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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병신도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0 조회수899 추천수10 반대(0) 신고


병신도

복음: 마르 1, 21-28

마르꼬 복음에서 예수님의 본격적인 공생활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시간과 장소를 택하셨다.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포구 가파르나움.
안식일에 회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회당의 전례는 제1독서로 모세오경을,
제2독서로 예언서를 봉독하고
이어서 율법학자들이 설교를 했으나
경우에 따라 명망있는 평신도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평신도인 예수께서도 설교를 하실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에서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율법학자들.
그들의 권위는 도대체 어떠했기에
'그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다는 말일까?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라고
후에 다시 부연 설명하고 있는 대목에서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위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말이 말로 끝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시 실행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증거로 보여진 사건이 더러운 영의 복종이다.

꼭 신적인 권능을 지니셨던 분이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의 위력은 남달랐다고 넘어가지 말자.

당대의 지식층인 학자들과 평신도 예수님의 큰 차이는
이론과 실천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회당 안에서만 통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회당 밖에서, 길거리에서, 장터에서, 생활 현장 속에서
즉각 실행되고 실천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아닐까?

위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말씀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실천적 행동이 밑받침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평신도는 라틴어로 '라이쿠스(laicus)'다.
이 단어의 원뜻은 '문맹자'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즉 대부분이 문맹자였던 평신도를 일컬어 붙여졌던 말이다.
이른바 '병신도'라 비하해서 부르는 뉘앙스와 맥을 같이 한다.

오늘날은 어떤가?
과연 옛날처럼 평신도가 문맹자들인가?
그 문맹을 계몽시켜주기 위해서 성직자들이 필요한가?

성직자들의 진정한 권위는
교회 안의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는데 있지 않다.

적어도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의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은
예수님의 말씀을 즉각 실천하는 삶에서 증명될 것이다.
인류를 위해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삶에서 드러날 것이다.

평신도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설교.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강론.
말과 다른 행동.

예수님 시대의 평신도들도 그랬듯이
오늘날의 평신도들도
그런 성직자들의 말을 권위있게 듣지 않는다. 
더 이상 문맹자, 병신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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