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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못하겠습니다 !!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07 조회수949 추천수10 반대(0) 신고

 

나해 1,7일 토 요한 2, 1-11- 못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첫 기적인 ‘카나 혼인 잔치’에 관한 말씀입니다.

보통 이 복음을 묵상할 때, 거의 예수님이나, 성모님을 중심으로 묵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잔칫집에서 잡일을 하는 일꾼들의 입장으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부님께서 신학교 4학년 때, 여름 신앙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캠프파이어에 필요한 전기 시설을 다 설치하고 저녁 무렵에 먹구름이 끼며 비가 한 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임 신부님께서 ‘캠프파이어에 연결된 전기시설을 철거해라. 위험해서 못하겠다.’ 라고 말씀하시자, 급한 마음에 연결해 놓은 전기선을 하나하나 푼 것이 아니라, 밴치로 전기선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철거 작업을 마치고 얼마 있지 않으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늘을 한참 바라보시던 주임신부님께서 당시 신학생이던 신부님께 ‘다시 연결해라. 그냥 해보자.’ 라고 말씀하시자, 그 신부님께서 ‘못하겠습니다. 캠프파이어 철수할 때, 그냥 막 자르고 차에 실려 버려서 하나하나 연결하기가 어렵습니다.’ 라고 감히,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부님께서는 화를 내신 것이 아니라, ‘그러냐. 그럼 하지 말자.’며 순순히 신학생의 의견을 따랐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이야, 신부님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라고 농담하자, 그 신부님께서 ‘그러게 나도 왜, 무슨 용기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은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복음의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일꾼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일에 정신없어 하는데, 갑자가 한 여인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더니, 한 젊은이를 가리키며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를 바라보며 서 있는데, 대뜸 손가락으로 마당 구석에 놓여 있는 물독을 가리키며,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워라.”고 말합니다.

황당하고 이해가 안 되지만, 그래도 젊은이의 말에 순종하여 독에 물을 가득 채웁니다.


그런데, 돌에 물을 다 채우기가 무섭게 다시, “이제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일꾼들의 마음은 어떨 것 같습니까?

기껏 수고하며 독에 물을 채우니, 다시 퍼 다가 갖다 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적어도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화를 냈을 것입니다.


주임신부님께 ‘못하겠습니다. 배 째십시오.’ 라며 강하게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니 지금 저희를 갖고 장난하십니까?’ ‘잔칫상 나르기도 바쁜데, 지금 이런 일로 저희를 놀리시는 겁니까?’ 라는 말 정도를 충분히 할 수 잇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꾼들은 그 젊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며 과방장에게 날라다 줍니다. 그때,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있었던 것입니다.

분명, 카나 혼인잔치는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기적입니다.

하지만, 일꾼들의 기꺼운 순종도.. 이해가 안 되고, 조금은 짜증과 화가 나지만, 인내하며 순종한 자세 역시 나름대로 기적의 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순종은 기적을 만듭니다.

이해가 안 되어 화가 나지만... 대들며 반항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순종하며 넘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그 순종 자체가 바로 기적인 것입니다.


저 역시 사제 서품 때, 순종 서약을 했습니다.

그러데, 순종 서약을 하기 전보다 한 이후가 더 순종하기가 힘이 듭니다.

신학교에서는 순종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제가 된 지금은 순종하기가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신학교 때는 ‘지금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시켜주니 고맙습니다.’ 라고 순종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못하겠습니다. 그만하십시오. 그럴 거면 시키지 마십시오.’ 라는 불만이 불쑥불쑥 솟아납니다.


이제는, 좋아하는 것만을 기꺼운 마음으로 순종하려 할 때마다, 이해하고 익숙한 것만을 순종하려는 충동일 생길 때마다, 복음의 일꾼들의 자세와 순종을 생각해 보렵니다.

그리하여 이해가 안 된다 하더라도, 좀 하기 싫다 하더라도, 좀 자존심이 상하고 너무 바보가 되는 느낌이 든다 하더라도, 순종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한, 기쁘게 “네” 라며 순종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 봅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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