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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황당한 학설?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07 조회수691 추천수3 반대(0) 신고

복음: 요한 2,1-11 갈릴래아 카나에서 있었던 첫 번째 표징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최초의 기적 장면이다. 예수님과 어머니, 제자들이 초대받아 온 한 혼인 잔치집. 이는 일차적으로 술이 떨어진 잔치에서의 곤경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으며 그 곤란한 처지를 기쁨으로 바꾸어주신 예수님의 배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좀더 심원한 이해를 위해서 더 많은 것들도 다루어질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놀랍게 상황을 극전환시킨 기적에 결정적 동기를 제공한, 어머니의 개입에도 많은 관심을 둘 수도 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청탁에 대해 단호한 거절처럼 보이는 예수님의 이 대답 안에서, 아들은 왜 자기 어머니를 '여인'이라고 부르는가? 예수님의 "때"라는 것은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도 이어질 수 있겠다. 또 어머니는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인에게 준비를 시키는가? 어머니는 과연 아들의 신적 능력을 알고 있었는가? 어머니의 태도와 성품이 어떠했는가? 등등의 호기심도 일어날 수 있다. 그밖에도, 왜 하필 혼인잔치에서 첫 기적을 시작하고 있는지. 신랑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는 과연 누구인지. 어머니는 왜 마치 잔치집의 주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유다교의 정결례에 쓰일 항아리의 개수는 무얼 상징하는지. 그 집은 왜 하필 그 큰 항아리를 그토록 많이 갖고 있었는지. 그 항아리에 담은 물은 무엇이고, 변화된 술은 무엇인지. 수수께끼 같은 물음들이 연달아 이어진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 같은 물음들은 모두 이차적인 것들이다. 이 기적 이야기는 우선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밖의 소재들은 모두 그것을 강조하기 위한 부수적인 재료에 속한다. 그러나 이 부수적인 재료들을 연구한 학설들을 읽다보면 명망있는 학자들끼리 서로 '우스꽝스런 해석'이라느니 '신경질적인 반응'이라느니 '황당한 견해'라느니 하며 비난을 한다. 주로 어머니에 대한 문제가 개신교 신학자들과 가톨릭 신학자들과의 신경전의 단골메뉴다. 그런 문제를 잠시 떠나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공관복음서들 중 이 사건과 병행되는 것이 나오지 않지만 디오니소스에 관한 기적들을 전해주는 고고학적 문헌들, 즉 고린토 신전으로부터 나온 문헌에 놀랍게도 이 병행귀들이 있다. 디오니소스 신(로마의 박카스 신)은 포도나무를 발견한 신이며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신이다.(바레트 참조) 디오니소스 축제날에는 성전샘들이 물대신 술을 뿜어냈다고 하며, 축제 전날 저녁에 성전 안에 빈독 셋을 세워두면 그 다음날 아침에는 술이 가득 차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디오니소스 축제일이 정월 5일과 6일 사이의 밤이었다. 고대 그리스도교회는 예수의 세례 축제를 정월 6일에 베풀었으며, 정월 6일을 카나의 결혼 기념일로 지켰던 것이다.(불트만 참조) 자, 그렇다면 카나의 기적 이야기에서 요한복음사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방 잡신들이 행하고 있는 놀라운 기적에 비해, 예수님의 기적은 그 질과 양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다. 요한복음사가는 이방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고 있었다. 여기에 구약 성경의 혼인잔치에 대한 표상, 그것은 분명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에 대한 표상이다. 종말론적인 구원을 유다교에서는 '혼인잔치'로 비유했던 것이다. 그때의 신랑은 하느님이고, 신부는 이스라엘이다. 카나의 잔치에서, 과방장은 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을 불러 묻는다. 그러나 그 신랑은 질좋은 포도주가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알고 있는 분은 예수님이고, 그분이 신랑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신원을 알고 있는 듯 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분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 기원을 알고 있지 못했던 유다인들을 상징한다. 이 기적을 '기적'이라 하지 않고 '표징'이라고 독특하게 이야기 하는 이유는 '표징'은 초현실적인 놀라운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표징'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표징'이라 할 때, 그것은 꼭 초월적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행하는 언(言)과 행(行) 모두가 표징이다. 그분의 인성 안에 들어있는 신성을 알아보게 하는 모든 언행. 그래서 그 표징을 옳게 알아본다면 반드시 '믿음'이 동반되는 것이 표징인 것이다. 첫 번째의 표징에서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의 어머니와 제자들, 그분을 둘러싼 소수의 사람들만이 '표징'의 의미를 알아본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때". 당신의 참다운 영광을 드러내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때는 마지막 표징인 십자가에 높이 들리는 사건이다. 이 "때"를 주목하고, 기대하라고 예수께서는 어머니의 청탁에 일단 거리를 두신다. 당신의 영광의 "때"는 인간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아버지가 정한 때여야 함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분은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아들'의 신원을 의식하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청탁을 들어주는 예수님. 그는 '사람의 아들'이심도 분명히 의식하셨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나타난 예수님. 하늘 아버지와 지상 어머니를 모두 만족시키는 효심깊고 지혜로운 아들이 아닌가? ^^ (여기 진하게 칠한 부분은 또 하나의 황당한 학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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