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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39)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6쪽 부터 10쪽까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1 조회수824 추천수4 반대(0) 신고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6쪽 부터 10쪽까지)

                                                     이순의

 

 

<문장의 기술은 부족할지라도 쓰기는 열심히 썼으며 이 시대의 누군가는 살고 있을 이야기를 제 부족한 솜씨로 완성해 보았습니다. 묵상글은 아니구요. 순수창작 소설입니다. 그 안에서 묵상할 것이 있다면 안으시고 묵상할 것이 없다면 그저 지어낸 이야기 한 토막의 재미를 즐기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열심히 수고하여 마련한 것이므로 사랑하는 벗님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굿뉴스의 벗님들께 이 시대의 누군가 살고 있을 이야기를 드립니다. 2006년1월9일 월요일 부터.......>

 

ㅡ읽기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칸을 두었습니다. 단락과 무관합니다.ㅡ

 

-계속-



         이순의

 

 

먹을거리를 가득 담은 그릇들이 깔끔하게 밀려와 사람 앞에 섰다가 맛난 음식만 빼앗기고 지저분한 빈 그릇되어 쫓겨 가는 풍경이었다.

딸그락 딸그락, 찰칵 찰칵, 뚜구륵 뚜구륵!

밥 뜨는 소리와 숟가락 부디 치는 소리, 그리고 그릇 밀려다니는 소리가 불규칙하고 부지런한 소음으로 방안을 채우는가 싶더니 금세 얼룩찌꺼기를 뒤집어쓴 식기들을 밀어냈다. 생존이라는 전쟁이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먹기 위해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거창한 성스러움인지를 체감하지 못하는 일상이기도 했다.

 

닦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방안을 정리하는 단순한 반복들이 겨운 줄도 모르고 겹게 저녁나절을 삼켜 버렸다. 앉은 대로 엎드린 대로 졸린 아이들에게 제 자리를 찾아 눕히고 소등을 하면 다시 등줄기는 흥건하였다. 잠자리를 준비한다는 것은 새로운 일상의 시작이며 반복이었다.

그때서야 피아노 연주회가 생각났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방에서 다른 선생님들도 한숨 돌리며, 칫솔에 치약을 짜거나 수건을 머리에 두르거나 서랍에서 갈아입을 속옷을 꺼내들고 경옥을 떠올릴 것이었다.

 

마음이 먼저 재촉하기 시작했다. 세면실로 가는 발걸음은 빨라졌고 보드란 잇몸 위에서 거친 칫솔은 부지런했다. 밤의 침묵은 고요하지 않았다. 마음으로 바쁘고, 눈길로 소란스럽고, 행동으로 거칠었다.

세상 속에서 불편한 아이들에게 세상과 다른 편리를 나누며 함께 살아 보겠다고 온 사람들의 낙이란 무의식의 시간 속에서 흥건히 땀에 젖어 사는 것이다. 세상의 유희를 등지고 잊으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더듬어 볼 겨를도 없이 소명을 삼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땀은 흘리지 않아도 되고 지그시 눈을 깔아 내려 뜬 채 고상하고 감미로운 선율의 촉감에 휘감겨있어도 된다는.......

결코 그 밤의 침묵은 고요할 수가 없었다.

 

언제쯤인지 희미한 것 같았지만 또릿한 과거의 흥을 돌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동경의 허락이었다. 경옥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피아노의 건반위에서 춤출 때마다 차단했던 추억 속으로 와르르 몰려 들어가 노닐 것만 같은 설렘이 있었다.

홀로 가을 찻집에 앉아 뜨거운 촉감에 깜짝 놀란 손을 달래느라고 찻잔의 열정을 외면했었고, DJ가 틀어주는 음악다방의 선율들도 충분히 낙엽을 닮아 있었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짧은 유혹에 홀려 눈을 감고 턱을 괴고 살포시살포시 감동의 리듬을 타다가,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올 때면 괴었던 손을 풀었었다. 다시 찻잔에게 손을 내밀었을 적에는 이미 변심한 차가움이 싫었어도 남은 몇 모금의 식은 물을 아까워하며 마시던 그 날을 누군가는 떠올리게 될 것이었다.  

 

피아노가 놓여있는 강당 의자에는 벌써 먼저오신 선생님들과 퇴근하지 않은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마치 공연장에 입장한 관객들처럼 각각의 좌석 번호를 찾아 드문드문 앉은 모습이 강당의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했다.

보육원의 전체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큰 행사에는 반드시 이곳을 거처야 하는 절차적인 필연성을 경옥도 치르고 있는 듯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신고식과는 사뭇 달랐다. 저녁 회합이라는 휴식시간에 연주회를 감상했던 기억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날그날의 크고 작은 일들을 토론하거나 보고하는 게 고작이었고 원장님의 지시사항을 전달 받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굳이 다른 경우를 찾는다면 농구를 한다든지 오락을 마련해서 심리적 육체적 피로를 풀어나가는 짧은 여가뿐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강당 안을 소수의 임직원들이 다 채워 앉을 수는 없었다. 서로 마주보며 까르르 쏟아내던 웃음소리조차 소란스럽지 못하고 소곤거렸다. 경옥이 마련해 주는 연주회에 연미복에 드레스는 못 입었어도 기다림만큼은 수준급이고 싶었다.

오히려 고요한 클래식의 공간에 지극히 사무적인 냄새를 깔고 들어오신 분은 원장님이셨다. 어제와 똑같은 검정색 정장차림에 그대로인 노란 봉투를 들고 그 속에 담긴 서류 같은 예술을 감상하실 요량인 것 같았다.

<어디 피아노를 얼마나 잘 치는지 봅시다.>

경옥이 웃으며 따라 들어왔다.

 

언제 준비했는지는 모르지만 옅은 단풍잎색의 화려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마도 드레스를 준비해 오지는 않았어도 저 정도의 의상 한 벌쯤은 챙겨왔을 법한 연주자였던 것이다. 그런 경옥의 모습이 셔츠와 바지차림의 관객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고, 마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거물급의 예술가에게 격식 없는 초대를 받아 온 것 같은 만족이었다. 기대치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경옥이 피아노 앞에 섰다.

<제가 이곳에 온지 하루가 지났는데요. 봉사하시는 분들의 수고가 클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왔지만 이렇게까지 수고하시는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하루 만에 벌써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꼭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앳된 경옥의 모습은 기운을 잃었다가 다시 곧추 세웠다. 나이에 비하여 차분하고 정중했다. 자주 무대에 서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매너일 것이다.

<오늘 연주는 그 어느 때 보다 선곡이 어려웠습니다. 모두들 피곤하신데 쉬지도 못하고 앉아 계실 생각을 하니까 잠들게 해드리는 연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음의 리듬이 쉽고 익숙한 곡들을 골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곡으로는 복음성가 곡을 연주할 텐데요. 가사를 아시는 분들은 따라 부르셔도 됩니다.>

겸연쩍은 미소를 담고 웃어 보이는 경옥과 달리 관객들은 사뭇 진지하게 박수를 쳤다. 띄엄띄엄 앉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손뼉소리는 합해지지 못하고 딱딱거렸다. 그렇지만 관객들의 성원은 우렁찼고 경옥의 답례는 간소했다.

 

곡의 이름은 알 수 없어도 어디선가 들어 본 기억이 선명한 연주였다. 경옥의 말대로 선곡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톡톡 튀는가 싶더니 빠르게 춤을 추었다. 희뿌연 형광등 불빛 아래의 붉은 원피스는 간혹 앞뒤로 숙였다가 좌우로 흔들렸다가 건반을 따라서 도취되었다. 굳이 연주곡의 이름을 알려고 하지는 않았어도 연주자의 얇은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했다.

경옥은 그렇게 신비롭고 감미로운 첫인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 경옥을 다시 만났을 때는 뜻밖의 장소에서 격식도 없이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 얼마만이예요? 보고 싶었어요.>

<임선생! 정말 반가워요.>

<선생은 무슨? 그냥 경옥아 라고 부르세요. 훨씬 언니라고 들었는데.>

<그래도 임선생의 첫날을 잊지 못해서......>

<아! 저 연주 그만 둔지 꾀 되었어요. 피아노는 벌써 팔아 치웠는걸요.>

경옥은 달라도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세발낙지 몇 마리를 사겠다고 아름 아름으로 알아낸 전화번호를 들고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어림잡아도 우리의 재회는 거뜬히 서너 해는 지난 것 같았다.

보육원에서 송별인사도 없이 떠나온 후로 나는 결혼을 했고 뒤를 이어 엄흥순과 표선희도 보육원을 떠나 가정을 이루었다. 그 후로 경옥이 보육원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혼인도 하지 않은 낯선 사내를 대동하고 내 앞에 서리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연주자의 나이로는 아직도 미령한데 참 하디 참한 모습은 오간데 없고 그 생경한 당혹감이란 나에게 상당한 심적 부담을 안겨주었다. 더구나 20대 초반의 아리따운 처녀가 막무가내로 앞뒤도 없이 생활전선에 돌격해버린 것 같았다. 겉모습은 연주회 날에 본 그대로인데 쏟아내는 말투는 도떼기시장의 난전 여인이었다.

<임선생, 몇 마리나 필요해?>

나는 어쩐지 그 사내와 말을 섞기가 싫었다.

경옥은 행복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아니 행복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느껴지는 감촉은 매우 불쾌하고 싸늘했다. 그 사내는 나에게 경옥의 불행으로 다가왔다.

<오빠? 몇 마리 살 거야?>

경옥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히 어려보이는 사내는 나에게 옅은 미소를 보내며 간단한 대답을 했다.

<알아서 사.>

<언니. 싸게 주실 거지요? 언니가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고 해서 오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오자고 했거든요.>

나에게는 그 말도 저 말도 모두 싫게 들려왔다.

 

피아노 연주연습을 해야 할 경옥이 낯선 사내의 팔짱이나 끼고 산전수전 다 격은 아줌마 같은 말솜씨로 세발낙지나 사러 다니는 꼴은 아프게 느껴지는 상처였다. 저런 여자는 경옥이 아니라는 부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들을 빨리 시야에서 밀어내고 싶었다.

비닐을 잘라서 아래쪽을 동여 묶고 물을 채워서 급하게 대충대충 미끄럽고 찐득찐득한 낚지를 주워 담았다. 아가리를 모아 잡고 쉬~이~익 산소바람을 넣어 땡땡하게 부풀은 봉지의 주둥이를 끈으로 꽁꽁 묶었다. 투명봉지 속의 몇 마리 낙지들이 보기도 싫었다.

 

<가지고 가! 멀리서 왔는데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돈을 받을 수가 없네.>

<언니는? 그러시면 안 되는데? 싸게 사려고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가져갈 생각은 없어요. 어떻게 사시는지 언니의 얼굴도 한 번 보고 싶기도 했고요.>

경옥은 얼마의 돈을 놓으려 했지만 나는 얼른 돈을 받아 세어 거슬러 주었다.

<그럼 쪼금만 받을게. 가지고 가서 맛나게 먹어.>

돌아서는 경옥을 보고 싶지 않았다. 공연한 소리만 질러댔다.

<낙지 사세요. 낙지! 세발낙지가 싸요. 갯벌천지 함평 무안에서 잡아온 세발낙지 사세요.> 

보육원에서는 언제 떠나왔는지?

연주는 왜 그만 두었는지?

그토록 아끼는 소장품인 고가의 피아노를 어떻게 팔아치울 생각을 했는지?

저 남자랑은 언제부터 같이 다니고 싶었는지?

걱정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지만 허공을 떠돌다가 썰물 되어 나갔다.

 

얼음이 꽁꽁 얼은 다음해 겨울이 되어 경옥을 만나러 갔다. 몸이 아프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우고 싶은 욕심에 세발낙지 장사를 그만 두었기 때문이다. 이유도 없이 경옥을 먼저 만나고 싶었다.

경옥의 집은 저택에 가까웠다. 평범한 사람들은 구경도 해 본적이 없는 피아노를 딸에게 사줄 수 있는 부모님이었다면 대단한 재력가일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빌라집이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다가구의 빌라는 아니었다. 잘 정돈된 뜰이 일정하고 건물은 복층의 단독주택 같은 구조였다. 고급의 화려한 장식장들이 나의 촌스러운 눈을 도취상태로 몰아넣었다. 경옥의 집이 그렇게까지 부자였을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토록 과분한 궁전에 경옥이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경옥은 경옥의 방으로 나를 안내했지만 그 가을에 세발 낙지를 사려고 나를 찾아왔을 때의 경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보육원에서 연주회를 하던 경옥은 더욱 아니었다. 내가 예측하며 불안해했던 내면의 걱정들이 우려스럽게 다가왔다.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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