘게 만듭니다. 너무 부르조아적인가요?


서구문화 안에서 포도주는 그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합니다.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포도주는 거의 생활필수품입니다. 생활 그 자체입니다. 포도주가 없는 식탁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혼자서 점심 때 두 병, 저녁때 한 병씩 매일 드시는 분도 봤습니다.


특히 축제 때, 잔치 때 포도주의 역할은 절대적이지요. 포도주는 축제와 향연의 상징입니다. 기쁨과 즐거움, 친교와 활력의 상징입니다.


유다 지방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는 가장 먼저 챙겨야할 중요한 목록이었지요. 혼인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은 잔치에 참석할 사람들의 수효를 미리 파악해서 넉넉히 포도주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의 혼인잔치는 일주일간에 걸쳐 계속되었으므로, 또한 예기치 않았던 손님들이 우르르 들이닥치기도 했으므로 가끔씩 포도주가 떨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잔치를 준비한 사람으로서는 큰 수치였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과 성모님이 초대받아 참석하신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너무나 당황한 식구들이 허둥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잔치를 주관한 사람들이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그리고 더 이상 포도주가 없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얼마나 김이 팍 샜겠습니까?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난감했던지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고 다들 난리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계셨던 성모님은 그냥 모른 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절하고 자상했던 성모님, 남 잘 못되는 것 죽어도 참지 못하던 성모님이셨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겠지만, 아들 예수님께 넌지시 속삭이듯이 말을 건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간절함이 담긴 성모님의 부탁에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마음을 잘 알고 계셨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강경한 거부였습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태도는 또한 재미있습니다. 예수님의 거부표시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계속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십니다. 마침내는 일꾼들에게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성모님의 간곡한 당부 앞에 예수님도 그만 손을 들고 맙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성모님을 더 이상 난처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기에 처한 이웃들을 돕고 싶은 성모님의 따듯한 마음을 눈여겨보십니다. 마침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가나에서의 첫 기적을 행하십니다.


성서학자 라그랑즈는 이 특별한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첫 기적을 행하시는데, 그 배경에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이웃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성모님과 예수님, 모자간의 격의 없는 대화, 가족적인 분위기가 첫 기적의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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